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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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꾸역꾸역 삼키면서 읽게 되는 각종 범죄들에 대한 판결 내용들은 그 아래 달린 댓글을 확인하며 고구마 동지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댓글이라고 해서 시원한 건 아니고 불쾌함에다가 불편함을 더 얹어 저를 괴롭게 하지만 동지이자 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 적이지만 동지인 사람들이 많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불량 판결문>에서는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 그러니까 신안 염전 노예 사건 같은 사건의 판결문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도 함께 분노했고 말도 안 된다며 화를 내었던 사건들에 대해 법조인의 입장에서 오목조목 불합리함을 지적합니다.

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는, 입법 기관이나 행정에서 잘못하니까 사법기관에서 그들이 정해준 법을 토대로 판결을 저렇게 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이해하려던 적도 있습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판결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그랬고, 판사도 내심 강한 판결을 내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잔뜩 얹힌 기분에 구토를 하고 싶어지지만 가슴을 두들겨가며 화를 억누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반드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아갑니다. 내가 답답해했던 걸 변호사도 알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씩 속이 뚫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사이다를 내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걸 마시지는 못했습니다. 불량 판결문에 대한 것을 깔끔하게 지적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며 인권 문제라거나 하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니 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아직 그 사이다를 딸 수는 없었습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불량 판결문에 대해 변호사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책 정도로 생각했던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7분 뒤에나 오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책을 덮기 아쉬워할 정도로 책에 금방 빠져들어버렸습니다. 두께가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에 수많은 플래그를 붙여가면서 법조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사건 형사건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내가 왜 패소했는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적어도 왜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또는 어째서 이겼는지 등을 알고 싶습니다.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어려운 용어로 된 - 법원에서 온 문서를 보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없으므로 네이버에서 일일이 검색하면서 읽는데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혹시 이것을 해석해 줄 변호사나 법무사의 밥줄을 걱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불친절한지.

심지어 어떤 때엔 소액 - 저에게는 거액임에도 - 재판이라는 이유로 판결의 사유를 명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액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러하다는데 그들에게 소액일지라도 그것이 전 재산인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어째서 내가 그 돈을 잃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량 판결문>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사건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을 지적하며 우리도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사건들에서의 불량스러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기득권 세력의 기본자세의 글러먹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을 조금 보태봅니다. 평소에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면서 그저 분노를 보탤 뿐이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엔 그런 답답함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이유도 아니면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적힌 판결문을 쓰윽 내미는 판사는 이제 그만.

막말을 내지르는 판사도 이제 그만.

악법은 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이 사이다를 따서 시원하게 마시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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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말투 호감 가는 말투 - 어떤 상황에서든 원하는 것을 얻는 말하기 법칙
리우난 지음, 박나영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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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천 냥 빚을 갚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 냥 빚은 물론이고 매를 버는 타입도 있습니다.

인신 공격형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싫지만 진짜 대화하기 싫은 타입은 이런 거죠.

"손님 비닐봉지 필요하신가요?"

"그럼 손에 들고 가요?"

의외로 이런 이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요, 어쩌다 한 번씩 그러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말하는 습관, 말투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결코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은 아니거든요.

"자기 수저 갖다 줄까?"

"그럼 손으로 퍼먹냐?"

..... 이별 각이잖아요.

일상생활에서의 대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좀 더 부드럽게,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배울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논점을 빙빙 돌려가며 피하라는 말은 아니고, 요점은 살리되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건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에도 등장하는 것인데요, 대인관계의 원만함의 기본은 언어 습관, 말투, 목소리 등에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성조나 어투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경을 써야겠죠. 어떻게 매번 그러느냐 편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습관이 들면 자연스럽게 젠틀해집니다. 글은 쓰고 나서 몇 번 읽어보고 퇴고를 하고 수정을 하거나 다른 이가 편집을 해줄 수도 있지만 말은 내뱉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올바른 습관이 들도록, 그것이 익숙해지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저는 언제나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사람 같습니다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좋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되도록 '실례합니다'라거나 '죄송하지만' 뭐 이런 말을 붙이면서 정중한 표현을 쓰려고 하나 가끔은 그냥 막 나갈 때도 있어요.

그러니 정말로 늘 신경을 써야겠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언어 습관에 관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거 같아요. 더욱이 막말하는 사람을 천하의 못된 자로 손가락질을 하는 걸 보면 좋은 언어 습관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척 많다는 거겠죠.

