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 : 기본적인 신체부터 코스튬까지 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
(모에)표현 탐구 서클.카도마루 츠부라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는 간결한 선으로 그려진 만화는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정도는 아니더라도 <캔디캔디> 정도는 되어야 성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었죠. 왜 한참 공주님 좋아할 나이 아니었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레이스 원피스에 검은 후드티를 겹쳐 입은 괴이한 옷차림입니다만 마음만은 한들한들합니다. 과거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며 이다음에 딸을 낳으면 예쁜 드레스에다가 미스릴 갑옷을 마련해줄 테다(?)라고 별렀으나 실제로는 활동성 있는 옷을 주로 입히며 키웠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에서는 예쁘고 화려한 의상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물론 실제로 입거나 입힐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건 어울리는 사람이 입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15년 전쯤에는 예쁜 옷을 디자인해 만들어서 인형에게 입혔었어요.


이제는 뭘 쪼물락 만드는 것도 점점 귀찮아져서 아무것도 만들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좋아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이라는 책을 탐독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미소녀에게 예쁜 옷을 입히는 방법과 표현 방법을 잘 알려주고 있어요.



책 읽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은 건, 
이 패션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프릴, 레이스, 토션 등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구나!!였습니다.
인형 옷을 만들 때도 그 작업이 제일 귀차, 아니 힘들었는데 말이에요. 역시 뭔가를 얻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미소녀 바디를 그리고, 그 위에 옷을 입혀 나가는 식으로 진행해야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합니다. 엉뚱한 데에서 팔다리가 튀어나오지 않으려면 기본 데생은 필수.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도 저희 집에서 사용하는 사이툴을 이용해 일러스트 메이킹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 사이툴은 있으나 드로잉을 할 수 있는 타블렛 펜 같은 게 없으므로 - 마우스로 작업하다 쥐가 날 수도 있으므로 이 페이지는 딸에게 참고하라고 넘겨주고 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책을 따라가보려 합니다. 

아래의 과정 진행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있더라~하는 걸 소개하기 위함이지 정말 그림 그릴 때 저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습니다. 



먼저 미소녀의 바디라인을 그려봅니다. 여러 가지 각도의 기본 바디가 있었습니다만 저는 평소에 거의 그리지 않았던 뒷모습을 그렸습니다. 공부하는 자세로 그려야 하니까요. 서툴러서 여러 번 고쳐 그렸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곡선이라고 어렸을 때 선생님께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리면 직선 비스름한 게 나옵니다. 미소녀의 경우 더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야 하는데.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나중에 드레스를 입거나 할 때 모양이 잘 살아납니다. 
그래서 캐미솔과 드로어즈를 입혔습니다. 



그 위에 파니에를 입혔어요. 이렇게 부풀린 파니에(속치마)를 입혀야 겉의 의상 볼륨이 잘 삽니다.  파니에 아래로 드로어즈 끝부분의 프릴이 보이도록 남겨두었습니다.



머리 모양을 예쁘게 빗겨주고, 하이힐을 신겼습니다. 
힐을 신기면 다리가 길어 보이고 종아리 모양도 삽니다. 




각도에 따른 스커트 모양을 알려주는 페이지를 참고해서 의상을 완성했습니다.
의상 아래로 파니에의 레이스와 드로어즈의 프릴이 보입니다.



펜 터치를 했습니다. 맨 다리가 신경 쓰여서 펜 터치를 하며 즉석에서 타이즈를 신겨주었습니다. 채색 전이라 무릎 위에 레이스 밴드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가는 선은 플러스 펜, 굵은 선은 미피 수성펜으로 그렸습니다.




구두와, 소매 레이스, 머리 리본을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으로 검게 칠했습니다.


유성 파버 카스텔 색연필로 색칠하면 완성. 의상을 검은색으로 칠하는 바람에 주름 선이 살지 않았습니다. 책의 앞 부분에 검은 의상을 검게 칠하면 좋지 않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검게 칠했습니다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거나 물감이나 마커같이 색을 깨끗하게 칠할 수 있는 도구로 채색을 한다면 음영을 나타낼 수 있는 다른 색으로 검정의 느낌을 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해 효과를 넣어주면 또 다른 느낌의 그림이 됩니다.

