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패러독스 -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먹는 ‘식물들’의 치명적인 역습
스티븐 R. 건드리 지음, 이영래 옮김, 양준상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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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건강검진을 등한시하고 살아온 지 어언... 음. 
결국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설마하니 내가 성인병에 걸리겠어? 비만이긴 하지만 가족력이 좋으니 괜찮을 거야, 문제없어.라고 생각했던 건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모든 병이 한꺼번에 달려와서 딱 달라붙어있었는데도 저는 전혀 몰랐어요. 그냥 피곤한 거겠지, 나이 먹어가니 체력이 떨어지는 거겠지 하며 넘겼습니다. 병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을 먹으며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늘 빼먹지 않으셨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노력해야 좋을까요? 모든 식이요법을 다 행하기엔 살맛이 안 날 것 같아서 뭔가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춰보자 싶어서 당뇨와 건강이라는 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전혀 안 보던 건강 프로그램도 VOD를 통해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구나 슬프기도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남은 날들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지침을 따른다면 말이죠.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심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관련 도서를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플랜트 패러독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랍니다. 이런 타이틀에 혹하는 제가 아니기에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요. 책 뒤를 보니 제가 좋아하는 저자 메멧 오즈가 추천을 했더라구요. <내 몸 사용 설명서>, <내 몸 다이어트 설명서>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러니 이 책을 한 번 정독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플랜트 패러독스>는 렉틴과 장내 미생물 구성(저는 장내 세균총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에 초점을 맞춘 건드리 박사의 건강요법입니다. 렙틴이나 그렐린은 메멧 오즈의 저서를 통해 읽어서 알고 있었지만 렉틴은 생소했습니다. 
렉틴이란 동식물에서 발견되는 거대 단백질 복합체로 종류는 다양한데, 주로 식물체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숙성전에 과실이 먹히면 씨앗을 퍼트리는 데 불리하므로 동물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방어용으로 배출, 보유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성숙과에는 렉틴이 풍부하기 때문에 후숙 과일은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렉틴은 당질 복합체와 결합하는데요. 곰팡이나 세포 표면 등에 달라붙어 체내에 들어오면 신경계, 관절, 체액 등의 당분자와 결합하게 되어 독성을 나타내거나 염증을 유발합니다. 

렉틴이 체내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친구가 있거나 방어할 수 있는 체계가 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몇 천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정도의 렉틴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진화되었는데요. 어째서 과거보다 현대에 렉틴에 대한 문제가 심화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요.
조리법이나 식사 형태, 섭취량이 변화했다는 것도 무시 못 할 일입니다. 외식이라거나 반조리 식품의 애용, 가공식품, 테이크 아웃 - 포장하는 포장재까지도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 이런 것도 문제지만 식자재를 키우는 데 드는 제초제, 농약, 비료, 첨가물 등의 물질들이 체내 정보 전달계나 장내 미생물을 교란해 렉틴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합니다. 

한편, 건강에 변화를 일으키는 교란 물질은 무척 다양한데요. 
항생제를 사용하면 당연하게도 장내 미생물도 죽습니다. 그걸 다시 회복하는 데엔 2년 걸려요.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항생제나 소염진통제를 먹은 사람은 필히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라고 권하더군요. 장내 미생물총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장내 세균총이 무너진 경우는 여러 가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크론병, 당뇨, 비만, 천식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제산제는 위산을 약화시키는 약이니만큼 위장에서 위산에 의해 살균되어야 하는 유해 박테리아가 죽지 않고 소장관으로 이동하여 장누수 증후군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대사를 방해하고, 대뇌 미토콘드리아가 오염되면 치매 확률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저는 겔포스 등의 제산제에 들어있는 알루미늄이 중금속으로서 뇌에 축적되어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미토콘드리아의 오염 자체가 문제일 줄이야. 
수크랄로스, 사카린 같은 비영양성 인공감미료가 좋은 박테리아를 줄이고 나쁜 박테리아를 늘릴 뿐만 아니라 단맛- 뇌 작용을 교란시켜서 더 많은 에너지 식품을 찾게 된다는 것은 무척 유명한 이야기이죠. 어쩔 수 없이 사용하더라도 양을 적당히 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물론 저자는 이런 걸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손 세정제, 치약 등의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것, 브랜드 제초제 라운드 업의 문제, 청색광에 대한 지속적 노출에 대한 경고도 하고 있습니다.

