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 - 인간관계가 힘든 당신을 위한 유쾌한 심리학 공부
김경일.사피엔스 스튜디오 지음 / 샘터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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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제대로 파악이 안되는 데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때때로 저 사람은 왜 나에게 혹은 타인에게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모든 인간이 획일적인 사고를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니 되도록 마음을 활짝 열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투덜거리거나 구시렁거리며 화를 혼자 삭일 때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작금의 사태를 대하는 높은 혹은 유명한 사람들의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가족이나 이웃, 혹은 회사 동료와 상사가 불편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건 뭐... 달아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들을 이해하거나 혹은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하는 타인의 마음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인 김경일은 심리학 박사입니다. 현재는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게임 문화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죠. 어쩌다 어른이나 세바시 등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아직 구독하지는 않았지만 지식 큐레이팅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에서 함께 기획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피엔스 스튜디오는 tvN 책 읽어드립니다, 어쩌다 어른의 제작팀과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전문가, 강연자가 함께하여 만드는 CJ ENM의 디지털 지식 플랫폼이라고 해요. 심리나 역사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오픈형 지식 큐레이팅 채널이라고 하니 요즘 지식과 교양에 목말라하는 저에게 딱 맞는 콘텐츠인 것 같아 구독을 해보려 합니다.



다시 <타인의 마음>으로 돌아오자면 이 책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는 만큼 도움 되는 내용이 꽤 많습니다. 첫 번째 챕터부터 그런 느낌이 고스란히 다가오는데요, 가스라이팅이라거나 양극성 우울 장애와 같은 문제 혹은 성향으로 누군가를 끊임없이 괴롭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놓고 비교질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교묘하게 돌려까기 하는 사람도 있죠.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p.50



사소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걸 대비해서 약간 일찍 출발하는 저로서는 프로지각러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요, 이 책을 읽다 보니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 책은 비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거나 늘 비판만 해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케이스를 소개합니다.



더 나아가 나르시시스트라거나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룹니다. 악플러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꼼꼼히 짚어봅니다. 무기력에 관한 부분은 - 제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에 열심히 읽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에너지를 받거나 응원으로 극복하는 게 아닌, '필요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느꼈을 때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타인의 마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음과 동시에 나 자신이 겪고 있는, 혹은 객관화 시켜보았을 때 느끼는 문제점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양서입니다. 고집쟁이라거나 툭하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들의 심리, 칭찬을 지나치게 아끼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꼼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 p.241



심리서라고 하면 구스타프 융이라거나 프로이트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줄줄 나오며 어려운 용어를 잔뜩 버무려 쓰지는 않을까, 만나기 전부터 긴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고 누구나 편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읽는 과정에서도 전혀 골치 아프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돌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저럴까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방어를 하거나 처세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이런 책을 읽으면 아프고 슬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챙겨읽는 건 아직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참 와닿는 책이라 두 번 일었는데,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읽고 싶습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이라거나 타인을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읽어보는 걸 권하고자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재미있는 심리학 책이라며 은근슬쩍 권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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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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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이란 궁에서 왕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직책입니다.


행차가 있을 때 소리를 높여 외친다거나 궐내에서 왕실 사람과 동행하며 말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기에 용모가 출중하며 문은 물론이요 무까지 겸비한 사람으로 뽑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인 성향을 띠고 있지 않아야만 왕의 사람으로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왕이 음성으로 남기는 비밀스러운 말을 전하는 자를 국금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 <중금>은 중금들의 이야기이며 또한 왕이 비밀리에 남기는 말씀을 군주에게 전하고자 하는 국금의 이야기입니다. 경종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정조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세월을 이어나갑니다. 그럼에도 절대 늘어지지 않으며 독자를 책 안에 잡아두는 스토리 흐름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여 내심 기대하였는데, 소설은 저를 전혀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두 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리리라 여겼으나 한 번 잡으면 내려놓기 아쉬울 정도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작가 출신의 저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의 필력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사극 드라마가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대화의 흐름이나 배경의 전개 등이 자연스러워 머릿속으로 영상을 쫓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아름다우면서 슬프고 안타까운 흐름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드라마는 많았으나 이런 스토리 전개는 만난 적이 없었기에 더욱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뒤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 세자. 영조는 자신이 그를 죽게 만들고서 이후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 슬픔에 잠기다니 내내 그 설운 사연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며 이런 전개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수많은 세월을 그려내었습니다. 중금이었던 재운은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국금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피신합니다. 그러나 시골 마을에서 은애하던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잠시나마 행복한 생활을 하던 걸 보면서는 내내 이렇게 지낼 순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 역시 망설였습니다. 촌부 심마니로 살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순간도 있었습니다.그렇지만 그는 역시 국금이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 하였으나 새로 즉위한 왕이 선왕을 시해하였다는 풍문이 돌고 있었기에 선왕의 뜻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겨우 일곱 살에 불과한 어린 아들에게 국금이라는 중요한 일을 맡깁니다.