<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을 보며 그림 하나를 완성해보았는데요. 
좀 더 잘 그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연습해야겠습니다. 소개된 일러스트처럼 멋지게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레이스와 프릴을 정복할 수 있지 않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세 피난처 - 달아나는 세금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4
시가 사쿠라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8 사기동대 같은 것을 보며 탈세는 나쁜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저였기에, 탈세와 조세 회피가 다른 것이라는 건 짐작도 못했습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국어와 영어의 지문과는 달리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문제, 즉 수학을 사랑하는 딸은 사회 과목 중에선 경제가 제일 마음에 든다지만, 전 경제라는 글자만 보아도 울렁거리거든요. 

<조세 피난처>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첫인상은 그랬습니다. '역시 이와나미 신서의 오렌지빛은 참 적절하게 예뻐.' 마치 기능은 보지 않고 디자인만으로 가전제품을 선택하는 사람같이 표지만을 음미하고 있었죠. 예쁜 책을 손에 쥐고 이와나미 신서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하면서 책을 열었고, 이내 '큰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어조차 낯설어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올해 수능 국어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PDF 파일을 내려받고서 27번부터 32번 (짝수형)에 해당하는 지문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과학 관련 도서를 읽고서 '전혀 어렵지 않아요. 쉽게 설명되어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 그것을 믿고 책을 읽었던 '과학과는 거리가 먼' 분들께 사과하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도 그럴 겁니다. 경제에 대해 보통 정도의 관심이 있는 분께는 쉽지만 저는 못 알아먹는 책. 
필살기를 사용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처럼 문장을 요약해 노트에 적어가며 읽고, 그래도 모를 때는 강의자의 느낌으로 직접 입으로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어가며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오호.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여세를 몰아 읽어나갔습니다. 중요한 건 용어의 이해였습니다. 저자가 무얼 말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데 책을 이해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저자는 친절했습니다. 제가 따로 사전을 찾거나 검색을 하지 않아도 책 안에서 제대로 잘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책은 친절합니다. 제가 모자란 것이지. 
책을 다 읽고 나니 전보다는 1mm쯤 유식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덴마크의 빈부 격차가 크다는 딸의 말에, 그래도 지니 계수(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소득 분포의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가 낮으므로 소득 분배가 잘 이루어진 나라라며, 빈부 격차가 큰데도 이렇다면 복지 정책이 상당히 잘 된 나라라며 알은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2016년 기준으로 0.357로 전년에 비해 상향되었습니다.(근로 연령층인 만 18~65세는 0.371로 역시 증가했습니다) 소폭 증가이지만 빈부격차가 벌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책의 85 페이지 자료에 의하면 2008년 기준으로 일본의 경우 0.30 부근이었습니다. 빈부격차 심하다는 소문에 비해 너무 낮아 의아했지만 아마도 공표된 것이랑 실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조세 피난처란 편법을 이용해 세금을 적게 내려는 수작, 조세 회피에 이용되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런 장소는 탈세, 조세 회피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 테러 자금 세탁 및 은닉에 이용되며 나아가 세계 경제의 대규모 파괴를 유발합니다. 세금이 없는 국가나 지역, 혹은 세금이 거의 없는 국가나 지역이 조세 피난처로 이용되는데, 흔히 카리브 섬같이 야자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섬을 애용합니다. 특히 부유층이나 테러집단이 좋아하는데요. 일단 이곳에 들어간 자금은 행방을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애초에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 무턱대고 규제했다간 근근이 살아가는 섬주민의 생계에 지장이 생기므로 신중한 대처방안 모색이 필요할 것입니다.
실은 여기보다 군소 역외 금융센터의 문제가 더 심각한데,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의 금융센터를 피난처로 삼는 행위는 자국 경제 기반에 깊이 파고들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울컥하고 짜증이 나는 건, 겉으로는 훌륭한 체하는, 런던과 뉴욕인데요.- 세계 3대 금융 센터가 런던, 뉴욕, 도쿄에 있으나 저자가 일본인이라 도쿄의 언급을 피한 건지, 도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지, 일본 기업은 도쿄를 피난처로 이용하지 않는 건지,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 실상은 그들 모두 조세 피난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머니 게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니 화가 납니다. 

국고로 들어가야 할 세금을 회피하여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은 조금 이해합니다. 탈세도 아니고 편법 좀 쓴다는 데 그게 무슨 문제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IMF를 겪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큰 문제라는 걸 인식할 수 있습니다. 
자금 세탁 방지 기구(FATF), 금융안정위원회(FSB) 등의 기관에서 국제 룰을 조정하고 개입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조세 피난처 퇴치에 적극 나서는 체하며 자국 권익을 우선시하는 선진 경제 대국이 양심적인 행보를 보였으면 합니다.

