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모든 순간을 나답게 사는 법
브레네 브라운 지음, 이은경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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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년 초에 지원했던 동아리 면접에 두 군데나 떨어지고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동아리에 떨어진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울고불고 분노하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요. 학생부 삼 년 계획에 치명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말은 만들기 나름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온 초청 강사가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한 학생부는 대학 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애가 또 울고, 어떨 수 없이 들어간 동아리에서 과제를 내거나 집합시킬 때면 또 울었습니다. 말로 달래면서도 솔직히 얘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공감 부족이었습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어린 시절 자신이 원했던 곳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이 책을 쓰는 순간까지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건 빠른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진정한 우주 아싸인 저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말로 달래며 다정함의 연고를 발라도 치유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겁니다. 
소속감에서라면 저는 아이와는 다른 상실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 정도로 뭘... 하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상처의 크기는 자신의 척도로 재는 것이 아닌데요. 

빈곤, 폭력, 인권 침해 같은 고통과 같은 선상에서 보더라도 자기 가족에 속하지 못한다는 감정은 굉장히 위험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감정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 자존감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5)

책 속에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그래요. 그래서 오래전의 저는 집을 떠났었습니다.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하더라도 나만 없으면 이 가족이 완전할 것 같았거든요. 내 존재는 손에 박힌 가시 같은 거라 사라지면 하나의 단란한 가족이 완성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스스로의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 완전한 가족을 만들어 주는 건 실패했습니다. 저는 자유를 얻은 대신 가난을 획득했지만요. 저는 자유와 (금전문제를 제외한) 평화를 얻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상당히 굴곡지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원하던 - 깨끗하고 따뜻하거나 시원한 집에 살며 세탁기에서 빨래를 해 바람 잘 드는 곳에 널 수 있으며 이웃과의 교류는 최소한으로만 하고,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고, 원하는 날엔 대중교통으로 대형마트에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내게 있어 부족한 건 돈 하나뿐인데 왜 나는 여전히 우울할까요. 예민하고 까칠하고 누군가가 나를 괴롭힐 것 같은 불안감에 늘 긴장합니다.

스스로 인정하긴 싫지만 외롭기 때문인가 봅니다. 나를 괴롭히는 불안 우울은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있을 때면 거짓말처럼 사라지거든요. 텀블러를 가지고 20여 분을 걸어내려가면 만나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인사하고, 커피숍에 들어가 오늘의 커피 한 잔을 삼천 원에 사, 자리에 앉아 책을 펴면 그렇게 안정적일 수 없어요.  내가 이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소속감 때문이겠죠. 여기선 어떤 적응도 필요 없어요. 그냥 들어가 앉으면 소속이 되는 겁니다. 뜻하지 않게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는데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소리를 경계하는 것보다 이곳의 사람들이 편해요. 때로는 나를 까칠하게 만드는 소리들이 있긴 하지만 견딜만해요. 불편하지만 편하다는 역설을 느낄 수 있어요. 

진정한 소속감은 자기 자신을 굳게 믿고 자기 자신에게 속함으로써 가장 진정한 자기 자신을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고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황야에 홀로 서는 것에서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정신적 체험이다. 진정한 소속감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바꾸길'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길 요구한다. (p61)

겨우 커피숍에 앉아있는 걸로 소속감이니 위로감이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는 제가 황당할 수도 있지만 저 자신에게는 큰 위로가 되거든요. 요즘 장문의 글이 잘 안 써져서 고민이라 블로그 하나만 하고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관둘까 했지만 그게 또 힘들더라고요. 단문의 글인데 반응은 무척 빨라요. 그게 마약같이 뇌를 자극하나 봐요. 정말 좋아서 좋아요 누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누가 내 말에 반응을 해줬다는 게 기쁜 거예요. 이 무슨 바보짓인가요. 결국 외롭지 않다고 우기는 제가 실은 외로워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외로우면 세상에 나가서 인간관계를 구축하면 되지 않나요. 저는 왜 은둔(?) 하는 걸까요. 페이스북에서 자신과 의견이 맞는 친구만 사귀는 건 자칫하다가는 도덕적 배제를 익히고 행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제 페친님들은 거의 작가나 출판 관계자분들이라 중립을 많이 지키시는 편이지만, 아이의 말을 듣자 하니 어디는 파란 일베라고 불릴 정도로 심하다고 합니다. 나랑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심한 말을 해대는 건 너무해요. 네이버처럼 익명이 보장되는 곳은 더 심하죠. 뉴스 댓글 좀 보세요. 어떻게 저렇게 미운 말만 골라 하는 건지. 어떨 땐 슬프기도 합니다. 