책의 중반에 이르면 본격적인 플랜트 패러독스 요법을 실시하는 방법 및 식단이 나옵니다. 
아. 저는 못하겠어요. 이를 따르려면 일단은 경제력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아보카도와 유기농 식품이 필요하거든요. 동물복지 사육 방식에 따른 돼지고기와 특별한 닭이나 계란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식단 자체가 좀 생소해서 플랜트 패러독스 식이요법을 적용하려면 한국 서민도 가능한 식사 지침이 필요합니다. 식단은 서구인의 형편에 맞게 구성되어 있는데요. 중하 이하의 경제력을 가진 서구인도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처한 형 상황에서 이 요법을 따르려면 선택이 필요합니다. '허용' 식품에서 골라 먹을 것인가. 아니면 '금지' 식품을 멀리할 것인가. 
제가 이런저런 토를 달면 건드리 박사가 그렇게 말할 거예요. 트집장이, 프로불편러, 고집장이. 

건드리 박사는 우리가 다양한 것을 충분히 섭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충제를 섭취하라고 합니다.
렉틴 차단제로 글루코사민이나 MSM, 다중쇄 오메가-3, 폴리페놀, 파이토케미컬, 프리바이오틱스(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가 되는), 당 방어제로 크롬, 아연, 셀레늄, 메르베린, 울금추출물을 먹으라고 하는데요. 가급적이면 식이로 섭취하면 좋지 않냐고 평소 주장해왔던 저로선 목록 자체가 난감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오메가 -3 정도는 먹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의사와 상의 후 섭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허용 식품과 금지 식품의 목록을 살펴보면 참 어렵습니다. 
205 페이지에서 천 년 전 인간은 금지 목록의 식품을 먹지 않았다며 근거를 들었습니다. 먹지 않았기에 장내 세균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렉틴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이것이 근거라면 한국인으로서 천 년 전에 먹었다는 문헌 기록이나 근거가 있다면 먹어도 좋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렉틴에 면역이 있을 테니까요. 또 하나, 콜럼버스의 교환에 의해 들어온 낯선 식물을 배제하는 것이 포인트 중 하나라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본래 살았던 이의 후손은 아무 문제 없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유럽에서 들여온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하는 것 같은데요. 
건드리 박사가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꼽은 것들 중 몇 가지는 현미나 콩, 보리, 귀리, 밀 등이 있습니다. 귀리나 밀은 그렇다손치더라도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아시아인 입장에서는 현미건 백미건 정도껏 섭취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그런 게 있을 테니까요. 
콩 역시 건드리 박사 입장에서는 18세기 말에 중남미로부터 들여온 음식이니 거부 목록에 올렸다고 하는데요. 홍익희 세종대 교수 칼럼에 의하면 우리는 고조선 때 이미 콩, 팥, 기장을 재배했다고 합니다(기원 1300년 경 청동기 유물과 함께 발굴). 심지어 야생종의 콩이 다양하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이며 기원전 7세기에 중국에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서양에 전파되어 19세기 중반에 미국에 전파가 되었다는데요. 현재는 전 세계 콩의 70퍼센트 이상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다량 생산하는 콩과 옥수수가 식량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그리고 렉틴 문제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콩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콩을 이용한 발효음식이 등장하니만큼 콩의 렉틴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신라 신문왕 혼례 납폐 품목에도 쌀, 술, 기름, 메주, 장 같은 게 있었는데 우리가 안 먹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 건드리 박사의 목록에서 음식을 선택할 때에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건강 서적이 그렇듯이 맹신을 하는 건 위험합니다. 자신에게 맞춰서 적용을 잘 해야 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믿고 눈 딱 감고 그대로 프로그램을 따라 해보면 몸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지만 어렵습니다. 적절히 취사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들을 상당한 부분에서 뒤엎고 있기에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렉틴은 무엇인가, 우리 몸에서 무슨 짓을 하는가, 우리가 렉틴을 피해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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