시가 사쿠라의 <조세 피난처>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처음엔 어렵게 생각되었으나, 익숙해지니 일본의 전 대장성 주세국 관료로서 직접 겪고 느꼈던 것들을 생생하게 전해 듣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세금이 문명의 대가'라면 세금을 내는 사람은 그 대가인 '문명'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세 피난처는 그런 '문명'의 향유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문명'에 재앙을 가져온다.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척 읽고 싶은데, 읽기 싫어.'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 두근거리지만, 이런 악함을 즐기는 나 자신이 혹시 어딘가 잘못되거나 고장 난 건 아닐까, 잔혹한 장면으로 가득 찬 책을 읽으며 재미있다고 말하는 게 정상일까.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 잘려나간 것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도 아닌 데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심각하게 책을 읽는 바람에 아이의 걱정을 사면서 왜 이런 책을 읽는 걸까요.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그리고 매력이 있기에 저는 계속 스릴러, 미스터리를 찾는 거겠죠.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도 읽고 싶은데 읽기 싫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책을 여는 순간 그 안에 사로잡힐 거라는 걸 알면서, 잔인함이 가득 뿌려져 있을 것을 알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죠. 전에도 말했지만, 소설 속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건 간에, 나 자신은 이곳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음 놓고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이번의 소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지난번의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나 <지옥이 새겨진 소녀>보다 더 잔혹합니다. 그래서 더욱 안전한 곳이 필요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독일 일대에서 멀리 떨어진, 바로 이곳 말이에요. 

<죽음을 사랑한 소년>의 사건은 까칠한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조차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를 비난하던 주변인들이 연달아 살해당했거든요. 그리고 진행 중입니다. 슈나이더를 추종하는 광팬이거나, 아니면 그를 함정에 몰아넣고 싶은 인물의 짓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뭐겠어요. 사랑 아니면 증오겠지요.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슈나이더는 정말 비호감입니다. 마야 유타카의 탐정 메르카토르보다 더 비호감인 탐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슈나이더에 비하면 그는 그냥 잘난 척이 심한 천재 탐정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슈나이더는 상황이 어떻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생각을 할 때는 옆 사람이 마시는 공기  때문에 자신의 두뇌 회전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해진다며 불평하는 인물이에요. 차라리 마리화나를 끊지. 어찌나 피워대는지, 마리화나를 구경도 못 해본 저마저 그 냄새가 들척지근하며 담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지 뭔가요. 까칠하고 도도하고 제멋대로이지만 프로파일링 능력과 수사력은 다른 이들보다 월등해 경찰 내에서도 뭐라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미드 한니발의 윌 그레이엄처럼 범행 현장에서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 사건의 흐름을 추리해내기도 합니다. 윌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명인지는 모르겠지만-과잉 공감 장애를 앓고 있는 반면, 슈나이더는 프로파일링이며 추리이기에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도 단점이 있는데, 고집도 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하게 믿는 나머지 맹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부분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비네이죠. 연차로 보자면 풋내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부터 그녀의 활약은 슈나이더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특히 조카들 덕분에 동화에 대해선 줄줄 꿰고 있는데요. 이번 <죽음을 사랑한 소년> 역시 안데르센 동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비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설 속에서 제일 올바른 사람이에요. 생각도 깊고 결단력도 있고 행동력도 좋습니다. 여차할 때는 슈나이더의 말도 거역할 수 있는 당찬 경찰입니다. 

슈나이더라고 하면 마르틴 S. 슈나이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쿠르트 슈나이더(1888~1917)라는 독일의 정신병리학자인데요. 프로이트와 아브라함이 사람은 자라나면서 겪는 일 때문에 인격 장애를 일으킨다고 주장한 반면, 크레펠린은 인격장애는 타고난 기질이며 한 번 발현되면 치료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쿠르트 슈나이더는 두 가지 이론을 모두 아우르고, 처음으로 10가지 인격장애를 분류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관한 정의를 처음으로 내린 사람이지요. 소설의 슈나이더의 이름을 이 학자에게서 따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는데요. 우리의 슈나이더는 프로파일러이지만 누구보다도 사이코패스에 대해 잘 알고 심리를 이해하는 걸로 보아 영 다른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알고 보면 먼 친척쯤 되지 않을까요? 