비인간화와 책임 추궁은 상호 배타적이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비인간화하는 행위는 책임을 추궁하거나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도구가 아니다. 좋게 말해서 감정 분출이고 냉정하게 보면 타락이다.(p106)

sns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소통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수전 핀커는 저서 <빌리지 이펙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짧은 진화 동안 인류는 서로의 모든 몸짓과 의도를 능숙하게 읽어내는  무리 생활 영장류에서 각자 자기 전용 스크린에 정신이 팔린 단독 생활 종으로 변했다."(p189)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직접 상호 작용은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혈류와 뇌에 유익한 호르몬을 방출하며 수명 연장에 기여한다고 하는데요. 스크린에 코 박고 타인과 교류를 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외롭지 않다고 외치는 저 같은 행동은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니 조금 걱정됩니다. 책에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오염 지역에 살면 조기 사망 가능성이 5퍼센트 증가하고, 비만인 경우 20 퍼센트, 과음은 30 퍼센트 증가하는데 비해 외로움은 45 퍼센트에 이른다고 합니다. (p.81) 그렇다면 저의 경우,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의 스트레스와 외로움 중 어느 쪽이 더 해로울까요? 다행히 긴밀한 접촉뿐만 아니라 눈을 마주치거나 악수를 하는 사소한 접촉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스타벅스에서 친구를 만나는 정도로도 담배를 끊은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단골 책방이나 북 카페를 찾아가거나 해볼까요? 