어렸던 지견은 궁으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마음에 품고 무작정 한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고 성장하여 훌륭한 중금이 됩니다. 무작정 한양으로 향하던 소금장수 할아버지, 뜬금 없이 나타나 무예를 가르친 스승님(스승 입장에서는 계획된 일이라고 할지라도), 지전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이룰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만한 게 아닙니다. 어떤 흐름인지 이야기하고 싶어서 짤막하게 소개해 보았지만 그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사연들,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의 아픔과 신선함 등이 두루 들어있었습니다. 약간 미묘하게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그걸 풀어버리면 스포가 되기 때문에 저 혼자만의 아쉬움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소설 <중금>은 웅장하고 흐름이 좋은 역사 소설입니다.


마치 파도처럼 부드럽게 밀려왔다가 거세게 부서지며 여운을 남깁니다.


올 하반기 읽을만한 소설을 찾고 있다면 그리고 역사 소설을 좋아한다면 <중금>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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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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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변호사의 전작인 <불량 판결문>은 조금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해도 술술 잘 읽히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얼굴 없는 검사들>은 두 번 읽었음에도 답답함으로 인해 가슴 복판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이 어렵다거나 문맥이 이상하고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애통함 때문이었습니다.



<불량 판결문>을 읽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불량 판결문>을 읽고 있는 분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분은 뭐라고 생각하며 책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을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형 트럭 후방에 커다란 눈을 붙여두는 이유는 귀염 뽀짝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뒤차에게 지켜보고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기소나 판결을 바라보는 '눈'이 많다면 그들도 경각심을 가지고 사건을 다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 혈압이 오를 일이 많으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조금씩 열을 받겠지 그래도 저번처럼 꾹꾹 참아가며 읽자고 마음먹었었지만 불과 4,5 페이지 만에 열이 뻗쳐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검찰의 공정과 정의가 사망한 사건들'로 간단하게 요약을 해두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3장에서 넉넉히 여유를 두고 설명하고 있기는 합니다. 축약만으로 혈압이 올랐는데 천천히 설명해가는 과정에서는 기겁하고 말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내용들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라니 정말 그들을 믿고 있어도 되는가 하는 불안함이 생겼습니다.



고의로 증거를 미제출한다거나 척 봐도 있는 사람들의 봐주기식 사건 처리 등은 영화라 하더라도 너무 과했다며 설정을 비웃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최성규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하는 걸 떠올리니 아찔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국민을 위한 기관을 두었는데 자신들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였다니 한숨만 나옵니다. 그야말로 법은 우리 편일 거라는 편견을 깨주는 현실입니다.



조인성, 정우성 주연의 영화 더 킹을 보며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시원함을 즐겼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사이다가 있기나 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정의를 외면하면서 무책임한 태도로 처리했던 사건들을 되짚어보면서 정말로 정의는 살아있는 걸까 싶습니다. 비의료진이 수술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메스를 들었던 사람에게 상해와 관련된 기소는 하지 않고 원장만 사기죄로 기소하기도 하였던 사건.



장애인이 32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건에서 사찰에서 으레 있는 울력이었다며 넘어가고 몇 차례의 폭행만으로 기소하여 500만 원 의견으로 공소제기를 한 검사도 있고.



학원 미투 때 드문 성씨인 피해자의 성(姓)을 노출해서 2차 피해를 일으키고서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는 검사도 있고... 참 별의 별일이 다 벌어졌다 싶습니다. 이런 검사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거라니 혹시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마음 놓고 정확한 기소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불안이 듭니다.



하지만 드라마 '비밀의 숲'이나 '검사 외전' 등에서 느꼈던 것처럼 모든 검사가 다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세로 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리 원칙을 지켜가면서 꿋꿋하게 소신껏 진행하는 검사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고요.



과거에는 이런 일들도 있었다면서 지금이라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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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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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범죄나 범죄 심리에 관한 책을 읽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밀그램과 한나 아렌트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덕분에 밀그램의 복종 실험만큼이나 저에게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인간의 조건' 같은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습니다.



정확히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당시에는 혁신이라고 여길 정도의 사상은 어떤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 사람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인용되곤 하는 문구들은 - 상당한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동의를 얻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나 철학, 인간을 파악하는데 한 획을 그은 한나 아렌트의 '말'과 '글'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나 아렌트 평전>은 한나 아렌트 센터 선임 연구원이자 브루클린 연구소 부연구원인 사만다 로즈 힐에 의해 쓰였습니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학자로서의 삶, 철학자로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던 사생활과 영구 보전 기록 물과 편지 등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와의 관계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기에 충격과 함께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전기 혹은 평전을 읽을 때면 다른 유명인들과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얻곤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깜짝 놀랄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가 숨겨왔던 비밀 연애였지만 한나에게는 간직하고 싶었던 사랑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빛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p. 264



