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패시지 1~2 - 전2권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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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 조금 당황했습니다. 두께야 그렇다 치더라도 근래 보기 드문 작은 폰트가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 책, 만만치 않겠구나.

하지만 자간과 줄 간격이 읽기 좋게 되어 있어 노안이 시작되는 제 눈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활자가 주는 상상력에 금세 내가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잊을 수 있었습니다. 점점 세상을 느리게 살아 하루가 짧아지고 있는 저는 그 풍부한 상상을 통해 책을 소화시키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며칠을 붙잡고 있었던 건지. 그러나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패시지 트릴로지의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어떤 사건, 이를테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말도 안 되는 실험이나 정부의 비밀 실험으로 인해 디스토피아가 일어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며 그 집단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가 우연히 알게 되고 다시 문명을 회복하는 이야기, 심지어 바이오해저드 같은 경우엔 면역을 지닌 사람으로 인해 백신을 만들어 치료나 예방의 길이 열린다...라는 스토리는 흔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매번 비슷한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괴물이나 액션은 좀 다를지 몰라도 등장인물이나 그들이 살고 있는 콜로니 같은 건 거의 비슷하게 연상됩니다. 아이작 마리온의 <웜 바디스>와 후속작 <타오르는 세계>에 등장하는 배경과 패시지 퍼스트 콜로니를 비슷하게 상상했습니다. 마을 지도가 첨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 소설 <패시지>는 기존의 디스토피아 역경을 이겨나가는 스토리와 비슷한 전개를 따라가고 있음에도 그들을 뛰어넘고 있었는걸요.

제로의 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전멸하기 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한 박사가 영원불멸의 약을 연구하고 있었고, 정부는 무적의 병사를 만들기 위해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고 임상 실험을 위해 사형수들을 이용하지만 그들은 극심한 고통 끝에 자신이 아닌 자가 되고 맙니다. 이제까지의 연구는 단 하나의 완성체를 위해였는데요. 빌어먹을 남자(그 남자의 이름이 빌이라는 건 우연이겠지만)에게 몸도 마음도 털린 자넷이 홀로 낳아 키우다 슬픈 사건으로 수녀원에 버리고 간 여자아이 에이미가 그 완성체가 될 것이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에이미를 지키려는 레이시 수녀에게서 아이를 납치한 FBI 요원 도일과 울가스트는 지금까지 실험체를 감언이설로 꼬드겨 제공하였지만 이렇게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다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어린 딸을 잃은 울가스트는 에이미에게 깊은 정을 느끼고 보호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험동으로 옮겨지고 에이미는 실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들이 어떻게 에이미라는 아이를 특정해서 찾아냈는지 의문이지만 이 소설에서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에이미는 실험 이전부터 영혼의 소리를 듣는 아이였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사람이 아닌 것의 소리까지 듣습니다. 어째서 그런 능력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 아이는 노아의 방주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로의 그날, 실험동의 청소부들의 마음에 침투한 실험체들은 그들을 이용해 연구소를 파괴하며 빠져나가고 그 핏빛 난리 통에서 울가스트는 에이미를 구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언제까지고 영원히 그렇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운명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울가스트가 죽었을 때 무척 슬펐습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역사가 그렇듯 이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살아있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는걸요.

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문명이 발달했나 봅니다. 국제회의 자료, 각국의 대학 연구소 등이 존재하는 걸 보면요. 그들이 그곳에서 무얼 하는지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발굴된 자료 '사라의 서'를 발표하는 장면, 아니 사라의 서 만이 책에 등장합니다. 사라는 퍼스트 콜로니의 간호사이자 의사입니다. 그리고 제로의 날 이후 90여 년이 지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었죠. 그곳은 피터나 알리시아 같은 파수꾼이 있는 작은 규모의 생존자 마을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연히 그 긴 세월 동안 누구하고도 만난 적 없이 외롭게 지내던 에이미를 만나게 되고 에이미가 피터를 찾아 콜로니를 찾아온 그날 이제는 바이럴이라고 부르는 감염체들도 마을을 습격합니다.

신비한 소녀 에이미는 콜로니에 혼란을 가져오지만 그 아이의 운명에 따라 함께 콜로라도로 향하는 피터와 친구들. 그들은 거센 운명의 폭풍을 맞습니다.

<패시지>에는 무척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허투루 표현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이 나타났다가 느닷없이 사라집니다. 바이럴이 순식간에 채 가버리는 것처럼요. 사라질 땐 겨우 한 문장이면 족했습니다.

