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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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가슴이 먹먹한 소설이라니.

요새 많은 분들이 읽고 있어 핫한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벼이 이 책을 선택했던 저는 이내 자신의 미련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제목과 표지의 느낌으로만 선택한 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담담한 서술 아래에 생존에 대한 불안감과 욕구, 끊임없는 모순, 잔잔하고 애달픈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그 무언가가 깔려 흐르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주인공인 로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실존 인물 마고 뵐크를 떠올리며 더 깊은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로자의 삶도 이토록 마음 아픈데, 마고는 어땠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에 대해서는 슬퍼했었지만 독일 국민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본과는 다르게 나치가 저지른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한대.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 국민도 히틀러에 의한 전쟁의 피해자라는 건 생각조차 해 본적 없었습니다. 헐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그려진 2차 세계대전은 몇몇의 쉰들러 같은 위인이 아니라면 모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 더 아프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인 로사는 남편 그레고리의 참전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정말 말 그대로 갑자기 SS친위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고, 그날 이후 열네 명의 동료와 함께 매일 세 번 히틀러 총통의 음식을 먹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내 몸은 총통의 음식을 흡수했다.

이제 총통의 음식은 피를 타고 내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무사했고 나는 또다시 배가 고팠다.

어리둥절했습니다.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알아보는 테스트를 하기 위해 히틀러가 우수한 인종이라고 여기는 아리아인을 독 감별사로 쓰다니. 동물을 죽이는 잔인한 짓을 할 수 없었던 히틀러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던 모순과 같은 걸까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어떻게 선발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성향의 그녀들은 점점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 갔습니다. 삶과 죽음을 함께 겪어야 하는 전우애 같은 것일까요. 그녀들은 출퇴근을 하며 매일 세 번 음식을 먹고, 세 번의 죽음을 넘깁니다.

실제로 나는 총통에게 목숨을 바치기로 한 사람이 아닌가. 매끼 내 앞에 일렬로 나란히 놓이는 접시 열 개는 주님의 몸으로 만들어진 영성체처럼 끊임없이 히틀러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하지만 성당과는 달리 이곳에는 영생의 약속 따윈 없다. 한 달에 200마르크 그것이 우리들의 대가였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통지를 받아 슬픔으로 온몸이 뭉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날도 잠옷 바람으로 질질 끌려 차에 실렸습니다. 가슴이 눈물로 가득 차 올라 꽉 막혀있던 날도 변함없이 히틀러의 음식을 삼켜야 했습니다. 그 음식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힘들었지만 억지로 음식을 삼켰다. 친위 대원들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정말로 독을 먹고 싶어서였다. 독이 든 음식을 한입이라도 삼키면 힘들여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 없이 죽게 될 터였다. 적어도 죽기 위한 노고는 아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음식은 멀쩡했고 나는 죽지 않았다.

로자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고, 먹음으로써 죽음과 늘 함께 걸었습니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원수 같은 독일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다른 친구는 잃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모순 투성이라는걸, 나이가 제법 들어가는 지금은 알고 있지만 이토록 아픈 모순은 겪은 적이 없습니다.

왜 늘 전쟁은 일으킨 자보다는 평화를 원하는 자를 아프게 하는 걸까요?

눈물이 줄줄 흐르는 슬픔이 아닌, 가슴 깊은 곳부터 아려오는 묵직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실화 바탕 소설이었습니다.

작품은 사랑, 자유, 믿음, 국가와 개인, 삶과 죽음, 역사적 책임, 인간의 존엄성 등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스토리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중략)

그녀는 히틀러의 시식가로서 끊임없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는 '희생양'이자, 모든 이들이 굶주리는 전쟁 통에서 히틀러 덕분에 호의호식하는 '전체주의의 수혜자'라는 양면적 특징을 가진 인물이다.(중략)

로자의 죄책감은 결국 생존 자체에 대한 죄책감이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적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2부와 3부 사이엔 40여 년의 세월이 있습니다. 하얀 백지인 그 페이지가 평온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로자를 생각하고 마고를 생각하며 함께 아파했습니다. 그 아픔은 내가 감히 다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지금껏 그 모든 일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존하는 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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