실은 이 책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는 밖에 나가 놀라고 등 떠미는 책은 아닙니다. 인간관계 구축이 힘들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두려움이나 분노의 원인을 살피고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외로움을 인정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300 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도 와닿는 부분이 많아서 플래그를 많이 붙였습니다. 읽을수록 빠져들고 마음에 박혔거든요. 내용은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늘 그렇지만 실천하려면 용기와 이해가 필요해요. 그건 스스로가 찾아서 갖춰야 할 텐데, 심지어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데.... 어렵습니다. 그게 제일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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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 - 핵사이다 <삼우실> 인생 호신술
김효은 지음, 강인경 그림 / 청림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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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 있는 회사에 다녔드랬습니다. 아홉시 출근, 여섯시 퇴근에다가 주 5일 근무제가 없었던 때라 토요일도 종일 근무였죠. 그러다가 사장님께서 이젠 우리 사무실도 슬슬 토요일은 반일 근무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완전 반일은 무리지만, 월요일마다 있는 행사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토요일에는 점심을 일찍 먹고 두시까지만 일하는 걸로 하자고 하시더군요. 회사 시스템상 매주 수요일은 보통 아홉시가 넘어서 퇴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나마도 전임자는 일이 자꾸만 밀려서 밤 12시 넘어서 퇴근하기 일쑤였다고 하더군요. 전임자에게 길들여진 판매 사원 및 팀장님들께서 마감 협조를 안 해주셔서 저에게도 그러려고 하시더군요. 입사 초기에 이러다간 계속 끌려다니겠다 싶어서 매몰차게 커트를 하고 여덟시에 마감, 아홉시에 퇴근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보고 독하다며 뒤에서 흉을 보더군요. 왜죠? 여섯시에 퇴근하는 게 원칙인데 아홉시까지 기다려줬는데.
여섯시 퇴근이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희한하게 다섯시 삼십 분만 되면 갑자기 새로운 일을 시켜요. 토요일 반일 근무는 무슨. 두시에 새로운 일을 시키는 바람에 네시나 네시 삼십분에 퇴근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근무 외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월화 연속으로 여섯시 반에 퇴근하고, 수요일은 아홉시, 그리고 목요일에 또 여섯시 반에 퇴근하려는데 사장님이 부르시더군요. 요새 왜 그렇게 일찍 퇴근하냐며 정색하시던데요. 그래서 말했죠.
저는 입사할 때 여섯시 퇴근이라고 들었습니다, 근무시간에 모든 일을 다 해놓았고 지금은 퇴근시간을 삼십분이나 넘긴 여섯시 반인데 일찍 퇴근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씀인데, 토요일에 두시까지 근무하는 걸로 하자고 하시고선 왜 네시 넘어 다섯시까지 퇴근을 못하게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토요일에도 정시 퇴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요.  사장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함께 근무하는 언니는 좋아하시군요. 덕분에 일찍 - 일찍이 아니죠.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전 그때 미혼이었지만, 언니는 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퇴근시간을 넘겨서 퇴근하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생활은 이십 세기에 끝났어야 하는데, 이십일 세기인 지금도 여전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여자라고, 막내라고, 지방 출신이라고 등등 갖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가며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말을 하자니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계약직이면 재계약 안될 것 같고, 인사고과에 반영될 것 같고...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걸 무기인 양 휘두르는 사람들. 더 나쁜 건 자기들이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 소위 꼰대들 -에겐 어쩌면 좋을까요? 누가 속 시원하게 사이다 한 병 들이부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삼우실이라는 아이디로 연재를 하는 툰이 있더군요. 직장 내에서 참 말도 안 되는 소소하거나 소소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조용히'라는 사원이 시원하게 대응을 해요. 꼰대에게 당하면 반드시 갚아주는 성격이거든요. 매번 시원하게 갚아주는 건 아니고요. 네 컷 만화 아래에 글로 표현하기도 해요. 그래도 도시락을 싸온 여자 직원에게 자기 것도 싸다 달라며 난처한 부탁인지 명령인지를 하는 선배에겐 고수를 잔뜩 올린 즉석밥을 건네준다거나, 과일은 여자가 깎아야 한다는 말에 울퉁불퉁 엉망으로 깎은 사과를 내밀었을 땐 - 사진이 있더라구요 - 빵 터졌어요. 정말 이렇게 내주면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저도 과일은 정말 못 깎거든요. 우리 집엔 과도가 아예 없어요. 역시 과일은 껍질째 먹는 거 아니겠어요?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은 삼우실의 웹툰과 글을 모아 편집하여 낸 책인데요. 이 책을 읽다 보니 참 사무실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내가 본 건 일부일 뿐이구나 싶었습니다. 이러면서 어떻게 회사를 다니는 걸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당한 누군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방법으로 황당한 짓을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중간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손경이 성교육 강사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었는데요. '가해자가 없으면 피해자도 없다.'라는 글이 참 와닿더라고요. 이런 상사나 선배 때문에 어이없어 하고 힘들어하고선 자신도 어디선가 참신한 행동을 한다면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책은 사무실에서의 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간을 확대해서 생각하면 어느 곳에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에요. 어쩌면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겠죠.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예민을 떤다거나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른다거나 하면서요.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은 재미있게 읽고서 자아 성찰도 할 수 있는 책이었는데요. 현재 사무실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회사원이라면 자신의 회사에서도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기분이 나빴다가 좋아졌다가 할 수 있을 거예요. 아아, 정말로 대놓고 조용히 사원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아니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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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패러독스 -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먹는 ‘식물들’의 치명적인 역습
스티븐 R. 건드리 지음, 이영래 옮김, 양준상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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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건강검진을 등한시하고 살아온 지 어언... 음. 
결국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설마하니 내가 성인병에 걸리겠어? 비만이긴 하지만 가족력이 좋으니 괜찮을 거야, 문제없어.라고 생각했던 건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모든 병이 한꺼번에 달려와서 딱 달라붙어있었는데도 저는 전혀 몰랐어요. 그냥 피곤한 거겠지, 나이 먹어가니 체력이 떨어지는 거겠지 하며 넘겼습니다. 병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을 먹으며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늘 빼먹지 않으셨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노력해야 좋을까요? 모든 식이요법을 다 행하기엔 살맛이 안 날 것 같아서 뭔가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춰보자 싶어서 당뇨와 건강이라는 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전혀 안 보던 건강 프로그램도 VOD를 통해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구나 슬프기도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남은 날들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지침을 따른다면 말이죠.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심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관련 도서를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플랜트 패러독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랍니다. 이런 타이틀에 혹하는 제가 아니기에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요. 책 뒤를 보니 제가 좋아하는 저자 메멧 오즈가 추천을 했더라구요. <내 몸 사용 설명서>, <내 몸 다이어트 설명서>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러니 이 책을 한 번 정독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플랜트 패러독스>는 렉틴과 장내 미생물 구성(저는 장내 세균총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에 초점을 맞춘 건드리 박사의 건강요법입니다. 렙틴이나 그렐린은 메멧 오즈의 저서를 통해 읽어서 알고 있었지만 렉틴은 생소했습니다. 
렉틴이란 동식물에서 발견되는 거대 단백질 복합체로 종류는 다양한데, 주로 식물체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숙성전에 과실이 먹히면 씨앗을 퍼트리는 데 불리하므로 동물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방어용으로 배출, 보유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성숙과에는 렉틴이 풍부하기 때문에 후숙 과일은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렉틴은 당질 복합체와 결합하는데요. 곰팡이나 세포 표면 등에 달라붙어 체내에 들어오면 신경계, 관절, 체액 등의 당분자와 결합하게 되어 독성을 나타내거나 염증을 유발합니다. 