그래서 <끌리는 말투 호감 가는 말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가 봅니다.

읽다 보면 정말이지 당연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어요.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이 책은 뭐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 싶지만, 그 당연한 걸 잘 못할 때가 많다는 게 함정이겠죠.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좋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마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이 책의 앞부분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읽다 보면 중후반부터는 드디어 배우고 익힐 것들이 나옵니다. 알고는 있지만 하지는 못했던 것들. 그중에서 3분 스피치 같은 것은 이후에 언제 써먹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걸 잘 익히고 응용하면 아이와 진지한 대화 중 제가 주도권을 잡고 이야기할 때에는 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직장인의 경우 원만한 직장 생활이나 상사와 부하 사이에 끼어 있을 때에도 사용하는 말투(가끔은 좋게 말하려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만은)도 익힐 수 있고, 연봉협상에 사용한다거나 면접 때에 어떻게 말해야 좋은가 하는 것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말하는 것에 대한 전천후식 가이드를 하고 있는 셈이죠.

평소에 '너는 왜 그렇게 말을 하냐.'라는 말을 듣는 분은 직접 읽어보시면 좋겠고, '쟤는 왜 말을 저렇게 밉게 하냐.'하지만 친분이 두텁다 싶으면 선물을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이 책 초중반까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연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못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런 것들을 염려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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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 의식성장을 통한 진정한 삶의 여정
알렉스 룽구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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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기 계발서 같은 걸 왜 읽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어 본 후 자기계발서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나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는 책,

또 하나는, 읽다 보면 괜히 야단맞고 있는 기분이 드는 책.

결국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할 필요를 점점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책은 읽었지만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았어요. 유명하다는 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차라리 성공한 분, 자신의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의 에세이를 읽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차라리 사회파 미스터리를 읽는 편이 낫겠다 싶었죠.

알렉스 룽구

그는 독일 출신으로 십 대 시절 우연히 아리랑 TV를 보게 되었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경영학과 더불어 한국학을 복수 전공했는데요, 어학에 취미가 있던 그는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고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는 건 독일어와 한국어 - 바이링구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고 'HIGHERSELP 의식 성장 학교'를 설립, 유튜브를 강연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이 책은 알렉스 룽구가 독일어로 쓴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닌, 직접 한국어로 저술한 자기계발서입니다.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직설적인 화법이 놀랄 때도 있지만, 그보다도 이런 이야기를 한글로 논리정연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책이 품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정독하고 있음에 놀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자기계발서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세상에 70억의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향하기 위한 방법들도 그만큼, 아니 백번 양보해서 100분의 1만큼은 존재할 터인데 자기계발서에서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요 모양 요꼴로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일쑤죠.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알렉스 룽구 자신이 말하는 것들, 방법과 원칙 등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은 완전하거나 절대적으로 맞거나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스스로 파악하고 자신의 신념 체계에 따라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책일 뿐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밝혔던 건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실패, 성공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트라이얼에 대해 도움을 주는 가이드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서두에 나와있는 '의미 있는 진정한 삶의 여정에 도움을 주는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의 요약본만 보면 이 책은 다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책은 어떻게든 읽어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문장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실천을 할 의욕이 생겨납니다.


삶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매일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말로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자신의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건넵니다. 내가 지금 매일 행하고 있는 것은 목표인지, 아니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인지 구분 지어 생각할 기회도 줍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확장하여 전력을 꾸미고 그것에 실천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도 일러줍니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자기 관찰 질문을 던집니다. 책을 읽다가 질문과 만나면 잠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관찰을 하며 생각을 해봅니다.

알렉스 룽구가 책에서 이르는 것처럼 자기관찰 노트를 마련해서 적어나가면 좋겠지만 저는 아직 그런 결심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마주하고 나 자신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을 해결하려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기관찰 노트를 작성해보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술술 쉽게 읽을 수 없습니다.

