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 - 나는 하루 한번, [나]라는 브랜드를 만난다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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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를 읽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는데요. 엄마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누나로서의 나, 회사원으로서의 나, 이웃 주민으로서의 나, 환자로서의 나 등등... 무척 많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더군요. 어떤 나는 내가 아니고, 어떤 나만이 나라고 할 수 없는 그 모든 존재를 히라노 게이치로는 '분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누구 앞에 서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없고, 적절한 상황에 맞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분인의 나는 모두 나 자신임에도 '진정한 나'를 찾는다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위로가 되면서도 힘이 났습니다. 각각의 나를 모두 소중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나는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브랜드 가치'로서의 나는 아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포니'일겁니다.

이 책에서는 회사 내에서의 '나'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포니'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 저녁 슬픈 얼굴로 '스폰지밥'의 '월요일 좋아~'를 흥얼거리고 있는 포니입니다만, 저자가 말하는 매일매일 금요일처럼 살아갈 포니입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이 말이 확실히 와닿더라고요. 일을 해야 하는 금요일은 불금이라며 신나게 일하면서, 쉬고 있는 일요일엔 내일이 월요일이라 슬퍼하는 건 옳지 않죠. 그러니 내일도 불금처럼 일하기 위해 오늘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푹 쉬렵니다. 일을 해야죠. 일을 해야 좋아하는 책을 더 많이 읽을 수도 있고, 영화도 많이 볼 수 있으며, 사랑하는 아이에게 치킨을 사주잖아요. 그러니까 내일도 모레도 저는 불금입니다.

이야기의 순서가 바뀐 것 같긴 한데,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은 베스트셀러인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저자 강민호의 두 번째 책으로, 브랜드 에세이라고 표지에 적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에세이라고 하기엔 좀.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에 가까우면서 독자에게 넌지시 던지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일반적인 에세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독자에게 다가선, 직접 말을 거는 책입니다. 이를테면 관찰 예능인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시청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 같달까요.

저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라거나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니 에세이보다는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나]라는 브랜드를 통해 관계, 기본, 본질, 진정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입니다." -p.9

한동안 엄살 부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 열심히 일해!!라고 꼬집는 책이 유행하더니, 그다음은 마음의 어루만지는 힐링이 유행하고 - 아무 데나 힐링을 들이대는 바람에 짜증이 날 무렵, 괜찮다며 회사일이 힘들면 그만두어도 좋다고, 쉬어가도 좋다고 하는 때가 왔습니다. 삶은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즐거우며 여전히 고되고, 그래도 이스터 에그처럼 숨겨진 행복 때문에 살아가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저자들은, 강사들은 때리고 어르고 혼내고 안아줍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쪽일까요. 채찍입니다.

일이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일은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단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 p.54

부드럽게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열심히 일하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에서 다 쓰고 남은 잉여의 몫을 누리기 위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본질적으로 삶을 소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p.53)라고 말합니다. 읽어나가다 보면 확실히 주마가편합니다. 평소 같으면 화가 났을 텐데, 아니 여기서 뭘 더 어쩌라고. 화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일부터 힘껏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분인의 개념으로 따지자면 '가장으로서의 나'의 결심일 겁니다. 저자는 나 자신을 살피고 가치 있는 브랜드가 되도록 매진하라 합니다.

지금 서있는 바로 그 자리, 그 위치가 정확히 당신이 있기로 선택하고 결정한 그 장소입니다. -p.65

'나'라는 브랜드가 된다는 건 그 직업에 관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으로 그러려면 압도적인 인풋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공부하고, 책을 읽고, 경험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일 뿐, 성과를 내는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그것들을 해낸다고 합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데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나는 과연 그런 노력을 했을까요. 언제나 힘들어, 피곤해,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이 아닌 것 같지? 하며 핑계를 대곤 했죠. 어쩌면 그 피곤함과 나태함이 상대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정신 차리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 '포니'라는 브랜드는 어떤 걸까 생각해보기로 했었습니다. 책 읽는 포니는 과연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앞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요. 이 책에서 말하는 직장인인 '나'라는 브랜드의 가치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것들을 '책 읽는 포니'에 적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예전부터 계획했던 것들이 삶에 치여 하나도 이루이지지 못했는데요.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딴짓할 시간은 많으면서 시간을 쪼개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분인의 수많은 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제 위치에 서있지 못했던 거죠. 지금부터는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매진하려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니체