렉틴이 체내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친구가 있거나 방어할 수 있는 체계가 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몇 천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정도의 렉틴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진화되었는데요. 어째서 과거보다 현대에 렉틴에 대한 문제가 심화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요.
조리법이나 식사 형태, 섭취량이 변화했다는 것도 무시 못 할 일입니다. 외식이라거나 반조리 식품의 애용, 가공식품, 테이크 아웃 - 포장하는 포장재까지도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 이런 것도 문제지만 식자재를 키우는 데 드는 제초제, 농약, 비료, 첨가물 등의 물질들이 체내 정보 전달계나 장내 미생물을 교란해 렉틴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합니다. 

한편, 건강에 변화를 일으키는 교란 물질은 무척 다양한데요. 
항생제를 사용하면 당연하게도 장내 미생물도 죽습니다. 그걸 다시 회복하는 데엔 2년 걸려요.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항생제나 소염진통제를 먹은 사람은 필히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라고 권하더군요. 장내 미생물총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장내 세균총이 무너진 경우는 여러 가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크론병, 당뇨, 비만, 천식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제산제는 위산을 약화시키는 약이니만큼 위장에서 위산에 의해 살균되어야 하는 유해 박테리아가 죽지 않고 소장관으로 이동하여 장누수 증후군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대사를 방해하고, 대뇌 미토콘드리아가 오염되면 치매 확률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저는 겔포스 등의 제산제에 들어있는 알루미늄이 중금속으로서 뇌에 축적되어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미토콘드리아의 오염 자체가 문제일 줄이야. 
수크랄로스, 사카린 같은 비영양성 인공감미료가 좋은 박테리아를 줄이고 나쁜 박테리아를 늘릴 뿐만 아니라 단맛- 뇌 작용을 교란시켜서 더 많은 에너지 식품을 찾게 된다는 것은 무척 유명한 이야기이죠. 어쩔 수 없이 사용하더라도 양을 적당히 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물론 저자는 이런 걸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손 세정제, 치약 등의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것, 브랜드 제초제 라운드 업의 문제, 청색광에 대한 지속적 노출에 대한 경고도 하고 있습니다.

