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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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꾸역꾸역 삼키면서 읽게 되는 각종 범죄들에 대한 판결 내용들은 그 아래 달린 댓글을 확인하며 고구마 동지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댓글이라고 해서 시원한 건 아니고 불쾌함에다가 불편함을 더 얹어 저를 괴롭게 하지만 동지이자 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 적이지만 동지인 사람들이 많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불량 판결문>에서는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 그러니까 신안 염전 노예 사건 같은 사건의 판결문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도 함께 분노했고 말도 안 된다며 화를 내었던 사건들에 대해 법조인의 입장에서 오목조목 불합리함을 지적합니다.

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는, 입법 기관이나 행정에서 잘못하니까 사법기관에서 그들이 정해준 법을 토대로 판결을 저렇게 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이해하려던 적도 있습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판결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그랬고, 판사도 내심 강한 판결을 내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잔뜩 얹힌 기분에 구토를 하고 싶어지지만 가슴을 두들겨가며 화를 억누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반드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아갑니다. 내가 답답해했던 걸 변호사도 알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씩 속이 뚫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사이다를 내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걸 마시지는 못했습니다. 불량 판결문에 대한 것을 깔끔하게 지적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며 인권 문제라거나 하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니 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아직 그 사이다를 딸 수는 없었습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불량 판결문에 대해 변호사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책 정도로 생각했던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7분 뒤에나 오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책을 덮기 아쉬워할 정도로 책에 금방 빠져들어버렸습니다. 두께가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에 수많은 플래그를 붙여가면서 법조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사건 형사건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내가 왜 패소했는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적어도 왜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또는 어째서 이겼는지 등을 알고 싶습니다.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어려운 용어로 된 - 법원에서 온 문서를 보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없으므로 네이버에서 일일이 검색하면서 읽는데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혹시 이것을 해석해 줄 변호사나 법무사의 밥줄을 걱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불친절한지.

심지어 어떤 때엔 소액 - 저에게는 거액임에도 - 재판이라는 이유로 판결의 사유를 명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액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러하다는데 그들에게 소액일지라도 그것이 전 재산인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어째서 내가 그 돈을 잃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량 판결문>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사건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을 지적하며 우리도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사건들에서의 불량스러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기득권 세력의 기본자세의 글러먹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을 조금 보태봅니다. 평소에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면서 그저 분노를 보탤 뿐이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엔 그런 답답함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이유도 아니면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적힌 판결문을 쓰윽 내미는 판사는 이제 그만.

막말을 내지르는 판사도 이제 그만.

악법은 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이 사이다를 따서 시원하게 마시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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