이 책은 경제/경영이나 에세이로 분류될 것 같습니다만, 저자가 말하는 바를 잘 느낀다면 직장인이나 경제, 경영과 관계없는 누구라도 '나'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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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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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길로, 프랑스 국경 인근부터 스페인의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728Km에 달하는 길을 말합니다. 10세기에는 레온 대성당에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길을, 12세기에는 현재와 비슷하게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을 택했는데요. 9세기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어 그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오늘날에 이르는 순례길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산티아고의 무덤이 발견되자 알폰소 3세는 산티아고 무덤 위에 성당을 짓고 오비에도 루고를 거쳐 산티아고 무덤으로 향하는 9세기 순례길을 최초로 개척했다고 합니다.(p.18) 12세기에 완성된 프랑스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의 길은 유럽과 이슬람 문명을 이어줘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고(p.21) 하는데요.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를 읽다 보면 스페인의 건축물 중에서는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양식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9세기 이후 15세기까지 번성했던 순례길은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로 쇠퇴하는데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는 최초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1982년에 방문함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 의미가 부여되고 1987년에는 EU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유럽 문화유적으로 지정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길을 체험한 후 1987년 <순례자>와 1988년 <연금술사>를 발표, 밀리언 셀러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p.5)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엔 말할 것도 없고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여행을 원하는 여행가들에게도 인기 있는 코스가 되었습니다. 네이버에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검색하면 무척 많은 여행사에서도 다루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순례길에 다녀오신 분들의 여행기도 읽을 수 있고요.

그들은 어째서 그 긴 여정을 떠나는 걸까요?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테죠. 독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어떤 이유로 걷는 걸까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얻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는 기존의 '스페인 여행 가이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저자의 사진과 그림과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건축물을 감상하고 역사를 읽으며 부드럽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낍니다. 40~50일이 걸리는 순례길을 '건축'이라는 테마로 살핍니다. 건축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저는 책을 읽기 전 조금 염려가 되었습니다만, 책은 전혀 어렵지 않았고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프롤로그를 통해 순례길이란 어떤 곳인가를 알려준 이 책은 순례길의 제로 포인트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건축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불꽃같은 영혼으로 새겨놓은 역사와 문화의 화석이다. -p.328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프랑스 길의 제로 포인트이자 스페인 중세 건축의 대문이었다. 12세기 중엽 제2차 십자군 전쟁의 출발지였다.(p.31)고 하는데요. 12세기 중엽에 착공하여 13세기에 완성된 이 건축물은 역사를 함께 살아며 이런저런 고통을 당했지만 4월 15일 발생한 화재는 가장 최근의 일이라 더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기사에 드디어 소방대가 철수했다고 하던데요. 재건이냐 복원이냐를 두고 논쟁 중이라고 하는군요. 이것 또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몸에 새길 역사가 되겠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출발한 여정은 순례자의 공식 체류지 팜플로나와 카스티야 왕국의 머릿돌 부르고스를 거쳐 붉은 그리스도의 궁전 레온으로 향합니다. 영광의 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거쳐 산티아고의 발코니 피스테라에 이르르면 순례길이 끝납니다.

피레네산맥을 넘어서 만나는 스페인 론세스바예스의 산티아고 성당, 팜플로나의 여정도 좋았지만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저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 부르고스 대성당으로 가는 포도 농장 길이 더 반가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은 무척 인상적이어서 무데하르(기독화된 이슬람 건축 양식) 양식의 목재 천장과 모자이크 장식의 회랑 바닥과 벽의 장식뿐만 아니라 독특한 디테일의 기둥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정원 바닥을 장식한 십자가의 길이 벽과 만나는 회랑 기둥 중에서 서쪽 회랑의 중앙 기둥만 네 개의 기둥이 서로 꼬여 있다고 하는데요.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리이며 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여정의 마지막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렀을 때, 사진만으로도 느껴지는 웅장함이란!! 순례길을 걸어 마침내 대성당을 만난다면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영광의 문을 지나 열주가 도열한 회랑을 따라 황금빛 제단으로 걸어가면 어떤 기분일까요. 나 자신이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을까요.