책의 중반에 이르면 본격적인 플랜트 패러독스 요법을 실시하는 방법 및 식단이 나옵니다. 
아. 저는 못하겠어요. 이를 따르려면 일단은 경제력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아보카도와 유기농 식품이 필요하거든요. 동물복지 사육 방식에 따른 돼지고기와 특별한 닭이나 계란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식단 자체가 좀 생소해서 플랜트 패러독스 식이요법을 적용하려면 한국 서민도 가능한 식사 지침이 필요합니다. 식단은 서구인의 형편에 맞게 구성되어 있는데요. 중하 이하의 경제력을 가진 서구인도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처한 형 상황에서 이 요법을 따르려면 선택이 필요합니다. '허용' 식품에서 골라 먹을 것인가. 아니면 '금지' 식품을 멀리할 것인가. 
제가 이런저런 토를 달면 건드리 박사가 그렇게 말할 거예요. 트집장이, 프로불편러, 고집장이. 

건드리 박사는 우리가 다양한 것을 충분히 섭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충제를 섭취하라고 합니다.
렉틴 차단제로 글루코사민이나 MSM, 다중쇄 오메가-3, 폴리페놀, 파이토케미컬, 프리바이오틱스(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가 되는), 당 방어제로 크롬, 아연, 셀레늄, 메르베린, 울금추출물을 먹으라고 하는데요. 가급적이면 식이로 섭취하면 좋지 않냐고 평소 주장해왔던 저로선 목록 자체가 난감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오메가 -3 정도는 먹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의사와 상의 후 섭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허용 식품과 금지 식품의 목록을 살펴보면 참 어렵습니다. 
205 페이지에서 천 년 전 인간은 금지 목록의 식품을 먹지 않았다며 근거를 들었습니다. 먹지 않았기에 장내 세균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렉틴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이것이 근거라면 한국인으로서 천 년 전에 먹었다는 문헌 기록이나 근거가 있다면 먹어도 좋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렉틴에 면역이 있을 테니까요. 또 하나, 콜럼버스의 교환에 의해 들어온 낯선 식물을 배제하는 것이 포인트 중 하나라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본래 살았던 이의 후손은 아무 문제 없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유럽에서 들여온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하는 것 같은데요. 
건드리 박사가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꼽은 것들 중 몇 가지는 현미나 콩, 보리, 귀리, 밀 등이 있습니다. 귀리나 밀은 그렇다손치더라도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아시아인 입장에서는 현미건 백미건 정도껏 섭취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그런 게 있을 테니까요. 
콩 역시 건드리 박사 입장에서는 18세기 말에 중남미로부터 들여온 음식이니 거부 목록에 올렸다고 하는데요. 홍익희 세종대 교수 칼럼에 의하면 우리는 고조선 때 이미 콩, 팥, 기장을 재배했다고 합니다(기원 1300년 경 청동기 유물과 함께 발굴). 심지어 야생종의 콩이 다양하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이며 기원전 7세기에 중국에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서양에 전파되어 19세기 중반에 미국에 전파가 되었다는데요. 현재는 전 세계 콩의 70퍼센트 이상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다량 생산하는 콩과 옥수수가 식량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그리고 렉틴 문제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콩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콩을 이용한 발효음식이 등장하니만큼 콩의 렉틴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신라 신문왕 혼례 납폐 품목에도 쌀, 술, 기름, 메주, 장 같은 게 있었는데 우리가 안 먹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 건드리 박사의 목록에서 음식을 선택할 때에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건강 서적이 그렇듯이 맹신을 하는 건 위험합니다. 자신에게 맞춰서 적용을 잘 해야 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믿고 눈 딱 감고 그대로 프로그램을 따라 해보면 몸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지만 어렵습니다. 적절히 취사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들을 상당한 부분에서 뒤엎고 있기에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렉틴은 무엇인가, 우리 몸에서 무슨 짓을 하는가, 우리가 렉틴을 피해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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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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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서문에서 옮긴이가 살짝 힌트를 주긴 했는데, 그래도 이럴 줄은 몰랐어요. 미식에 대한 열망은 현대인에게도 흔히 있는 일이고 맛없는 걸 먹는 것보다는 기왕 먹는 거 맛있는 걸 먹는 게 좋겠죠. 하지만 모리 마리가 깐깐하다, 고상한 혀를 가졌다기보다는 편식쟁이에 투정쟁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부잣집에 태어나 나이가 드는 동안 여러 일을 겪고 노인이 되기까지 입 짧고 맛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상냥한 분을 알고 있기에 모리 마리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모리 마리는 어쩐지 별세계의 사람 같았어요. ( 조금 ) 안하무인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녀가 좋아하는 프랑스인으로 따지자면, 내가 동경하는 교양 있는 '시민 '계급이 아니라 그야말로 '귀족 '이 아닌가요. 아아... 저랑은 절대 안 맞는 성격입니다. 그녀의 출생이나 교양 넘치며 딸바보인 아빠 모리 오가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는 성장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마음에 안 듭니다. 
야마시타 카즈미의 <고토부키 미녀 저택>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할머니는 정말로 멋대로이지만 뭔가 멋집니다. 화려하고 대단해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리 마리는 뭐죠? 어쩐지 계속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은, 이 사람은요.
모리 마리에 대한 반감을 레몬 진저 차이 티로 반감시키면서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음식에 관한 건방진 묘사만큼은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니까요.