작은 글씨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라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읽는 속도가 느리다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감이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죠.

이 소설은 삼부작입니다. 이제 패시지의 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다음 시즌인 <트웰브>,<시티 오브 미러>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어떠했는지.

어째서 스티븐 킹이 극찬했는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FOX TV 드라마 원작 소설이라고 하는데요.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매체를 통해 방영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여기까지 찾으러 온 바로 그것요.

'패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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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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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문학이라는 건 무척 생소해서 가까이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붐을 대표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대학시절 선배들이 품에 끼고 다니는 걸 본 적 있지만 어쩐지 저 책을 읽으면 고독에 사로잡힐 것 만 같아 어떤 책인지 알아보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도 저에겐 멀었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만이 가까웠는데 그마저도 그의 글보다는 바벨의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었기에 그의 이름을 알뿐이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소설에 관해서 그럴진대, 시는 오죽할까요. 스페인어를 전공한 올케는 마르고 닳도록 읽었을 파블로 네루다의 시조차 저는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몇 년 전부터 집에 꽂혀있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 덕분이 이름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평소에도 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 낯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기에 멀리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가을이나 봄처럼 마음을 간질이는 때가 되면 살며시 시의 세계를 엿봅니다.

라틴 문학이라고 하니 괜히 정열적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라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머릿속에 리키 마틴이나 샤키라, 카밀라 카베요 같은 팝 가수만 떠오릅니다. 노랫말도 시라고 생각해도 좋을는지.

길가의 돌멩이만큼 시인이 나오는 곳 라틴 아메리카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 자체가 희한한 일이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조차 읽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아마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번 서가명강의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를 통해 인연이 닿았습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김현균 교수의 명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기존 서가명강 시리즈와 같이 책을 통해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명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읽을 수 있다는 것) 장점이 있습니다. 책을 접하면서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라틴 아메리카 문학도, 시도 저에겐 가깝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닷가에서 종려나무 흔들리는 걸 바라보며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를 들으며 책을 읽으니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네 명의 시인을 각 챕터에 두고 그들의 일대기와 시에 대한 생각, 그들의 대표적인 시, 시가 사회와 문화계에 미친 영향 등을 이야기합니다. 역사적인 특수성 때문에 서구적이지만 또한 서구적이지 않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가 시에 녹아 있으며 스페인 내전 같은 사회의 큰 혼란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루벤 다리오는 스페인어권 문학의 황태자이자 근대 시의 선구자, 스페인어의 혁명가로 불린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다리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시대를 앞서갔던 다리오는 무지렁이들이 판치는 척박한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모데르니스모'라는 이름의 문학적 혁신은 그 분투의 산물이었다. -p.54

한곳에 정주하기를 거부하고 삶과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던 역동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너[책]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는 시구가 말해주듯이,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골방에 처박혀 글을 끄적이는 백면 서생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슬픔, 고통, 그리고 절망을 뜨겁게 호흡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희망을 길어 올린 광장의 시인이다. -p.130

"나는 신(神)이/ 아픈 날 태어났다." 세사르 바예호는 평생 가난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난도 병도 정치적 핍박도 자기 파괴적인 습관도 그의 타고난 재능을 잠재울 수 없었다. 바예호의 시는 비인간적인 세상에 내던져진 소외된 존재의 고통으로 가득하다. (중략) 고통과 고독을 넘어 인간적 연대와 휴머니즘의 경지로 나아갔다. -p.212

니카노르 파라는 반시(antipoesia)를 주창한 시인으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안티'정신으로 무장한 이단아이자 저격수인 그는 일상적인 언어로 자신만의 언어유희를 보여주고 유머와 아이러니, 풍자를 동원해 시를 엄숙하고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을 깨트렸다. 파라가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과거의 시를 부정하고 다시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시의 질서와 문법은 무엇이었을까? -p.274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쩐지 김현균 교수의 라틴 아메리카 시에 관한 강의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전공자들을 위한 심도 있는 강의라면 무리지만, 일반인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양 수업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서가명강 시리즈를 애독해온 기간 중 처음으로 서가명강 팟캐스트에 접속해보았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45

제15강으로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가 이미 올라와 있길래 책을 펴 놓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대학시절 교과서를 두고 교수님 강의를 들었던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앞서의 시리즈 강의도 있었습니다. 한 번에 다 들을 수는 없지만 15분 정도 분량으로 편집해 올라와 있으니 책을 앞에 두고 한두 편씩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련하게도 왜 이제야 시작했는지.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는 제게 특별한 책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 그리고 시에 대해서 알게 해준 첫 번째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디오 클립으로 처음 들은 강의이기도 하고요.