문장은 명확하고 알기 쉽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루에 50장도 읽기 어렵습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메모를 해 나가면서 느끼고 내 안으로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야단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무척 독특한 책입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자기 계발서 위의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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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코로나 사피엔스
김누리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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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했던 미래, 상상하지 못했던 팬데믹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고 따라가거나 예측하여 앞서 나가야 합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상상했던 것들이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외출 시 방독면을 써야 한다거나 집 안에서 산소를 발생시키는 기계를 사용하고, 수업도 집에서 커다란 TV로 참여하며,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서 집에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버튼 몇 개만 누르면 - 제가 생각했던 건 커다란 네모난 버튼들이었지만 - 시장도 자동으로 보아다 주는 그런 미래를 상상했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런 세상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택시나 자율 주행 자동차가 상용화가 된 세상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은 우리의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서서히 이루어질 것 같았던 것들이 코로나로 인해 상당한 스피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많은 부분을 발전시키기도 했고 퇴보시키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권력을 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미 앞서 나갈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중년이라는 겁니다. 청년층에 기대를 걸고 그들이 끌어줄 미래에서 도태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배우기를 그치지 않으려는 중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발생 1년 후 언저리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과연 미래를 보고 있을까요. 막연히 흘러가는 강물 위에 띄워놓은 뗏목에 앉아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코로나 사피엔스 : 새로운 도약

<코로나 사피엔스 : 새로운 도약>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이고 미쳐 깨닫지 못하는 건 무엇인지 찾아나갔습니다. 이 책은 김누리, 장하준, 홍기빈, 최배근, 홍종호, 김준형, 김용섭, 이재갑 이렇게 여덟 명의 석학이 코로나 이후를 살아갈 신인류, 코로나 사피엔스에게 지난 일 년간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그들이 속해있는 각 분야에서 현 상황을 분석하고 파악하여 우리에게 정확한 진실을 데이터를 토대로 이야기하며 나아가 앞으로 예측되는 것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정부의 개입이 적을수록 좋다'라는 도그마는 깨져버렸습니다. 선진국의 허상과 사회적 우선순위를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한계도 드러났죠. 특히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우리는 '전 국민이 공평하게 보호받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고, 생계형 자영업자와 실업자, 돌봄 노동자들이 처한 복지 사각지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경제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적기입니다.

-p.48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빨리 이 사태가 끝나서 다시 전처럼 생활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미 우리는 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질병은 세계를 뒤흔들어 삶과 죽음이라는 의료적인 측면과 더불어 경제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상황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육 문제까지 바꾸어 놓아 청년층이 짊어져야 하는 것들도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서포트해 줄 수 있는 방법까지 변화가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성장과 혁신을 위해 더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동시간을 줄여주어야 하고,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소득의 감소를 보존해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청년 대상의 기본소득 지원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입니다. 대한민국에 혁신이 활성화되려면 청년들의 역량을 키워줘야 하고, 그런 점에서 청년 대상의 기본소득은 혁신의 ‘시드머니 seed money’입니다. 즉 기본소득은 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사회적 투자’인 것입니다.

-p.126

경기도,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과 CBS가 함께 기획한 <2020 경기도 지식 콘서트>를 바탕으로 정리한 이 책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을 읽어나가면서 플래그를 무수히 붙여나갔습니다. 분량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모든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아서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희망을 보기도 했습니다. 팬데믹이라고 해도 늘 절망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너무 밝은 빛은 보이지 않고, 너무 큰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햇빛은 너무 밝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죠. 지구가 공전하는 소리는 너무 크기 때문에 들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전 세계 산업 문명에 미친 영향 역시 매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서 그 전모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구체적인 숫자와 지표로 이후의 세계 경제에 대한 예측을 시도하겠지만, 그것은 자칫 빗나가거나 왜곡되어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신중해야 합니다.

-p.69

우리는 이제 완전 자유경제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복지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들떴던 세계화가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살아야 하는 신인류가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어쩌면 이 석학들이 지식콘서트에 참여해 강연할 때와도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는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도태 될지도 모르는 이 흐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인류는 앞으로의 길을 인지하고 모색하여 진취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세상, 즉 ‘위드 코로나 with corona’ 시대를 고민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post corona’가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 이후를 의미한다면, 그런 시대는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백신만 나오면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 대신, 코로나가 일상이 되는 삶을 준비하고 대응해나가야 합니다.

-p.221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각 분야별로 상당해서 함축해서 이곳에 늘어놓기 버겁습니다. 버릴 부분 없이 모두 취할 것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교양서로써 현 상황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무언가를 깨닫고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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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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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허스트 사건

1974년 미국의 언론 재벌 가문의 여식이자 사교계의 꽃인 퍼트리샤 허스트가 어느 날 무장 저항 단체인 SLA에게 납치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만한 사람을 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SLA는 그녀의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퍼트리샤가 직접 녹음한 녹음테이프만이 전달되었는데, 퍼트리샤는 다치지 않았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국제적 포로 규정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고 있음을 알리고, 몸값 대신 빈곤한 이들을 위해 기부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간곡한 어조로, 그러나 후반에 이르러서는 부모를 거세게 비난하며 더욱 노력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불과 60여 일 후, 퍼트리샤는 자신을 납치한 SLA 대원들과 함께 은행강도 행각을 벌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체 게바라의 연인인 타니아로 개명하고 M1 소총을 든 채 스스로가 무장 대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 그녀의 무사 생환을 응원하던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요.

