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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저는 어린 시절 엄마와 살지 못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휴대폰 같은 게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유일한 연락 수단은 오직 편지뿐이었습니다. 엄마는 왜 제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을까요? 지난번 엄마가 보냈던 편지의 겉봉을 보며 삐뚜룸한 글씨로 받는 이를 채웠습니다. 주소는 서울 일 때도 있었고 도쿄의 어느 곳인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의 편지를 받으면 바로 답장을 썼는데, 엄마의 편지는 몇 달이 걸려야 도착했습니다. 일 년에 이틀이나 하루, 엄마를 만나고 일 년에 한두 번 엄마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돌아오라 편지 한 적도 없고, 가지 말라 붙잡은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야 하는 착한 아이였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제게도 남들 다 겪는 중2병이 왔을 겁니다. 그렇지만 반항을 받아 줄 상대가 없으니 나름 얌전히 지냈을 겁니다. 이다음에 영국에서 살 거라는 망상을 하긴 했지만요. 그 무렵, 아빠가 재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지만, 어차피 우리의 결정은 아빠의 설득에 묻힐 게 뻔하고, 그 언니는 이미 임신했으니 반대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엄마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만 계속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 언니는 새엄마가 되었고, 저는 그 뒤로 일 년에 한 번 엄마를 몰래 만나다 들켜 얻어맞았습니다. 만일, 은유처럼 내 마음을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면 저는 덜 슬플 수 있었을까요.
제8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주인공 은유는 처음부터 남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한참 예민한 나이. 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도 있고, 가볍게 앓는 아이도 있지만 누구나 힘든 그 나이.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지금껏 자신에게 무덤덤했던 아빠가 그 여자로 인해 활짝 웃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빠는 은유에게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써넣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와서 웬 친한 척. 투덜거리면서도 미래의 자신에게 하소연합니다. 은유에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역시 자기 자신뿐이었을 테니 가감 없이 마구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일 년 뒤 도착할 편지를 기다리거나 잊어버리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1982년의 또 다른 은유에게서 답장이 옵니다. '국민학교 2학년' 은유와 '중학교 2학년' 은유는 이렇게 편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두 아이 모두 처음부터 신기해했던 건 아닙니다. 2016년에서 온 편지를 받은 1982년의 아이는 이상하고 낯선 단어에 혹시 간첩이 보낸 편지가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하고, 1982년에서 온 편지를 받은 2016년의 아이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기지만, 결국 둘은 과거와 미래가 편지를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놀라워하며 기뻐합니다.
현재 은유의 시간보다 과거의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 이곳에선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도 과거의 은유는 대학생이 됩니다. 이젠 은유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죠. 둘은 불현듯 깨닫습니다. 아빠와 과거 은유가 비슷한 나이라는 것을요. 친할머니도, 아빠도, 그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은유를 위해 과거의 그녀가 나섭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 둘의 시간은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 눈물이 감동인지 슬픔인지 괴로움인지 기쁨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가슴을 울리고, 속이 아려왔습니다. 나는 은유였지만 은유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은유를 보며 네가 낫다, 네 형편이 나보다 나은 거라 말하고 싶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아파서, 은유가 아파서, 내가 행복해서 미래의 은유가 행복해서. 도대체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요.
이 책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 읽느냐, 청소년이 읽느냐. 각기 다른 눈으로 자라나는 은유를 보기도 하고, 정체되어있는 은유를 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분명 은유는 성장할 것이고, 독자도 그럴 겁니다. 당신께서 읽으신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저와 같을까요?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