신과 인간의 믿음으로 쌓아올린 고딕 대성당의 아치의 정점에는 어김없이 키스톤(역사다리 꼴의 쐐기돌)이 박혀 있다. 키스톤이 박혀 있지 않다면 하늘을 찌르는 대성당의 무게는 지탱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정점에도 어김없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절대 사랑의 키스톤이 박혀 있음으로 돌의 신전은 엄숙하게 말했다. 대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절대 사랑이었다. 인간이 대성당을 지었지만 대성당이 인간을 성장시켜주었음을 산티아고 순례길의 건축이 사랑의 온기로 증명해주었다.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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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9-04-20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하숙이란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 생긴 시청자들이 꽤 있고 저도 그중의 한 명인데, 리뷰덕분에 순례길의 연원과 역사를 간략하게 알게 됐네요. 최근 노트르담 성당 화재 사건도 있어서 독자의 눈길을 끌 만한 책 같습니다.
 
드림 온 - 두뇌 스트레칭 감성 일러스트북
상하이 탱고 지음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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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표지의 책이 비닐로 실링 되어 있어서 조심조심 뜯었습니다. 비닐을 벗겨내고 손에 드니 그립감이 착!

표지 후가공에 신경을 썼나 봐요. 부드러우면서도 손에 착 달라붙는 것이 제법 두께가 있는 일러스트 북이지만 기분 좋게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죠.

글자 하나 없이 세계를 사로잡았다는 상하이 탱고의 <드림 온>을, 그 이름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림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앗,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 그림이더라고요. 네티즌이 웨이보에 연재하고 있던 그의 그림을 아마 불펌했던 것 같은데요. 출처는 좀 표시하고 원작자에게 퍼가도 좋으냐고 물어볼 것이지. 그림은 본 적 있으되 상하이 탱고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지 뭐예요.

인터넷에 떠도는 그림을 볼 때도 무척 독특하다, 센스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책을 직접 만나니 더 그렇더라고요. 제가 본건 빙산의 일각이었어요.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상하이 탱고가 5년 이상 연재하며 매일매일 한편씩 그려낸, 1600여 점의 그림 중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170여 점을 선별해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컬러도 사용하지 않고, 흰 종이와 검은 펜 선 만으로 그려내는 그의 그림은 글자 없이도 전 세계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림들이 국가와 언어가 상관없긴 한데요. 글자가 없기에 온전히 그림으로부터의 메시지를 직접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상하이 탱고는 저에겐 생소한 작가이지만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작가인가 봐요. 세계 곳곳의 일러스트 전시회에도 참여했었고, 2017년에는 천안에서 우리나라 팬들과 만남을 갖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무척 유명한 작가였군요.

상하이 탱고의 감성 일러스트 북 <드림 온>은 위트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그림들이 대부분인데요. 사랑과 성에 대해서도, 스마트폰과 와이파이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작가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제 스타일이 아니기에 이맛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정말 독특해요.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를 볼 수 있었어요.

특히 저는 군인이 머신건을 쏘는데, 탄창을 장착하고 쏘니까 총구에서 음악이 나오는 그림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진짜로 이렇게 싸우면 얼마나 좋겠.... 아, 불협화음이면 시끄럽다는 단점은 있겠군요. 하지만 순간 이 그림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남녀에게서 보이는 그림자.

누구에게나 있는 페르소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어쩐지 쓸쓸해 보이면서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라는 생각에 한참이나 그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해석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작가가 보여준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을 한다는 건,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본다는 것이고, 그것은 창의력을 높여주는 게 아닐까요?

하핫. 나이를 먹어도 창의력은 필요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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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아르테 오리지널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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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극 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가 있듯이 중국 사극 소설에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약간은 오글거리는 묘사와 과한듯한 설정이 그런 건데요. 대륙 특유의 허장성세 같은 것일 겁니다. 그게 때론 간지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판타지 같은 느낌으로 독특한 기분에 빠져들게 합니다.

