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패시지 1~2 - 전2권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 조금 당황했습니다. 두께야 그렇다 치더라도 근래 보기 드문 작은 폰트가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 책, 만만치 않겠구나.

하지만 자간과 줄 간격이 읽기 좋게 되어 있어 노안이 시작되는 제 눈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활자가 주는 상상력에 금세 내가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잊을 수 있었습니다. 점점 세상을 느리게 살아 하루가 짧아지고 있는 저는 그 풍부한 상상을 통해 책을 소화시키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며칠을 붙잡고 있었던 건지. 그러나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패시지 트릴로지의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어떤 사건, 이를테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말도 안 되는 실험이나 정부의 비밀 실험으로 인해 디스토피아가 일어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며 그 집단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가 우연히 알게 되고 다시 문명을 회복하는 이야기, 심지어 바이오해저드 같은 경우엔 면역을 지닌 사람으로 인해 백신을 만들어 치료나 예방의 길이 열린다...라는 스토리는 흔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매번 비슷한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괴물이나 액션은 좀 다를지 몰라도 등장인물이나 그들이 살고 있는 콜로니 같은 건 거의 비슷하게 연상됩니다. 아이작 마리온의 <웜 바디스>와 후속작 <타오르는 세계>에 등장하는 배경과 패시지 퍼스트 콜로니를 비슷하게 상상했습니다. 마을 지도가 첨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 소설 <패시지>는 기존의 디스토피아 역경을 이겨나가는 스토리와 비슷한 전개를 따라가고 있음에도 그들을 뛰어넘고 있었는걸요.

제로의 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전멸하기 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한 박사가 영원불멸의 약을 연구하고 있었고, 정부는 무적의 병사를 만들기 위해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고 임상 실험을 위해 사형수들을 이용하지만 그들은 극심한 고통 끝에 자신이 아닌 자가 되고 맙니다. 이제까지의 연구는 단 하나의 완성체를 위해였는데요. 빌어먹을 남자(그 남자의 이름이 빌이라는 건 우연이겠지만)에게 몸도 마음도 털린 자넷이 홀로 낳아 키우다 슬픈 사건으로 수녀원에 버리고 간 여자아이 에이미가 그 완성체가 될 것이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에이미를 지키려는 레이시 수녀에게서 아이를 납치한 FBI 요원 도일과 울가스트는 지금까지 실험체를 감언이설로 꼬드겨 제공하였지만 이렇게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다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어린 딸을 잃은 울가스트는 에이미에게 깊은 정을 느끼고 보호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험동으로 옮겨지고 에이미는 실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들이 어떻게 에이미라는 아이를 특정해서 찾아냈는지 의문이지만 이 소설에서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에이미는 실험 이전부터 영혼의 소리를 듣는 아이였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사람이 아닌 것의 소리까지 듣습니다. 어째서 그런 능력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 아이는 노아의 방주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로의 그날, 실험동의 청소부들의 마음에 침투한 실험체들은 그들을 이용해 연구소를 파괴하며 빠져나가고 그 핏빛 난리 통에서 울가스트는 에이미를 구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언제까지고 영원히 그렇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운명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울가스트가 죽었을 때 무척 슬펐습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역사가 그렇듯 이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살아있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는걸요.

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문명이 발달했나 봅니다. 국제회의 자료, 각국의 대학 연구소 등이 존재하는 걸 보면요. 그들이 그곳에서 무얼 하는지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발굴된 자료 '사라의 서'를 발표하는 장면, 아니 사라의 서 만이 책에 등장합니다. 사라는 퍼스트 콜로니의 간호사이자 의사입니다. 그리고 제로의 날 이후 90여 년이 지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었죠. 그곳은 피터나 알리시아 같은 파수꾼이 있는 작은 규모의 생존자 마을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연히 그 긴 세월 동안 누구하고도 만난 적 없이 외롭게 지내던 에이미를 만나게 되고 에이미가 피터를 찾아 콜로니를 찾아온 그날 이제는 바이럴이라고 부르는 감염체들도 마을을 습격합니다.

신비한 소녀 에이미는 콜로니에 혼란을 가져오지만 그 아이의 운명에 따라 함께 콜로라도로 향하는 피터와 친구들. 그들은 거센 운명의 폭풍을 맞습니다.

<패시지>에는 무척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허투루 표현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이 나타났다가 느닷없이 사라집니다. 바이럴이 순식간에 채 가버리는 것처럼요. 사라질 땐 겨우 한 문장이면 족했습니다.

작은 글씨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라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읽는 속도가 느리다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감이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죠.

이 소설은 삼부작입니다. 이제 패시지의 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다음 시즌인 <트웰브>,<시티 오브 미러>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어떠했는지.

어째서 스티븐 킹이 극찬했는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FOX TV 드라마 원작 소설이라고 하는데요.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매체를 통해 방영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여기까지 찾으러 온 바로 그것요.

'패시지'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