방송에 나오는 모 미식가와는 달리 모리 마리는 음식을 만드는 데에도 재주가 있었나 봅니다. 어린 시절 귀히 자라는 바람에 집안일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못하면서 음식만은 맛있게, 제대로 만들었나 봅니다. 그녀에 대해 오해를 했던 사람들도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오해를 풀고 다시 보아줬다고 하는 걸 보면요. 20세기 초중반이었음을 감안하면 집안일을 못하는 게 큰 흉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히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 모양입니다. 요리를 제법 할 줄 아는 모리 마리였기에 음식에 관해서는 좋고 싫음이 확실했습니다. 오므라이스 위에 올라간 케첩 정말 싫어한다는 점은 저와 같아서 약간 마음이 풀렸습니다. 실은, 저... 오므라이스 자체를 싫어했거든요. 그냥 질척한 볶음밥도 싫은데 거기에 케첩 범벅이라니. 그것도 모자라 계란 이불을 덮어씌우고 거기에 케첩 한 번 더. 어린 시절부터 정말 싫어했어요. 데미글라스 소스가 올라간 오므라이스도 트라우마 때문에 웬만해서는 시도하고 싶지 않아요. 어떤 집에선 겉은 데미글라스고 안은 케첩이더군요. 정말 싫엇! 모리 마리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크로켓이었는데요. 요즘 크로켓(고로케)라고하면 카레빵 같은 거잖아요. 진짜가 아니라 빵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전 어렸을 때부터 감자를 으깨서 고기랑 양파, 채소 볶은 걸 섞어서 이리저리 치대며 모양을 만들어 빵가루를 입혀서 튀겨낸, 진짜 크로켓을 좋아했거든요. 아주 어렸을 땐 엄마가 해주셨던 것 같은데, 엄마랑 같이 살 수 없게 된 후엔 튀김 기름을 다룰 수 있게 된 중학생 때쯤부터 가끔 직접 만들어 먹었어요. 지금은 안 만들어요. 튀김 종류를 안 만들죠. 그래도 진짜 크로켓은 먹고 싶어요. 포슬포슬 따끈따끈한 그 맛은 잊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모리 마리는 음식 묘사가 좋아서 자꾸만 허기가 져요. 차이를 마시면서 과자까지 한 봉지 뜯은 거 있죠. 아삭아삭 소리를 즐기며 그녀의 상큼한 채소 요리를 읽다 보면 맛이 상상된답니다. 맞아요. 삶은 감자를 간장에 찍어 먹는 거. 마리도 싫다고 했지만, 저도 싫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간장에 조린 감자는 맛있는데...