이 책은 해외에서 출간 직후부터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지금껏 알고 있었던 철학가, 사상가로서의 한나 아렌트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던 사람도 일대기를 짚어가면서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한나 아렌트에 관한 영화나 다큐조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사상가, 철학가로서의 아렌트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만난 것 같아 조금은 기쁩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사유하고 그곳에서 답을 얻고자 했습니다.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보자면 여자의 의견은 묵살당하기 십상이었으나 한나의 열정은 무엇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나 스승을 비롯한 주변 남자들도 그런 모습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뜻을 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에 살았던 유태인이라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수감당하는 등 상당히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연합군이 와서 해방된 게 아니라 문서를 위조하여 탈출하는 과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호텔에서 남편을 찾는 경찰을 따돌리고 달아나는 신에서는 저도 모르게 마음 졸이며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낱낱이 보고하는 평전이자 영화와 같은 인생을 엿볼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삶과 사상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아 소설을 읽듯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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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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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소년 잡지를 매달 사서 보았는데, 흥미로운 기사가 한 꼭지씩 들어있어 몇 번이고 되새기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끔은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의 내용이 들어있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꽃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남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오지의 깊은 숲속에서 자란다는 커다란 꽃 라플레시아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있었는데, 왜 저렇게 큰 꽃을 피우는지도 모르면서 마냥 신기해했습니다. 게다가 꽃이라면 향기를 풍겨 벌이나 나비를 유혹해야 하거늘 오히려 고약한 냄새라니. 말도 안 되는 녀석이라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한참이나 잊고 있었던 라플레시아에 대한 흥미를 이 책 <극한 식물의 세계>에서 끌어내 주었습니다. 라플레시아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식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흠뻑 빠졌습니다. 평소 그렇게 식물에게 관심이 있는 타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은 실제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독특한 식물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풀과 나무들은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실은 생존을 위해 늘 싸우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책에 나온 식물은 흔히 보편적으로 여기는 범주를 뛰어넘는 친구들이라 더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뚱맞거나 생전 처음 보는 풀과 나무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흙에 심지 않아도 매달아두면 된다고? 하며 궁금증을 자아내던 틸란드시아는 이제 화원이나 오일장에 가도 만날 수 있을 만큼 친숙해졌습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은행나무는 요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강하게 어필 중이고요. 식충식물인 네펜데스나 끈끈이주걱은 아이들 학습용으로도 많이 키우고 있습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에서는 이런 친구들도 만나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왜 그런 생태를 갖는지도 설명합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열기 전에 지구 역사 46억 년을 1년이라 가정하면 12개월 365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간단하게 도표로 알려주었습니다. 역사에 비해 지금과 같은 생명체가 살아가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초의 이끼 식물 출현이 11월 말이니까요. 12월 31일 그것도 한밤중이나 되어야 현생 인류가 시작되었으니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식물이야말로 그러한 게 아닌가 합니다.



포유류는 이들을 취하며 살아왔으나 그 오랜 시간을 버티며 적응하며 살아간 경이로움이 식물 세포에 담겨있음을 깨닫습니다. 서식지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적응하기 위해 몸을 변형하고 독을 품거나 다른 식물을 목졸라 죽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갖은 한계를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겼습니다. 식물학자가 어려운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누구나 이해하며 관찰할 수 있도록 풀어놓았습니다. 관찰자가 되어서 그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즐거움이 넘쳐나, 새로 알게 된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각 챕터는 - 무슨 목, 무슨 종 이런 식으로 분류한 게 아니라 특성에 따라 파트를 정리했습니다. 이를테면, '크거나 작거나', '빠르거나 느리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교과서처럼 외워야 하는 게 아니라 과거 소년 잡지에 나왔던 기사 혹은 칼럼을 보는 것처럼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각 챕터 소단원마다 단순화한 그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패턴으로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컬러감도 좋고 느낌도 좋습니다. 포스터로 나온다면 액자화해서 벽에 걸어두어도 느낌이 살겠다 싶을 정도로 멋있습니다. 그림을 한 번 보고 내용으로 파고들다 보면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중간에 검색을 한 번 해볼까 하다가 맥이 끊길까 봐 그냥 읽었습니다.



그런데 챕터가 끝날 때에는 실제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어 검색의 수고를 덜었습니다. 덕분에 손에 다시 폰을 들지 않고 쭉 독서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보면서 나름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하며 복습하게 되었습니다. 단숨에 읽은 게 아니라 띄엄띄엄 보았다면 앞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으니 무척 편했습니다. 이 책은 편집과 구성까지 잘 되어 있었습니다. 표지마저 손에 착 붙는 후가공으로 느낌을 달리하였습니다.





이 책을 만일 청소년이 읽는다면 과거 제가 잡지에서 흥미를 얻었던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또한 신기하고 진기한 내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리라 여겨집니다.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세계를 만나고, 식물에 대한 다른 시각이 생겨날 것만은 분명합니다.



식물이나 생명 분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중고등학생의 독서 목록으로 넣어도 좋겠습니다. 어려운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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