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모든 순간을 나답게 사는 법
브레네 브라운 지음, 이은경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가 학년 초에 지원했던 동아리 면접에 두 군데나 떨어지고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동아리에 떨어진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울고불고 분노하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요. 학생부 삼 년 계획에 치명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말은 만들기 나름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온 초청 강사가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한 학생부는 대학 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애가 또 울고, 어떨 수 없이 들어간 동아리에서 과제를 내거나 집합시킬 때면 또 울었습니다. 말로 달래면서도 솔직히 얘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공감 부족이었습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어린 시절 자신이 원했던 곳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이 책을 쓰는 순간까지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건 빠른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진정한 우주 아싸인 저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말로 달래며 다정함의 연고를 발라도 치유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겁니다. 
소속감에서라면 저는 아이와는 다른 상실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 정도로 뭘... 하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상처의 크기는 자신의 척도로 재는 것이 아닌데요. 

빈곤, 폭력, 인권 침해 같은 고통과 같은 선상에서 보더라도 자기 가족에 속하지 못한다는 감정은 굉장히 위험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감정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 자존감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5)

책 속에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그래요. 그래서 오래전의 저는 집을 떠났었습니다.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하더라도 나만 없으면 이 가족이 완전할 것 같았거든요. 내 존재는 손에 박힌 가시 같은 거라 사라지면 하나의 단란한 가족이 완성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스스로의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 완전한 가족을 만들어 주는 건 실패했습니다. 저는 자유를 얻은 대신 가난을 획득했지만요. 저는 자유와 (금전문제를 제외한) 평화를 얻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상당히 굴곡지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원하던 - 깨끗하고 따뜻하거나 시원한 집에 살며 세탁기에서 빨래를 해 바람 잘 드는 곳에 널 수 있으며 이웃과의 교류는 최소한으로만 하고,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고, 원하는 날엔 대중교통으로 대형마트에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내게 있어 부족한 건 돈 하나뿐인데 왜 나는 여전히 우울할까요. 예민하고 까칠하고 누군가가 나를 괴롭힐 것 같은 불안감에 늘 긴장합니다.

스스로 인정하긴 싫지만 외롭기 때문인가 봅니다. 나를 괴롭히는 불안 우울은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있을 때면 거짓말처럼 사라지거든요. 텀블러를 가지고 20여 분을 걸어내려가면 만나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인사하고, 커피숍에 들어가 오늘의 커피 한 잔을 삼천 원에 사, 자리에 앉아 책을 펴면 그렇게 안정적일 수 없어요.  내가 이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소속감 때문이겠죠. 여기선 어떤 적응도 필요 없어요. 그냥 들어가 앉으면 소속이 되는 겁니다. 뜻하지 않게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는데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소리를 경계하는 것보다 이곳의 사람들이 편해요. 때로는 나를 까칠하게 만드는 소리들이 있긴 하지만 견딜만해요. 불편하지만 편하다는 역설을 느낄 수 있어요. 

진정한 소속감은 자기 자신을 굳게 믿고 자기 자신에게 속함으로써 가장 진정한 자기 자신을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고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황야에 홀로 서는 것에서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정신적 체험이다. 진정한 소속감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바꾸길'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길 요구한다. (p61)

겨우 커피숍에 앉아있는 걸로 소속감이니 위로감이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는 제가 황당할 수도 있지만 저 자신에게는 큰 위로가 되거든요. 요즘 장문의 글이 잘 안 써져서 고민이라 블로그 하나만 하고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관둘까 했지만 그게 또 힘들더라고요. 단문의 글인데 반응은 무척 빨라요. 그게 마약같이 뇌를 자극하나 봐요. 정말 좋아서 좋아요 누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누가 내 말에 반응을 해줬다는 게 기쁜 거예요. 이 무슨 바보짓인가요. 결국 외롭지 않다고 우기는 제가 실은 외로워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외로우면 세상에 나가서 인간관계를 구축하면 되지 않나요. 저는 왜 은둔(?) 하는 걸까요. 페이스북에서 자신과 의견이 맞는 친구만 사귀는 건 자칫하다가는 도덕적 배제를 익히고 행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제 페친님들은 거의 작가나 출판 관계자분들이라 중립을 많이 지키시는 편이지만, 아이의 말을 듣자 하니 어디는 파란 일베라고 불릴 정도로 심하다고 합니다. 나랑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심한 말을 해대는 건 너무해요. 네이버처럼 익명이 보장되는 곳은 더 심하죠. 뉴스 댓글 좀 보세요. 어떻게 저렇게 미운 말만 골라 하는 건지. 어떨 땐 슬프기도 합니다. 

비인간화와 책임 추궁은 상호 배타적이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비인간화하는 행위는 책임을 추궁하거나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도구가 아니다. 좋게 말해서 감정 분출이고 냉정하게 보면 타락이다.(p106)

sns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소통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수전 핀커는 저서 <빌리지 이펙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짧은 진화 동안 인류는 서로의 모든 몸짓과 의도를 능숙하게 읽어내는  무리 생활 영장류에서 각자 자기 전용 스크린에 정신이 팔린 단독 생활 종으로 변했다."(p189)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직접 상호 작용은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혈류와 뇌에 유익한 호르몬을 방출하며 수명 연장에 기여한다고 하는데요. 스크린에 코 박고 타인과 교류를 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외롭지 않다고 외치는 저 같은 행동은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니 조금 걱정됩니다. 책에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오염 지역에 살면 조기 사망 가능성이 5퍼센트 증가하고, 비만인 경우 20 퍼센트, 과음은 30 퍼센트 증가하는데 비해 외로움은 45 퍼센트에 이른다고 합니다. (p.81) 그렇다면 저의 경우,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의 스트레스와 외로움 중 어느 쪽이 더 해로울까요? 다행히 긴밀한 접촉뿐만 아니라 눈을 마주치거나 악수를 하는 사소한 접촉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스타벅스에서 친구를 만나는 정도로도 담배를 끊은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단골 책방이나 북 카페를 찾아가거나 해볼까요? 

실은 이 책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는 밖에 나가 놀라고 등 떠미는 책은 아닙니다. 인간관계 구축이 힘들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두려움이나 분노의 원인을 살피고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외로움을 인정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300 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도 와닿는 부분이 많아서 플래그를 많이 붙였습니다. 읽을수록 빠져들고 마음에 박혔거든요. 내용은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늘 그렇지만 실천하려면 용기와 이해가 필요해요. 그건 스스로가 찾아서 갖춰야 할 텐데, 심지어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데.... 어렵습니다. 그게 제일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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