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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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스릴러, 공포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호러 에세이라니. 지금까지 없었던 에세이 세계가 아닌가! 하면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소름이 돋는다>라는 제목이지만 꼭 소름이 돋지 않더라도 그 묘한 기분을 느끼는 건 중독성 있는 쾌감이기에 놓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작가 배예람은 안전가옥 '대스타' 앤솔로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데, 기회가 되면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세이를 참 맛있게 썼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소소한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소설과 영화, 게임에 이르는 이야기까지 풀어내면서 자신의 호러 세상을 마음껏 펼쳤습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경험에 공감하고 나도 저 영화 봤는데! 맞다 그랬었지! 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무서운 걸 보면 몇 날 며칠이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기어이 찾는 묘한 심리까지 공감하였기에 에세이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겁쟁이어도 괜찮다. 아니, 겁쟁이라서 다행이다. 공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서 기쁘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껏 겁먹고, 마음껏 두려워하자. 다시금 마음먹으며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공포를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밤이다.

-P.24



나이 먹다 보니까 진짜 무서운 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고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모를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불필요한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책에서 '지하철에서 출입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좀비들이 달려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P.109)'라는 질문을 옆 사람에게 했다가 머쓱해졌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요즘 새로 나온 지하철은 중간 문이 안 닫히는 데, 만일 앞 칸에서 좀비가 달려오면 어떻게 방어해야 하나를 - 지하철에 앉아서 리틀포니와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타입이라... 아마 작가님께서 제게 물었다면 심각하게 함께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상상과 고민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연일 계속되는 비에 혹시 지반이 약해져서 집이 기울어지는 건 아닌지, 벽면으로 스며드는 물기는 과연 마를지. 뭐 이런 실질적인 문제가 공포로 다가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건가 봅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급증하는 초파리가 알을 낳으면 어떡하나 하는 호러스러움을 상상했으니까요.




우리 집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제일 무서운 일은 습기 때문에 빨래가 덜 마르거나 화장실 배수구가 막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저거 봐, 집이 넓으면 저게 문제라니까.

-p.50


저희 집이야 6평형 에어컨으로도 충분히 커버되는 정도의 소박한 사이즈라서 '숨바꼭질'처럼 누가 숨어들 염려도 없으니 악령의 침입이나 존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른스럽고 의젓해진 건 빈곤에서 나온 걸까요? 하하. 아무튼 어릴 때 귀신에 의한 두려움은 커가면서 점점 현실적인 문제로 옮아간 게 맞긴 한가 봅니다.



<소름이 돋는다>에세이에서는 다양한 영화도 다룹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본 모든 무비를 소환할 수는 없으니까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는데요, 제가 본 영화도 제법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이나 슬래셔 고어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스승의 은혜' 같은 영화는 보았었기에 으으... (생략)



작가가 간직한 호러 세상을 들여다보니 나의 세상은 어떤 걸까 하는 생각에 잠시 잠겼었습니다.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들도 마구 생각나더군요. '미드 소마'으로 충격받아 1년 정도 고생했던 터라 '유전'은 보지도 못했었는데, 신작이 나오더군요. '유전'부터 시도해 볼까 합니다.



참. 저는 '닥터후' 시리즈에서는 우는 천사가 제일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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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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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서부 개척시대, 오리건 트레일, 아메리카 선주민이 등장하는 영화라고 하면 그렇게 반가운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함께 춤을 정도가 괜찮았지 싶은데요, 그 외의 다른 영화들에서는 원치 않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기에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백인의 시각에서 본 아메리카 선주민과의 충돌이 대부분이었기에 늘 (당시 표현으로) 인디언은 살육의 주체이며 머릿 가죽을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미개한 인종이었습니다. 기병대는 정의의 편으로 그런 약탈자들로부터 주민을 지키는 훌륭한 사람들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어린 저는 그런 것들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누가, 누구의 약탈자인지...



그런 면에서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약탈자들 사이의 이야기도 아니고 억지로 꿰어 맞춘 평화와 화합, 통합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좋았습니다. 희망을 찾아 떠나는 마차 행렬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책 소개에서는 자기 조상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이야기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남편의 조상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남편은 주인공들의 5대 후손으로 여전히 그 안에는 역사가 숨 쉬고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 그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굉장한 스토리 속에서 어쩌면 이들의 품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았었겠나 하는 상상을 합니다. 존과 나오미가 겪는 삶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생존 그 자체였기에 후손의 존재가 더욱 크게만 느껴집니다.



소설의 도입에서 나오미와 가족들은 포카텔로가 이끄는 쇼쇼니 족의 습격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이 살해당하고 자신은 아직 갓난 아기인 막냇동생과 함께 끌려갑니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존을 처음 만나던 때로 돌아가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이 장치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면서도 좋았습니다. 소설의 삼분의 이 지점까지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르르게 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은 나오미가 포니 족과 백인 혼혈인 존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스토리의 흐름이 좋았습니다.



