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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분리 불안이 심한 딸은 밤이 되면 잠을 자려 하지 않았습니다. 잠이 들면 텅 빈 공간에 자신만 남겨져있는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저는 꿈나라로 유도하는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고, 아이 눈높이에 맞는 과학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었지만 피곤한 날이면 '바람 아저씨 온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아이를 겁주고선 제 품에 숨겨주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는 그게 없다는 걸 알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요. 세계 곳곳에서 저 같은 부모가 만들어낸 다양한 형태의 괴물들이 있을 텐데요.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보기왕이 온다>라는 제목을 보았을 땐 뭔가를 잘 보는, 킹왕짱 잘 보는 녀석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보기왕은 서양의 부기맨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보기만, 보기마, 부기메, 보기완 등의 일본식 이름으로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졌기에 실제로 이런 이름을 가진 괴물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이 명칭은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설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괴물은 있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망태 할아버지가 아이를 집어가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무언가가 아이를 주워가는 탓에 갑자기 아이가 사라졌으니까요. 만화나 애니, 소설에서는 아이들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차라리 카미카쿠시인게 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러나 보기왕을 알고 난 후엔 무엇이든 아이를 데리러 오는 존재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한 걸까요.
<보기왕이 온다>는 세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문밖에서 누군가를 찾는 기이한 존재를 만났던 히데키의 이야기, 두 번째는 히데키의 아내 가나의 이야기였는데요. 세 번째는 뜻밖에도 히데키와 가나 가족과 상관없으나 그들 부부를 도우려는 노자키의 이야기입니다.
보기왕은 문밖에서 말을 겁니다.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리틀포니씨 계신가요?"라는 물음에 "안 계셔요."라는 대답조차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문을 열어주면 더 큰일입니다. 현관문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괴이한 회색 형체의 사람 비슷한 것을 보거나, 철제라면 도어 스코프를 통해 확인하거나, 인터폰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겠지만 저희 엄마 집처럼 이런저런 것들이 없는 곳에 그것이 찾아와 저를 찾는다면 무슨 일인가 싶어 엄마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버리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택배입니다. 포니씨 계신가요." 하면 무의식중에 "네에." 대답하며 문을 열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입을 가진 보기맨은 집 안으로 들어와 자신이 원하는 이를 데려가기 위해 방해가 되는 자들을 물어뜯습니다. 아니 반드시 집이 아니어도 대답만 한다면 회사로도, 커피숍으로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전화를 걸어 대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애초에 그와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히데키 가족을 노리는 걸까요?
이 소설에는 수많은, 다양한 폭력이 들어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하는 폭력, 의식적으로 가한 폭력, 저항할 수 없었던 사람들, 속으로 삭한 사람들, 상처 준 자와 받은 자들.... 그런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보기왕이 온다>는 데뷔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묘사와 흡인력이 뛰어난 소설입니다. 일본 호러 대상의 심사위원이었던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등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2018년 12월 <고백>의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에 의해 오카다 준이치,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영화로 개봉합니다. 마츠 다카코와 코마츠 나나도 나온다는군요. 제목은 <온다> 이고요. 긴장 가득했던 그 분위기를 영화에서 잘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연진도 그렇고 감독도, 정말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