결국 납치된 지 1년 4개월 만에 FBI의 무력 진압으로 SLA 대원들이 사살되고 몇 달 뒤 퍼트리샤 허스트 역시 체포됩니다. 급하게 꾸려진 최고의 변호인단은 퍼트리샤가 무장 대원들에 의해 세뇌되어 은행강도 행위에 가담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35년 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로널드 레이건과 서부 영화로 유명한 존 웨인 등 거물급 인사들이 탄원하여 징역 7년으로 감형됩니다. 후에 지미 카터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보석금 150만 달러를 내고 가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면을 받게 되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 사례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녀는 작가로, 배우로 그리고 주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폴라 라퐁

폴라 라퐁은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실화를 근거로 쓴 이 소설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는 - 하지만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다소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독서력이 부족한 독자라면 시점을 맞추지 못해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를 꾸준히 해 왔던 독자라면 금세 이 이야기 <17일> 속에 빠져들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다각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30대의 진 네베바 교수, 그리고 그녀가 채용한 10대 후반의 조수 비올렌의 시각으로 퍼트리샤 사건을 훑기 시작합니다. 퍼트리샤가 체포된 후 감금당해 세뇌되었음을 주장하며 감형 혹은 무죄 판결을 얻어내려고 하며 변호인단은 마지막으로 진 네베바 교수에게 그녀의 사건을 검토하여 무죄를 입증할 보고서를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프랑스에 체류 중이던 네베바 교수는 비올렌과 함께 사건 자료를 시간순으로 읽고 들으며 놓친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검토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는 건 퍼트리샤 혹은 타니아의 말속에는 사람들이, 특히 부유계층의 남자들이 놓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SLA는 퍼트리샤의 녹음 메시지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내줄 것을 요구했으며 그녀의 부모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음식을 겨우 1500여 명밖에 받지 못했기에 퍼트리샤는 분노하며 다시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어요. 하나는 안전한 장소에서 풀려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SLA에 합류해서 저와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거예요. 저는 남아서 싸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누구도 식사를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모욕을 당하거나 자신의 생명과 자신이 낳은 자식들의 생명을 계속해서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p.163

비올렌도 저도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퍼트리샤는 과연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던 걸까요. 사면 받기 위해 거짓과 돈으로 자신을 휘감았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의 목소리를 내었던 건 아닐까요.

비올렌, 우리 세대는 부모들이 미국이라는 살인 기계의 잘 기름칠 된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몹시 혼란스러워. 그들은 전쟁이 그들의 잔디밭을 피로 물들이지 않는 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모범적인 노동자들이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거대한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먼 곳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야.

-p.149

이 소설을 따라가면서 진, 비올렌, 나라는 세 세대의 사람, 또는 여자의 눈으로 퍼트리샤를 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대가 다르다는 것은 사건을 해석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1970년대 당시와는 다른 눈으로 사건을 볼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 네베바 교수는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수준의 사고를 하고 있었고 비올렌은 진에 의해 깨우쳐집니다.

비올렌이 진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진 역시 비올렌에게 큰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비올렌을 통해 다시 진의 생각을 자신의 것과 합쳐봅니다. 독자인 저는 진의 눈으로, 그리고 비올렌의 눈으로 또 21세기를 사는 '나'의 눈으로 퍼트리샤를 봅니다.

책을 읽으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책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사건이라고 흘려보낼 수 있는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작가만의 스타일과 필력으로 재구성하면서 저를 이 안에 옭아매고 엮어버렸습니다. 타니아였던 시절 그녀가 냈던 목소리에 큰 감동을 받았었지만 다시 퍼트리샤로 돌아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뇌가 아닌 자유의지로, 혹시 처음부터 납치 자작극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했던 저를 실망시켰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롤라 라퐁은 퍼트리샤가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내보였음을, 그녀가 사용했던 단어나 문장을 통해 끌어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저는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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