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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평점 :
지난 9월 <중국 5대 소설: 삼국지연의 서유기>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 책을 통해 구어체로 된 소설을 '백화 소설'이라고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삼국지연의>와 <서유기>모두 어린 시절부터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기에 이나미 리쓰코의 안내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죠.
이번에는 <중국 5대 소설: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 편을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만일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 편을 읽을 기회가 온다면 꼭 읽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니 정말 기뻤습니다. 책은 지난번보다 좀 두껍고 묵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엔 세 편의 소설을 이야기하려니 분량이 많이 질 수밖에요. 앞서의 책과의 차이점이라면, 지난번의 삼국지연의와 서유기는 백화소설이라 맛깔나게 구성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성격이 다른 별개의 소설이었다면 이번의 책은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이 서로 연관이 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는 점일 겁니다.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을 모두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서로 관계있음을 알고 있을 텐데, 저는 수호전과 금병매는 읽었으나 홍루몽을 읽지 않았고, 두 책을 읽었음에도 반금련의 그 늠름한 시동생이 수호전의 인기 인물 무송이라는 건 몰랐습니다. 수호전은 학생 때, 금병매는 몇 년 전에 읽었는데요. 아마 수호전의 인물들에 대해 거의 잊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삼국지는 몇 번이고 읽었지만 수호전은 두 번 정도 읽다가 처음엔 완독했지만 두 번째엔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하게 삼국지보다 신이 나지 않더군요. 혹시 수호전에 깔려있는 여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나 봅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정면으로 연애를 묘사하는 장면은 없지만 그래도 현부인이나 현모등 꿋꿋한 여성들이 등장해 크게 활약하는 장면이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수호전>은 이러한 긍정적 이미지의 여성상조차도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수호전>세계의 여성관은 지나치게 결벽한 나머지 거의 여성 혐오에 가깝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중략) 대체로 <수호전>에서는 '여성적인 것'은 모름지기 '악'으로서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상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윤리관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수호전>이 정신적으로는 '동성끼리만 사회적 관계를 맺는' 유형의 '남성 세계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p.60~61
그래도 의협심으로 뭉쳐 무언가를 해내는 걸 보면서 통쾌해 했었습니다. 초반엔 말이에요. 후반으로 갈수록 좀 이상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장면들이 좀 많아요. 자신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자기 가족을 몰살 시킨 집단에 어쩔 수 없으니 들어간다? 과거에는 그래도 좋았을까요?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에 안 들었었나 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잊었던 기억이 소환되었어요.
수호전의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무송은 자신과 정반대의 외모인 무대라는 형이 있습니다 키도 작고 못생기고 볼품없는 남자인데요. 주인집과 여차여차한 일이 생겨 억지로 무대에게 시집온 반금련이라는 형수가 유혹해도 넘어오지 않았던 그는 반금련이 서문경과 바람이 나서 형을 죽게 만들자 형수와 상간남을 때려죽입니다.
북송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신흥 졸부 상인 서문경을 둘러싼 욕망과 에로스의 세계를 강렬하게 묘사하는 백화 장편소설 <금병매>(중략)라는 소설이야말로 중국 소설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획기적인 위대한 소설 작품이라고 하겠다.(중략) <금병매>는 처음부터 단독 저자가 구상해 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금병매>의 출현으로 중국 고전 백화 장편소설은 '이야기되는 설화'에서 '창작되는 서사물'로 대전환을 이루게 된다. -p.207
금병매는 이때 반금련이 죽지 않고 서문경에게 시집갔다는 - 무송이 죽이기 전에 달아나 혼인을 했다는 내용으로 수호전과 완전히 상반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저히 남성만의 사회에다가 의리를 중시하고 물욕이나 색욕을 중시하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더러운 것처럼 취급했던 수호전에 반해 권모술수, 물욕, 색욕에 의리는 개한테 주려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수호전에서 여자들이 악녀였으니 여기서는 선한 이들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반금련부터가 참 고약한 여인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과거에 읽었던 <금병매>는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과 좀 달랐습니다. 책에서 수호전의 반금련 이야기와 금병매의 반금련 이야기를 조금씩 섞어놓은 것 같은데요. 그때는 반금련이 참 불쌍하고 안타까운 운명의 여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더군요. <금병매>에는 다양한 판본의 텍스트가 있다고 하니 제가 읽은 것은 이 책과는 다른 본 인가 봅니다.
<금병매>는 <삼국지연의>,<서유기>,<수호전>과는 달리 독자를 비일상적인 세계에서 노닐게 하는 것과는 무관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런 차이는 다른 세 편의 작품이 설화의 세계에서 성장했던 시대와 창작소설로서의 <금병매>가 써진 시대 간의 차이이기도 하다. -p.381
<금병매>가 탄생한지 약 150년 뒤, 조설근이 지은 <홍루몽>은 <금병매>를 토대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해냅니다.
<홍루몽>은 최초의 '창작된 작품'으로 중국 백화 장편소설의 새로운 경치를 열었던 <금병매>를 토대로 하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정화하여 비할 바 없이 정치한 서사 세계를 구축해낸 작품이다. 중국 백화소설의 금자탑이라고 마땅히 불러야 하는 동시에 이를 능가하는 장편소설은 중국에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하겠다. -p.387
하지만 <홍루몽>이 완성되기 전 조설근이 병사하고 나머지 분량은 그의 구상을 바탕으로 고악이라는 사람이 집필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홍루몽>과 <금병매>의 가장 큰 차이라면 서문경은 욕망을 주체 못 하는 속물이었지만 홍루몽의 중심인물 가보옥은 물욕, 출세욕, 에로틱한 욕망 등을 씻어낸 인물입니다. 미리 소설을 읽어보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상상해보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선비 같은 면모가 있는 이가 아닌가 합니다.
<중국 5대 소설 :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은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앞서의 <삼국지연의, 서유기>편과 더불어서요. 이 책을 읽고 난 후 다섯 개의 소설 중 하나를 읽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읽었던 소설들 간에서는 어떤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져서 이 책의 안내를 따라가기 쉬웠으나 읽지 않았던 <홍루몽>편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떠올리며 맞장구 쳐가며 읽는다면 더 맛 좋게 느껴졌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그런고로, <홍루몽>을 찾아 읽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어요. 그렇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