대신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는 한나라는 젊은 심리치료사가 등장합니다. 쿠르트 슈나이더의 진짜 후예는 이쪽이 되겠군요. 그녀는 슈타인펠스 교도소로 실습을 나오는데요. 이곳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죄수들을 수용한 곳입니다. 소아 성애자, 사이코패스, 사디스트 범죄자 같은 이들을 가둬둔 곳인데 영화 <더 록>의 알카트라즈 수용소처럼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최고의 보안 교도소입니다. 지난 오 년간 이곳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했던 한나는 전임자의 추락사로 실습 자리가 비는 바람에 운 좋게(?) 오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목적은 훌륭한 심리치료사로서 죄수들의 치료를 돕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수상쩍은 행동을 하다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한편, 슈나이더와 자비네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에 새겨진 숫자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숫자와 더불어 늘어가는 피해자들, 살인자는 말 그대로 serial killer입니다. 그들은 카운트를 멈출 수 있을까요. 

"매일 아침 케냐에서 가젤 한 마리가 눈을 떠.
사자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그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깨닫지.
그런데 매일 아침 케냐에선 사자도 눈을 떠.
사자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가젤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알지.
결국 우린 사자건 가젤이건 해가 뜨면 그냥 달려야 하는 운명인 거야."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전혀 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읽으신 분께선 아시겠지만 스포일러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스릴러를 넘어선 마음 아픈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그 사연과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 며칠 동안 글을 쓰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 이게 바로 말 못할 괴로움이라는 건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 우진은 삼 년 전 사랑하는 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내마저 잃었습니다. 과연 그에게 살아갈 힘이 남아있을까요. 그의 아내가 죽는 순간, 저는 잠시 책을 덮었습니다. 아이를 잃는다면.... 저에게 단 하나의 공포가 있다면, 바로 아이를 잃는 것입니다. 끝없는 절망과 절망에 나의 온 우주가 닫혀버릴 거라는 생각에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불안한 마음에 차가워진 손끝을 어루만지며, 행여나 이런 상상이 불길함을 초래할까 두려워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냅니다. 
우진의 아내도 그랬겠지요. 열여섯 살의 딸이 살해당한 이후에도 매일 아침 아이의 책상에 우유 한 잔을 가져다 두며 살아있을 때처럼 방을 관리하며,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괴로움은 그녀의 몸을 갉아먹었습니다.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게 아팠던 게 아닙니다. 원무과에서 알게 된 사실과 폭언에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투신자살합니다. 손끝에서 아내를 놓친 우진은 딸과 아내의 뒤를 따르려 했는데요.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합니다. '진범은 따로 있다.' 삼 년 전 딸을 죽인 범인들은 재판을 받고 죗값을 치르고 있는데, 진범이 따로 있다니요. 우진은 아주 조금 힘을 냅니다. 진범을 찾아야 하거든요. 딸을 죽이고, 아내를 죽게 만들고, 자신을 세상에 혼자 남게 만든 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딸 수정이는 부모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이다음에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별을 사랑하는 소녀였습니다. 어서 자라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싶어 했던 아이는, 하늘의 별이 되어 아빠를 보고 있을까요. 지금 보고 있는 그 별빛은 몇 만년 전 사라져 지금은 없는 별의 마지막 인사일 텐데요. 아빠는 그걸 알기에 더 슬픕니다. 

모든 사악한 것들은 순수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p.104

요사이 미성년자에 의한 끔찍한 사건들의 보도가 늘었습니다. 실제 사건이 늘어난 건지, 예전보다 많이 드러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심각한 폭력에 대한 흉포함과 더불어 후안무치함이 소름 끼칩니다. 특별히 사이코패스 경향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소년법의 악용일까요? 아직 어려서 몰라 그런 걸까요? 다른 건 몰라도 아직 어려서라는 건 서너 살 때까지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세 살짜리도 남을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 잘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열세 살이 넘는 아이들이 친구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리면 안 된다거나 벽돌로 치면 죽을 수 있다는 걸 몰라서 행한다고요?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다 압니다. 게다가 그래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압니다. 
미성년자의 범죄를 다룬 국내외 소설이 여럿 있습니다. 작가에 따라 그들에게 엄벌을 처해야 한다거나 그래도 갱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제로 스토리를 끌어갑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조정해가지요. 저는 그렇습니다. 가해자였던 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가벼운 처벌과 -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서처럼 사회봉사 몇 시간으로 때울 수 있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반성 없이 살아간다면, 피해자와 가족들은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제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남의 일이니 그럴 겁니다. 나의 일이라면,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입니다. 서미애 작가는 추리의 여왕이라고 불리고 있는데요. 명불허전입니다. 배경과 대사 모두 생생하게 살아서 독자의 감정을 끌고 갑니다. 저는 우진에게 빙의해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그의 심정이 콱 박히자 잠이 몰려왔습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 잠으로 도피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와 세영이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에도 다시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진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정면 승부. 저도 과자를 한 움큼 집어 와삭와삭 씹어먹고선 다시 싸움을 준비했습니다. 우진이 다닌 길들, 세영의 아빠 재혁이 다닌 길들이 낯설지 않아 감정과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비록 제 기억 속의 장소들은 10년, 20년 전의 것들이지만요. 그것이, 그 감정들이 너무 생생해 상당한 체력을 소모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우진이 되었다가, 재혁이 되었다가.... 그리고 다시 우진이 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어봅니다. 