<잠중록>을 읽으면서 예전의 어떤 소설이 잠깐잠깐 떠올랐어요. 허세가 빡!! 들어가 있는 소설이었는데요.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하고 한숨을 내쉬었죠. 이번 소설도 그런 건가.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내용이 마치 선남선녀가 등장하는 중국 드라마를 연상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설 <잠중록>은 이미 중국에서 베스트셀러요, 웹툰으로 제작되어 인기몰이를 했다는군요. 게다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데... 중국어를 할 줄 안다면 웹툰도 보고 싶습니다. 드라마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겠죠. 애용하는 푹티비의 중국 드라마 카테고리에 올라올 날 만을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잠중록>은 비녀의 기록이라는 뜻인데요. 사건을 풀어나갈 때 주인공인 황재하가 비녀를 뽑아 바닥에 끄적이는 버릇이 있기에 이런 제목을 붙였나 봅니다. 양갓집 규수일 때는 비녀를 여러 개 꽂았기에 이런 버릇이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만, 남장을 하고 있을 때는 비녀가 하나인지라 비녀를 뽑으면 머리도 흐트러지기 일쑤. 보다 못한 기왕 이서백이 이중으로 된 비녀를 제작하여 하사합니다. 은비녀의 장치를 누르고 딸깍하면 옥비녀가 나와서 머리는 흐트러지지 않고, 바닥에 끄적이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데요. 저도 하나 갖고 싶어요. 좀 탐이 나더라고요. 이서백이 준거라 그런가... 비녀 자체의 독특함 때문이라 그런가... 탐이 나요.

황재하는 명탐정 코난처럼 어렸을 때부터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데 탁월한 소녀입니다. 그 소문은 자신이 거주하던 촉을 넘어 황제가 사는 곳까지 자자했는데요. 왕씨 가문과 혼인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있던 날 황재하는 반발했지만 이내 반성의 의미로 그녀가 가족에게 음식을 올렸는데요. 일가족이 모두 죽어버립니다. 결혼하기 싫어 가족을 모두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고 지명수배된 그녀는 수배를 피해 달아난다는 것이 그만, 운명의 장난으로 황제의 넷째 동생인 기왕의 마차에 타게 되고 기왕 이서백은 그녀를 거둡니다. 로맨스니까 반했다...라는 뭐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녀의 추리력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는데요. 이서백 역시 만만치 않은 천재로 기억력이 거의 컴퓨터 같습니다. 서책의 내용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왕실 및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 중 자신의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그 명단까지 줄줄 외웁니다. 판단까지 냉철해서 서늘한 기운이 도는 미남이죠.

황재하는 기왕부의 환관 양숭고로 새 신분을 얻고 당시 장안의 골칫거리요, 공포의 대상인 '사방안'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를 신임하게 된 이서백은 자신의 혼례와 얽힌 미스터리를 해결할 것을 명합니다. 황재하는 자신의 가문 사건의 의혹과 누명을 벗는 날을 고대하며 왕실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데요. 그 끝에는 엄청난 것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열 예닐곱살 된 소녀 황재하의 미모는 비록 환관복에 감추어졌을지 몰라도 그녀의 영민함은 숨길 수 없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고, 이서백은 냉정하지만 츤데레과라서 정말 꺄악!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면서 추리력 때문에 그녀를 동경하여 검시관도 좋고 포졸도 좋으니 제발 그런 쪽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주 씨 가문의 도련님 주자진의 발랄함도 즐겁습니다. 어쩌면 삼각관계가 될지도!!?! 두근두근 2편이 기대되는 소설입니다.

눈앞의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명과 원한을 짊어지고도 머뭇거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본래의 연약함과 온화함은 모두 깊이 묻어버리고 필사적으로 앞으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오랫동안 잔잔하기만 했던 이서백의 마음에 순간 미세한 동요가 일었다. 마치 봄바람이 깊은 호수의 수면 위를 스치며 일으킨 잔잔한 물결 같았다.

