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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평점 :
최정규 변호사의 전작인 <불량 판결문>은 조금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해도 술술 잘 읽히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얼굴 없는 검사들>은 두 번 읽었음에도 답답함으로 인해 가슴 복판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이 어렵다거나 문맥이 이상하고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애통함 때문이었습니다.
<불량 판결문>을 읽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불량 판결문>을 읽고 있는 분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분은 뭐라고 생각하며 책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을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형 트럭 후방에 커다란 눈을 붙여두는 이유는 귀염 뽀짝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뒤차에게 지켜보고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기소나 판결을 바라보는 '눈'이 많다면 그들도 경각심을 가지고 사건을 다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 혈압이 오를 일이 많으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조금씩 열을 받겠지 그래도 저번처럼 꾹꾹 참아가며 읽자고 마음먹었었지만 불과 4,5 페이지 만에 열이 뻗쳐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검찰의 공정과 정의가 사망한 사건들'로 간단하게 요약을 해두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3장에서 넉넉히 여유를 두고 설명하고 있기는 합니다. 축약만으로 혈압이 올랐는데 천천히 설명해가는 과정에서는 기겁하고 말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내용들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라니 정말 그들을 믿고 있어도 되는가 하는 불안함이 생겼습니다.
고의로 증거를 미제출한다거나 척 봐도 있는 사람들의 봐주기식 사건 처리 등은 영화라 하더라도 너무 과했다며 설정을 비웃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최성규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하는 걸 떠올리니 아찔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국민을 위한 기관을 두었는데 자신들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였다니 한숨만 나옵니다. 그야말로 법은 우리 편일 거라는 편견을 깨주는 현실입니다.
조인성, 정우성 주연의 영화 더 킹을 보며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시원함을 즐겼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사이다가 있기나 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정의를 외면하면서 무책임한 태도로 처리했던 사건들을 되짚어보면서 정말로 정의는 살아있는 걸까 싶습니다. 비의료진이 수술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메스를 들었던 사람에게 상해와 관련된 기소는 하지 않고 원장만 사기죄로 기소하기도 하였던 사건.
장애인이 32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건에서 사찰에서 으레 있는 울력이었다며 넘어가고 몇 차례의 폭행만으로 기소하여 500만 원 의견으로 공소제기를 한 검사도 있고.
학원 미투 때 드문 성씨인 피해자의 성(姓)을 노출해서 2차 피해를 일으키고서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는 검사도 있고... 참 별의 별일이 다 벌어졌다 싶습니다. 이런 검사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거라니 혹시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마음 놓고 정확한 기소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불안이 듭니다.
하지만 드라마 '비밀의 숲'이나 '검사 외전' 등에서 느꼈던 것처럼 모든 검사가 다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세로 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리 원칙을 지켜가면서 꿋꿋하게 소신껏 진행하는 검사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고요.
과거에는 이런 일들도 있었다면서 지금이라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