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척 읽고 싶은데, 읽기 싫어.'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 두근거리지만, 이런 악함을 즐기는 나 자신이 혹시 어딘가 잘못되거나 고장 난 건 아닐까, 잔혹한 장면으로 가득 찬 책을 읽으며 재미있다고 말하는 게 정상일까.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 잘려나간 것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도 아닌 데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심각하게 책을 읽는 바람에 아이의 걱정을 사면서 왜 이런 책을 읽는 걸까요.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그리고 매력이 있기에 저는 계속 스릴러, 미스터리를 찾는 거겠죠.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도 읽고 싶은데 읽기 싫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책을 여는 순간 그 안에 사로잡힐 거라는 걸 알면서, 잔인함이 가득 뿌려져 있을 것을 알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죠. 전에도 말했지만, 소설 속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건 간에, 나 자신은 이곳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음 놓고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이번의 소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지난번의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나 <지옥이 새겨진 소녀>보다 더 잔혹합니다. 그래서 더욱 안전한 곳이 필요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독일 일대에서 멀리 떨어진, 바로 이곳 말이에요. 

<죽음을 사랑한 소년>의 사건은 까칠한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조차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를 비난하던 주변인들이 연달아 살해당했거든요. 그리고 진행 중입니다. 슈나이더를 추종하는 광팬이거나, 아니면 그를 함정에 몰아넣고 싶은 인물의 짓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뭐겠어요. 사랑 아니면 증오겠지요.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슈나이더는 정말 비호감입니다. 마야 유타카의 탐정 메르카토르보다 더 비호감인 탐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슈나이더에 비하면 그는 그냥 잘난 척이 심한 천재 탐정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슈나이더는 상황이 어떻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생각을 할 때는 옆 사람이 마시는 공기  때문에 자신의 두뇌 회전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해진다며 불평하는 인물이에요. 차라리 마리화나를 끊지. 어찌나 피워대는지, 마리화나를 구경도 못 해본 저마저 그 냄새가 들척지근하며 담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지 뭔가요. 까칠하고 도도하고 제멋대로이지만 프로파일링 능력과 수사력은 다른 이들보다 월등해 경찰 내에서도 뭐라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미드 한니발의 윌 그레이엄처럼 범행 현장에서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 사건의 흐름을 추리해내기도 합니다. 윌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명인지는 모르겠지만-과잉 공감 장애를 앓고 있는 반면, 슈나이더는 프로파일링이며 추리이기에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도 단점이 있는데, 고집도 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하게 믿는 나머지 맹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부분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비네이죠. 연차로 보자면 풋내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부터 그녀의 활약은 슈나이더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특히 조카들 덕분에 동화에 대해선 줄줄 꿰고 있는데요. 이번 <죽음을 사랑한 소년> 역시 안데르센 동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비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설 속에서 제일 올바른 사람이에요. 생각도 깊고 결단력도 있고 행동력도 좋습니다. 여차할 때는 슈나이더의 말도 거역할 수 있는 당찬 경찰입니다. 

슈나이더라고 하면 마르틴 S. 슈나이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쿠르트 슈나이더(1888~1917)라는 독일의 정신병리학자인데요. 프로이트와 아브라함이 사람은 자라나면서 겪는 일 때문에 인격 장애를 일으킨다고 주장한 반면, 크레펠린은 인격장애는 타고난 기질이며 한 번 발현되면 치료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쿠르트 슈나이더는 두 가지 이론을 모두 아우르고, 처음으로 10가지 인격장애를 분류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관한 정의를 처음으로 내린 사람이지요. 소설의 슈나이더의 이름을 이 학자에게서 따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는데요. 우리의 슈나이더는 프로파일러이지만 누구보다도 사이코패스에 대해 잘 알고 심리를 이해하는 걸로 보아 영 다른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알고 보면 먼 친척쯤 되지 않을까요? 

대신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는 한나라는 젊은 심리치료사가 등장합니다. 쿠르트 슈나이더의 진짜 후예는 이쪽이 되겠군요. 그녀는 슈타인펠스 교도소로 실습을 나오는데요. 이곳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죄수들을 수용한 곳입니다. 소아 성애자, 사이코패스, 사디스트 범죄자 같은 이들을 가둬둔 곳인데 영화 <더 록>의 알카트라즈 수용소처럼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최고의 보안 교도소입니다. 지난 오 년간 이곳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했던 한나는 전임자의 추락사로 실습 자리가 비는 바람에 운 좋게(?) 오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목적은 훌륭한 심리치료사로서 죄수들의 치료를 돕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수상쩍은 행동을 하다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한편, 슈나이더와 자비네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에 새겨진 숫자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숫자와 더불어 늘어가는 피해자들, 살인자는 말 그대로 serial killer입니다. 그들은 카운트를 멈출 수 있을까요. 

"매일 아침 케냐에서 가젤 한 마리가 눈을 떠.
사자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그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깨닫지.
그런데 매일 아침 케냐에선 사자도 눈을 떠.
사자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가젤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알지.
결국 우린 사자건 가젤이건 해가 뜨면 그냥 달려야 하는 운명인 거야."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전혀 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읽으신 분께선 아시겠지만 스포일러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스릴러를 넘어선 마음 아픈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그 사연과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 며칠 동안 글을 쓰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 이게 바로 말 못할 괴로움이라는 건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