어라라. 모리 마리랑 통하는 구석이 제법 있네요. 공통점을 발견해나가면서 점점 그녀에게 적응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지. 
처음엔 싫었어도 나중엔 친근감이 느껴진 것은, 제가 그녀 삶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홍차와 장미의 나날을 즐기는 그녀를 만난 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만났습니다. 이번엔 어쩐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모리 마리의 삶을 건조하게 축약하면 부족함 없이 귀하게 자란 아가씨가 영락을 거듭하다 결국 늙어서 고독사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교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가 남긴 글을 통해 그 축약된 인생의 주름을 정성껏 펴서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 매 순간이 사금처럼 잘게 빛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싱크대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셋방의 침대 위를 은접시와 유리병으로 장식해 유럽으로 변신시키고, 흔한 올리브색 천에서 보티첼리의 회화를 연상할 수 있었던 정신적 귀족. 풍요했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비관에 빠지는 일 없이 자기만의 미의식으로 세운 왕국에서 우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천진하고도 강한 사람. 어쩌면 아버지를 잃고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아이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마리의 성년 이후의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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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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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불안이 심한 딸은 밤이 되면 잠을 자려 하지 않았습니다. 잠이 들면 텅 빈 공간에 자신만 남겨져있는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저는 꿈나라로 유도하는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고, 아이 눈높이에 맞는 과학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었지만 피곤한 날이면 '바람 아저씨 온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아이를 겁주고선 제 품에 숨겨주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는 그게 없다는 걸 알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요. 세계 곳곳에서 저 같은 부모가 만들어낸 다양한 형태의 괴물들이 있을 텐데요.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보기왕이 온다>라는 제목을 보았을 땐 뭔가를 잘 보는, 킹왕짱 잘 보는 녀석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보기왕은 서양의 부기맨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보기만, 보기마, 부기메, 보기완 등의 일본식 이름으로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졌기에 실제로 이런 이름을 가진 괴물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이 명칭은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설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괴물은 있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망태 할아버지가 아이를 집어가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무언가가 아이를 주워가는 탓에 갑자기 아이가 사라졌으니까요. 만화나 애니, 소설에서는 아이들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차라리 카미카쿠시인게 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러나 보기왕을 알고 난 후엔 무엇이든 아이를 데리러 오는 존재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한 걸까요.

<보기왕이 온다>는 세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문밖에서 누군가를 찾는 기이한 존재를 만났던 히데키의 이야기, 두 번째는 히데키의 아내 가나의 이야기였는데요. 세 번째는 뜻밖에도 히데키와 가나 가족과 상관없으나 그들 부부를 도우려는 노자키의 이야기입니다. 
보기왕은 문밖에서 말을 겁니다.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리틀포니씨 계신가요?"라는 물음에 "안 계셔요."라는 대답조차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문을 열어주면 더 큰일입니다. 현관문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괴이한 회색 형체의 사람 비슷한 것을 보거나, 철제라면 도어 스코프를 통해 확인하거나, 인터폰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겠지만 저희 엄마 집처럼 이런저런 것들이 없는 곳에 그것이 찾아와 저를 찾는다면 무슨 일인가 싶어 엄마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버리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택배입니다. 포니씨 계신가요." 하면 무의식중에 "네에." 대답하며 문을 열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입을 가진 보기맨은 집 안으로 들어와 자신이 원하는 이를 데려가기 위해 방해가 되는 자들을 물어뜯습니다. 아니 반드시 집이 아니어도 대답만 한다면 회사로도, 커피숍으로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전화를 걸어 대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애초에 그와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히데키 가족을 노리는 걸까요?

이 소설에는 수많은, 다양한 폭력이 들어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하는 폭력, 의식적으로 가한 폭력, 저항할 수 없었던 사람들, 속으로 삭한 사람들, 상처 준 자와 받은 자들.... 그런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보기왕이 온다>는 데뷔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묘사와 흡인력이 뛰어난 소설입니다. 일본 호러 대상의 심사위원이었던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등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2018년 12월 <고백>의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에 의해 오카다 준이치,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영화로 개봉합니다. 마츠 다카코와 코마츠 나나도 나온다는군요. 제목은 <온다> 이고요. 긴장 가득했던 그 분위기를 영화에서 잘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연진도 그렇고 감독도,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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