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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맨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이런 유령이라면 있다는 이야기야. '어쩌면 유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겁을 집어먹는 사람은 머릿속으로 진짜 유령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 어둠 속에서 본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창백한 사람의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누군가의 속삭임으로 들리기도 한다는 거지.
-p.71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합니다. 또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도 하지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다양한 각도로 사물과 현상을 살피고자 하지만, 어딘가에 맹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소설 속의 명탐정들도 그러한데, 평범한 저 같은 사람이야 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판을 봐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획일된 생각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 집단인지 감응정신병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비 종교의 일종인지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편견을 가지고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바른 소리인지 - 객관적으로 살펴보아 - 한 번쯤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랫맨>을 읽다 말고 뉴스와 유튜브를 뒤적인 탓에 좀 과하게 나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닌데도 말이죠.
예를 들어 이 그림에서 랫맨만을 봤다고 쳐. 그때 '이건 쥐야.' 하고 믿어 버리면 의도적으로 견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이상 몇 번을 봐도 쥐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아. 반대로 '아저씨 얼굴'이라고 믿으면 더 이상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게 돼. 이게 명명 효과야. 쥐라고 해버리면 그냥 쥐야. 아저씨라고 하면 그대로 아저씨고.
-p.71
정치와는 상관없는 <랫맨>은 음악 하는 청년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린 시절 누나가 추락사 한 뒤 뇌종양을 앓고 있던 아버지마저 한 달 후 돌아가시면서 누나의 죽음에 대해 내내 의문을 품고 있던 히메카와 료는 현재 아마추어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입니다. 친구들과 결성한지 벌써 14년째, 홍일점인 히카리와 연인 사이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적지근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사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의 동생 게이에게 마음이 갑니다. 게이도 히메카와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알게 된 히카리의 임신, 그들은 중절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의문이 듭니다. 내내 피임기구를 사용해왔는데 어째서 임신을 했을까요? 5%라는 - 어떻게 낸 통계인지도 모르겠지만- 확률에 당첨되어 임신이란 걸 한 걸까요? 혹시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 건 아닐까요? 그런 의혹을 해소하기도 전에 히카리가 사망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요. 과연 어떻게 된 걸까요. 히메카와의 누나의 죽음, 그리고 히카리의 죽음엔 어떤 랫맨이 숨어 있을까요.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을 때 저는, 약간의 기대를 합니다. 스산하거나 촉촉하겠지 하는 기대 말이에요. <술래의 발소리>로 처음 시작했거든요. 말 그대로 종이신문을 읽다가 책 소개 글을 보고 찾아 읽었는데요. 미치오 슈스케란 그런 미스터리 하면서도 호러블한 소설을 쓰는 사람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잔잔하거나 약간은 아픈 글을 쓰기도 하는 소설가였어요. 이 책 <랫맨>은 어떤가 하면, 잔잔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큰 굴곡은 없어요. 파고가 높지 않은 바다에 커다란 돌을 던져 넣은 것 같은 정도에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괜찮았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글을 좋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