저 멀리 하늘에서 삼태성을 두른 오리온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어린 시절 엄마와 살지 못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휴대폰 같은 게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유일한 연락 수단은 오직 편지뿐이었습니다. 엄마는 왜 제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을까요? 지난번 엄마가 보냈던 편지의 겉봉을 보며 삐뚜룸한 글씨로 받는 이를 채웠습니다. 주소는 서울 일 때도 있었고 도쿄의 어느 곳인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의 편지를 받으면 바로 답장을 썼는데, 엄마의 편지는 몇 달이 걸려야 도착했습니다. 일 년에 이틀이나 하루, 엄마를 만나고 일 년에 한두 번 엄마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돌아오라 편지 한 적도 없고, 가지 말라 붙잡은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야 하는 착한 아이였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제게도 남들 다 겪는 중2병이 왔을 겁니다. 그렇지만 반항을 받아 줄 상대가 없으니 나름 얌전히 지냈을 겁니다. 이다음에 영국에서 살 거라는 망상을 하긴 했지만요. 그 무렵, 아빠가 재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지만, 어차피 우리의 결정은 아빠의 설득에 묻힐 게 뻔하고, 그 언니는 이미 임신했으니 반대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엄마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만 계속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 언니는 새엄마가 되었고, 저는 그 뒤로 일 년에 한 번 엄마를 몰래 만나다 들켜 얻어맞았습니다. 만일, 은유처럼 내 마음을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면 저는 덜 슬플 수 있었을까요.

제8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주인공 은유는 처음부터 남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한참 예민한 나이. 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도 있고, 가볍게 앓는 아이도 있지만 누구나 힘든 그 나이.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지금껏 자신에게 무덤덤했던 아빠가 그 여자로 인해 활짝 웃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빠는 은유에게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써넣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와서 웬 친한 척. 투덜거리면서도 미래의 자신에게 하소연합니다. 은유에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역시 자기 자신뿐이었을 테니 가감 없이 마구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일 년 뒤 도착할 편지를 기다리거나 잊어버리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1982년의 또 다른 은유에게서 답장이 옵니다. '국민학교 2학년' 은유와 '중학교 2학년' 은유는 이렇게 편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두 아이 모두 처음부터 신기해했던 건 아닙니다. 2016년에서 온 편지를 받은 1982년의 아이는 이상하고 낯선 단어에 혹시 간첩이 보낸 편지가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하고, 1982년에서 온 편지를 받은 2016년의 아이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기지만, 결국 둘은 과거와 미래가 편지를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놀라워하며 기뻐합니다. 
현재 은유의 시간보다 과거의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 이곳에선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도 과거의 은유는 대학생이 됩니다. 이젠 은유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죠. 둘은 불현듯 깨닫습니다. 아빠와 과거 은유가 비슷한 나이라는 것을요. 친할머니도, 아빠도, 그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은유를 위해 과거의 그녀가 나섭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 둘의 시간은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 눈물이 감동인지 슬픔인지 괴로움인지 기쁨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가슴을 울리고, 속이 아려왔습니다. 나는 은유였지만 은유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은유를 보며 네가 낫다, 네 형편이 나보다 나은 거라 말하고 싶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아파서, 은유가 아파서, 내가 행복해서 미래의 은유가 행복해서. 도대체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요.

이 책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 읽느냐, 청소년이 읽느냐. 각기 다른 눈으로 자라나는 은유를 보기도 하고, 정체되어있는 은유를 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분명 은유는 성장할 것이고, 독자도 그럴 겁니다. 당신께서 읽으신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저와 같을까요?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