책은 모두 읽었지만 당분간 독서대 위에 그냥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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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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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제목이 곧 내 마음.

운동해야 한다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진입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바닷가까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해 그런가 온몸이 천근만근. 그렇다고 집에서 그 시간 동안 늘어져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할 일이 많아 꽉꽉 들이차있는데 어떻게 운동하러 가요...라고 말하지만 실은 가볍게 한 시간 정도 다녀오지 못할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날씨가 궂으면 궂어서 못 나가고 맑으면 볕이 너무 따가워서 못 나가고. 제가 그렇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평소에 운동을 좀 해둘 걸 하고 후회하며 아파서 못 나간다고 하고 몸이 좋아지면 잊어버려요.

이 책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받았을 때도 그랬어요. 무지무지 가벼운 터치의 실없는 에세이 일 거라 지레 짐작하고 평소 추구하는 역설이나 블랙코미디를 완성시키기 위해 이 책을 들고 제주 시내의 서브웨이에 갔습니다. 무한리필 탄산음료를 마시지만 제로 코크를 마신다. 푸짐한 샌드위치를 먹지만 드레싱은 올리브오일과 레드와인 식초만 사용했으니 괜찮다며. 그리고 서브웨이에 도착하기 전에 좀 많이 돌아다녔으니, 그리고 이곳을 나가면 또 한참 걸을 거니까 괜찮다며 샌드위치와 코크를 마시고, 기다렸던 아이를 만나자 쿠키도 시켰습니다. 한 개에 천 원인데 세 개에 이천칠백 원이면 당연히 세 개를 사죠. 이렇게 차곡차곡 먹어준 결과, 지금 컨디션 난조입니다. 운동을 하던지!!! 먹는 것을 신경 쓰던지!!! 아니 실은 둘 다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자괴감 속에서도 이 책을 주말 내 읽었습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진지합니다. 30분이나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에요. 진지하게 읽고 있노라면 저자 특유의 유머가 발동. 뿜습니다.

저의 인생 중 아아아아아주 일부가 겹쳐 보입니다.

정말 아주 조금.

그러나 저자는 저보다 많은 시도를 하고, 많은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저자보다 운동 안 하기 위해 댈 수 있는 핑계가 몇 배 많고, 운동해야 할 이유 역시 몇 배 많습니다. 읽고 있노라면 저자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미용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아닌 체력과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합니다. 어째서 남자는 벌크업, 여자는 슬림하기 위해 운동해야 하는 건지.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을 찾았는데 '그래도 살 빠지면 좋아할 거면서.'라는 에피소드는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저자도 그런 일들을 겪었더군요. 운동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체력을 위해 운동을 합니다.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다가 포기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말이에요. 헬스나 요가 같은 운동 시설에 대한 기부 천사라고 할까, 운동 유목민이라고 할까. 꼭 맞는 운동도 있고, 그렇지 않은 운동도 있습니다. 운동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으면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 에피소드 안에서 저자는 '차별'이나 '편견'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친절과 참견 그 사이 '무례함'도 말합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하며 책 읽기를 멈춥니다.

저는 어릴 때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어요. 남동생은 운동이라면 질색. 아빠에게 태권도 도장에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기집애가 무슨 태권도냐고 타박하시더니 갑자기 동생을 태권도장에 등록시키는 겁니다. 남자애니까요. 가고 싶었던 저는 여자라서 못 가고 가기 싫었던 동생은 억지로 도장에 다녔죠. 다녀와서 저에게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6학년 때였나... 태극 몇 장 실기시험(요즘은 수행평가라고 하죠) 만점을 맞았어요. 이것 보라죠. 제가 만약 그때 태권도를 배웠다면 둘 중 하나였을 겁니다. 생각보다 난도가 높은 훈련에 태권도를 싫어하게 되었거나 지금보다 조금 튼튼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겠죠. 왜 느닷없이 여자라서 안 시켜준 태권도 이야기를 하느냐, 지금은 다들 성차별 없이 도장에 보내주지 않느냐 하실지도 모르지만 운동과 관련된 거 상담받으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남자는 벌크, 여자는 슬림. 나이 먹으니까 좀 낫더라고요. 부상 예방을 위한 운동, 체중 감량도 대사증후군 예방.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신랄하고 발랄한 운동 에세이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으시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거예요. 저는 차별,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고요.