“그래, 나는 너를 믿고, 너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너의 인생은 내게 맡겨야 할 것이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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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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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세상엔 참 많은 프레임이 존재합니다. 자신 스스로 들어앉은 프레임도 있고, 남이 씌워 놓은 프레임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다가 그런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요즘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라는 문화 심리학 책을 읽고 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를 가두던 프레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재미로 생각했던 일들이 당사자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나의 상처는 남들을 의식한 프레임이었다는 사실 같은걸, 유럽인의 시선으로 본 동양인에 대한 글을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마루야마 마사키의 <용의 귀를 너에게>에도 많은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듣지 못하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 관한 오해와 고정관념이 제일 크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작인 <데프 보이스>를 읽으면서도 잔잔한 아픔과 마음의 울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들리는 자들 가운데 살아가는 듣지 못하는 자의 괴로움만큼이나, 듣지 못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이 들을 수 있었던 아라이는 외로웠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이 혹시 유전이 될까 봐 아이를 갖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 그는, <데프 보이스>에서 경찰서 사무직을 그만두고 구직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수화 통역사로 일합니다. 그리고 법정 통역도 하게 됩니다. <용의 귀를 너에게>를 읽기 위해 <데프 보이스>를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래야 전작에 등장했던 주요 등장인물들과 주인공 아라이와의 관계, 그리고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용의 귀를 너에게>에서도 아라이는 수화 통역사로서, 그리고 법적 문제가 생긴 농인의 수화 통역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강도 용의를 쓰고 법정에 선 농인의 통역을 하기도 하고, 같은 처지의 청각 장애인에게 사기를 친 범인의 취조 통역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분노했습니다. 검사나 형사의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과연 비장애인에게도 저렇게 대했을까 싶은데요. 특히 형사의 태도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순한 아라이까지 발끈했을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 화가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정육학(正育學)이라는 건데요. "누구나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바르게 길러 냈을 때 비로소 부모가 됩니다."(p.138)라는 말로, 언뜻 보면 무개념 부모가 많은 요즘 세상에 참 괜찮은 말이구나 싶은데,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저 말을 주장하는 가지 히데히코의 뜻은, '발달장애도 부모의 애정에 따라 예방, 개선할 수 있다.'(p.139)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다시 말하자면 발달장애나 행동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애정을 주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올바른 자식 교육을 표방하는 것 같지만, 실은 양쪽 부모 모두가 충분한 애정을 줄 수 있는 가정의, 이른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만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 개념은 소설에서 굵직한 토대가 되어 자주 등장합니다. 유력 정치인이 추진하는 법안에도 나타나는데요. 진짜 정말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게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상상하는 '정상적인' 가족에서 태어나기란 금수저로 태어나기보다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이런 정육학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저 역시 그중 하나고요.

주인공인 아라이는 청각장애인인 부모님과 형과 함께 살던 들리는 아이, CODA로 자라왔지만, 제대로 마음이 따뜻한 어른이 되었고 연인 미유키와 동거하며 그녀의 딸 미와에게도 좋은 아빠(아직은 아란찌로 불리지만)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육학이라는 말은 그에게 상처가 됩니다. 또 한 명, 미와의 동급생 에이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미혼모의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마음의 병으로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함묵증에 걸려있습니다. 아라이에게 수화를 배우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음을 조금씩 배우던 에이치는 얼마 전 자신이 목격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연 에이치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있을까요.

용이 사용하지 않는 귀가 퇴화하여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고, 용의 귀는 농(聾)이 되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는 아이 에이치는 용의 귀를 받아 세상과 만났습니다. 손으로 하는 대화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길 뻔한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지켜냅니다.

책에서는 청각 장애인에 대한 편견뿐만 아니라 미혼모, 발달장애, 행동장애 같은 -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프레임을 다룹니다. 슬프다가 화가 났다가, 그리고 다시 잔잔해집니다. 전작 <데프 보이스>는 장애인에게 그리고 비장애인에게 추천하고 싶었는데요. 이번의 소설 <용의 귀를 너에게>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두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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