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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평점 :
'산티아고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길로, 프랑스 국경 인근부터 스페인의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728Km에 달하는 길을 말합니다. 10세기에는 레온 대성당에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길을, 12세기에는 현재와 비슷하게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을 택했는데요. 9세기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어 그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오늘날에 이르는 순례길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산티아고의 무덤이 발견되자 알폰소 3세는 산티아고 무덤 위에 성당을 짓고 오비에도 루고를 거쳐 산티아고 무덤으로 향하는 9세기 순례길을 최초로 개척했다고 합니다.(p.18) 12세기에 완성된 프랑스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의 길은 유럽과 이슬람 문명을 이어줘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고(p.21) 하는데요.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를 읽다 보면 스페인의 건축물 중에서는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양식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9세기 이후 15세기까지 번성했던 순례길은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로 쇠퇴하는데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는 최초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1982년에 방문함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 의미가 부여되고 1987년에는 EU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유럽 문화유적으로 지정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길을 체험한 후 1987년 <순례자>와 1988년 <연금술사>를 발표, 밀리언 셀러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p.5)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엔 말할 것도 없고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여행을 원하는 여행가들에게도 인기 있는 코스가 되었습니다. 네이버에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검색하면 무척 많은 여행사에서도 다루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순례길에 다녀오신 분들의 여행기도 읽을 수 있고요.
그들은 어째서 그 긴 여정을 떠나는 걸까요?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테죠. 독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어떤 이유로 걷는 걸까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얻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는 기존의 '스페인 여행 가이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저자의 사진과 그림과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건축물을 감상하고 역사를 읽으며 부드럽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낍니다. 40~50일이 걸리는 순례길을 '건축'이라는 테마로 살핍니다. 건축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저는 책을 읽기 전 조금 염려가 되었습니다만, 책은 전혀 어렵지 않았고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프롤로그를 통해 순례길이란 어떤 곳인가를 알려준 이 책은 순례길의 제로 포인트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건축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불꽃같은 영혼으로 새겨놓은 역사와 문화의 화석이다. -p.328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프랑스 길의 제로 포인트이자 스페인 중세 건축의 대문이었다. 12세기 중엽 제2차 십자군 전쟁의 출발지였다.(p.31)고 하는데요. 12세기 중엽에 착공하여 13세기에 완성된 이 건축물은 역사를 함께 살아며 이런저런 고통을 당했지만 4월 15일 발생한 화재는 가장 최근의 일이라 더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기사에 드디어 소방대가 철수했다고 하던데요. 재건이냐 복원이냐를 두고 논쟁 중이라고 하는군요. 이것 또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몸에 새길 역사가 되겠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출발한 여정은 순례자의 공식 체류지 팜플로나와 카스티야 왕국의 머릿돌 부르고스를 거쳐 붉은 그리스도의 궁전 레온으로 향합니다. 영광의 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거쳐 산티아고의 발코니 피스테라에 이르르면 순례길이 끝납니다.
피레네산맥을 넘어서 만나는 스페인 론세스바예스의 산티아고 성당, 팜플로나의 여정도 좋았지만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저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 부르고스 대성당으로 가는 포도 농장 길이 더 반가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은 무척 인상적이어서 무데하르(기독화된 이슬람 건축 양식) 양식의 목재 천장과 모자이크 장식의 회랑 바닥과 벽의 장식뿐만 아니라 독특한 디테일의 기둥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정원 바닥을 장식한 십자가의 길이 벽과 만나는 회랑 기둥 중에서 서쪽 회랑의 중앙 기둥만 네 개의 기둥이 서로 꼬여 있다고 하는데요.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리이며 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여정의 마지막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렀을 때, 사진만으로도 느껴지는 웅장함이란!! 순례길을 걸어 마침내 대성당을 만난다면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영광의 문을 지나 열주가 도열한 회랑을 따라 황금빛 제단으로 걸어가면 어떤 기분일까요. 나 자신이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을까요.
신과 인간의 믿음으로 쌓아올린 고딕 대성당의 아치의 정점에는 어김없이 키스톤(역사다리 꼴의 쐐기돌)이 박혀 있다. 키스톤이 박혀 있지 않다면 하늘을 찌르는 대성당의 무게는 지탱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정점에도 어김없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절대 사랑의 키스톤이 박혀 있음으로 돌의 신전은 엄숙하게 말했다. 대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절대 사랑이었다. 인간이 대성당을 지었지만 대성당이 인간을 성장시켜주었음을 산티아고 순례길의 건축이 사랑의 온기로 증명해주었다.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