스트레칭과 걷기를 다시 꾸준히 해야겠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운동 유목민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뭐라도 할 생각이 나니 거참 희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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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읽기의 기술 - 숫자를 돈으로 바꾸는
차현나 지음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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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읽을 책을 가방에 넣고 스타벅스에 도착했습니다. 줄을 오래 선 다음 마침내 카운터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주문하기를 불편해하는 저는 자리를 먼저 잡고 앉아서 매장 내 와이파이에 접속해 '동의함'을 두 개 누른 후 스타벅스 제공 와이파이를 사용합니다. 스타벅스 어플을 켜고 한참 고민하다가 이번 핼러윈 프로모션 음료인 툼툼 프라푸치노와 그린 티 크림 프라푸치노를 주문합니다. 시럽은 줄이고 녹차 파우더 양은 두 배로 늘립니다. 프라푸치노 로스트 샷 추가를 하고 그린 티 크림 프라푸치노의 우유 대신 두유로 바꾸고 주문 버튼을 누릅니다. 핼러윈 프로모션 음료인 툼툼 프라푸치노는 스타벅스 카드에 충전해 놓은 돈으로, 그린 티 크림 프라푸치노는 별 12개 모아 받은 쿠폰으로 결제합니다. 평소엔 이름도 길고 복잡한 주문이 번거롭기도 하고 칼로리 높아 피하는 음료이지만 쿠폰이 생겼을 때는 과감하게 이런 달콤하고 라면 한 봉지 정도 칼로리인 음료를 주문합니다. 사이렌 오더가 아니었다면 절대 주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오늘의 커피나 아메리카노, 특별한 날엔 녹차라테면 충분합니다.

이른 아침이라 음료가 빠르게 제조됩니다. 제가 방문하는 스타벅스 함덕점은 20명 대기 정도는 우습습니다. 포니 고객님~하는 부름을 듣고 음료를 받아 자리로 돌아옵니다. 음료와 책 사진을 찍고 나서 여유롭게 책을 폅니다.

오늘 읽은 책은 <데이터 읽기의 기술>입니다. 스타벅스 코리아 1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이자 소비자 심리학 박사 차현나의 책입니다.

제가 실생활에 이 책을 이용할 일이 뭐 있겠냐마는, "모든 데이터는 심리학이다"라는 말에 혹했습니다. 데이터가 구슬이라면 그걸 잘 꿰어야 보배가 될 텐데. 데이터 모으는 방법은 쉬우나 보배로 만드는 법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있는 걸 테죠.

제가 방금 스타벅스에 들어와 한 행동과 주문의 결과를 볼까요.


영수 증안에는 제가 주문한 음료에 관한 데이터 육하원칙이 들어있습니다.

where : 제주 함덕점

who : 포니 (그렇습니다. 저는 스타벅스에도 포니로 등록해 두었습니다.)/ 스타벅스 멤버십 회원

what : 그린 티 크림 프라푸치노, 툼툼 프라푸치노를 이렇게 저렇게.

when : 2019년 10월 21일 오전 8시 23분

how : 어떻게 결제했냐하면... 쿠폰과 멤버십 카드에 충전해 둔 현금으로.

이 영수증에는 why를 제외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데요. 아이의 재량 휴업일에 제가 날짜를 맞추어서 바다가 보이는 스타벅스에서 프로모션 음료를 마시며 바다를 즐기고 책을 읽기 위해 방문했다는 것만은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수증을 발급하는 순간 포스기를 통해 들어간 데이터에다가 제가 스타벅스의 와이파이에 접속해 유지한 시간을 본다면 얼마나 거기 오래 체류했는 가하는 데이터도 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 단편적인 데이터만으로 제 소비패턴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보통날엔 커피를 마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이벤트적인 행동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스타벅스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합니다.

이를테면 녹차 라테를 주문하는 고객 중 많은 사람이 시럽을 줄이고 녹차 파우더의 양을 늘이는 걸 선호했다면 장기 데이터를 참고해 녹차 라테 레시피를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요새 거의 모든 기업과 사업체에서는 데이터 모으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데이터가 모인다고 해서 마케팅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일단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1. 인력 : 우리 회사에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있는가? 혹은 나(개인)은 그러한 인력인가?

2. 시스템 : 우리 회사에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가?

3. 데이터 : 우리 회사에 어떤 종류의 데이터가 있는가?

이 셋 중 하나라도 없으면 제대로 분석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p.166)

데이터의 중요성은 잘 알기에 데이터는 잔뜩 모아놓고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비자 공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회사가 의외로 많다 고하는데요.

데이터는 정말 '구슬'일뿐이다. 구슬 자체가 많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떤 종류의 구슬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도 모르며, 심지어 그 구슬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데이터는 목적이 있을 때만 정돈할 수 있다. POS가 있고, 매출이 있는데 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없는지 의아한가? 그러나 그 많은 데이터는 목적을 가질 때만 목적 아래서 정렬되는 것이다.

-p.186

데이터의 수집과 그것을 잘 운용하여 논리적으로 배열, 제대로 사용해야만 매출 증대 또는 기업 이미지 개선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데이터 읽기의 기술>에서는 데이터의 수집과 운용에 관한 ABC를 명확히 이야기합니다. 데이터 분석에 앞서 꼭 해보아야 할 질문 열 가지를 통해서 객관적인 시점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합니다. 자신들의 편의에 의한 분석이 아니라 냉정한 분석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킵니다.

초보 기업가나 초보 사원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어나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데이터와 상관없는(혹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데이터는 수단일 뿐이다. 데이터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이미 데이터는 세상에 넘쳐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공공 데이터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액티브 데이터가 흩뿌려져 있다.

데이터의 목적을 설정하지 못한다면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어떤 데이터를 가치 있게 활용해야 할지 모른 채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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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입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구사 미쓰요시 지음, 이동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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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불교 신자가 아닙니다. 게다가 2년간 절 바로 앞에서 살며 새벽마다 울리는 범종 소리에 잠을 설치고 법회 있는 날의 소란함에 '절간같이 고요했다'라는 상투적 표현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불교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을 리 만무하지요. '불교'관련 책을 손에 들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종교를 떠나 앎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열자마자 큰일 났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쏟아지는 생소한 용어들. 불교 용어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십수 년간 다녔던 기독교의 용어도 때때로 낯선데 하물며 불교랴 말해 무엇하리오. 제가 아는 건 싯다르타, 그의 제자 아난다. 그나마도 '세인트 영맨'이라는 만화 덕분에 아는 것이라 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반야바라밀경이라는 경전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아요. 삼장 법사가 서천 서역으로 경전을 구하러 간다고 말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달아나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인 손오공과 자애로운 관음보살님 이런 정도의 모래알만 한 상식뿐이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넘쳐나는 불교 용어는 자비 없이 저를 때렸습니다. 산스크리트어고 한자어고 모르긴 매한가지라 오랜 시간 공들여 연구한 것을 친절히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이 무색할 따름이었습니다.

이 책 <불교 입문>은 1990년 1월 출간된 이래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명저로서, 역자가 작업의 저본으로 한 것은 2016년 11월의 36쇄이다. 프롤로그에서 불교 개괄을, 1부에서 인도 불교의 역사를, 2부에서 인도 불교의 사상사를, 3부에서는 각지로 퍼져나간 불교의 전개 양상을 다룬다. 저자가 68세에 출간한 이 책에는 그의 학문적 온축과 원숙한 역량이 잘 나타나 있다. 먼저 기본 용어와 개념을 명확하게 분석하며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저자의 학문적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문헌학적 분석을 중시하면서도 사상적 이해를 병행하고 서양철학과의 비교도 시도한다.

- p.349 옮긴이의 글 중에서

인도 역사 전반을 보았을 때 힌두교가 전통이라 불교가 이단시되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는데요. 생각해보면 기독교 역시 유태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비슷한 양상이라 보아도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토착되어 있던 신앙을 밀어내고 자리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 책의 1부에서는 인도 불교사를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이는 '처음에'라는 페이지에 간략히 요약되어 있으나 집중해서 깊이 들어가면 역시 조금 어렵습니다. 제가 역사 자체를 어려워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냥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2부 인도 불교의 사상사에 들어가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용어도 좀 눈에 익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념이라거나 사상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서양 철학에 빗대기도 하여 좀 더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3부 각지의 불교 편에서는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가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지역과 사회에 맞게 어떻게 변화했나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으로 전파된 불교가 어떻게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는가 짤막하게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한국사 시간에 배웠던 것들도 떠오르고 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란 어떤 것인가 수박 겉핥기 식이지만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말씀도 얻었으니 책 읽기의 어려움을 이겨낸 보람이 있다 하겠습니다.

온갖 악은 하지 말며, 선함을 행하여 바쳐라.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거야 실로 온갖 부처의 가르침

(제183시, 이 '마음'의 원어는 '칫타')

-p.117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다른 누가 (자기의) 주인이 되겠는가.

실로 자기를 잘 제어한다면, 참으로 얻기 어려운 주인 얻게 된다. (제160시)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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