죽은 남편의 가족과 친정 식구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오리건 트레일을 따라서 희망을 갖고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면서 존 라우리와 동행하게 된 걸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포니 족과 백인 어느 쪽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양쪽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살고 있던 존은 처음부터 나오미에게 빠졌습니다.



폭풍처럼 밀려온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끌림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황야에서 피어나는 꽃 같은 사랑이나 오아시스 같은 행복만을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환경, 상상치도 못할만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여정이었기에 늘 불안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콜레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슬픔이 치유되기도 전에 또 다른 가족이나 이웃을 잃기도 하며 그들은 끊임없이 전진해야만 했습니다. 물을 구하지 못해서 탈수가 오기도 하고 마차 바퀴가 부서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몇 날 며칠을 아끼고 또 아끼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그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적으로 좋지 않은 탓에 또 어린아이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나오미는 갓 태어난 막냇동생을 존과 함께 울프라고 이름 짓고 부쩍 수척해진 엄마 대신에 돌보기도 합니다. 막냇동생이긴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신의 아이처럼 여겼습니다.



적갈색 머리카락이 매력적인 나오미는 그림을 무척 잘 그립니다. 백인들에게 호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 아메리카 선주민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힘들 때에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노새와 당나귀, 종마를 다루는 기술자이면서 마음이 강한 남자 존은 그런 그녀에게 자꾸만 끌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혼혈인 탓에 앞으로 나오미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자꾸만 걱정되어 쉽게 청혼하지 못합니다. 오해와 갈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작은 결혼식도 올립니다.



존 라우리와 나오미 메이 라우리의 마차를 구입하기 위해 존이 나오미의 동생과 함께 잠시 대열에서 벗어났던 그 며칠 사이 프롤로그에서 보여주었던 그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존은 나오미를 찾겠노라고 그녀의 동생들과 굳은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마주합니다.



그들의 여정과 삶을 보고 있는 것만 해도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읽는 것보다도 초조했으며 위기를 하나씩 넘길 때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힘들다고 말하지만 저들의 삶에 비하면 너무나 나약한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였습니다.



1850년대 오리건 트레일을 배경으로 한 서사시라는 타이틀 때문에 읽었던 역사 소설이지만, 저에게는 그보다 더 큰 매력, 교훈 그리고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이제는 길 잃지 않은 자들이 되었음에 안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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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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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외롭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책, ALONE을 읽는데 잠시 주저주저했었습니다. 혹시 내가 몰랐던 외로운 감정, 이미 알고 있던 감정을 끌어내는 건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책은 외로움이 아니라 ALONE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ALONE과 LONELY를 동일시하며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책에서의 ALONE은 ひとり, 혼자, 홀로서기, 그리고 외로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서 슬프다는 감정을 서술하기도 하고 홀로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은 느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22인의 작가가 느끼는 '혼자'의 감정과 순간에 대한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외롭다'라는 감정을 잘 못 느끼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음에 따라 때때로 외로움 혹은 공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우울감이 밀고 들어온 파도와 같아서 또 금세 빠져나갈 것을 압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걸 이내 깨닫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책이 나를 다시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열었으나 오히려 잊고 있던 좋은 감정을 끌어내었습니다. 왜 나는 스스로 고독하길 원했던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실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게 좋은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면 어떻게 서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간관계에 부대끼며 마음고생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ALONE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세상을 잘 못 살았기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끔 상처를 받습니다.



<얼론>을 읽으면서 마음이 부드럽고 따스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독, 혼자 있음, 홀로됨, 외로움... 이런 감정은 유명한 작가들도 느끼는 거로구나. 누구에게나 있는 거구나 하는 동질감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각자가 마주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로 인해 겪는 일들, 풀어나가는 방법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고, 혼자 있다고 해서 슬픈 건 아니라는 걸 첫 번째 글 '홀로 걷는 여자/ 에이미 션'에서부터 깨달았습니다. 작가가 느끼던 감정을 온전히 뒤집어쓴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렇구나, 이 고독은 내가 원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 아니 이쪽은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일회성 만남으로 감정 소모하지 않는 걸 택한 거지만 - 매일을 그렇게 흘려보내다가 결국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던 가족들을 떠나서 혼자가 된 이야기, 뱃속에 품고 있던 아기를 잃은 경험... 작가의 솔직한 스토리가 들어있었습니다.



ALONE을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한 감상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소중한 순간,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건 아마도 공통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외롭거나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해 고통은 겪는 사람, 고독을 온전히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분들. 누구에게나 권하고픈 한 권의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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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 - 성인 ADHD 종합안내서
황희성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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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엄마의 산만함은 혹시 ADHD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을 만나보기로 결정했었어요. 예전에 성인 ADHD를 다룬 짧은 영상을 보니 저희 엄마 생각이 딱 났었거든요. 행동 패턴이 비슷하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읽기로 했죠.​


<ADHD 하면 떠오르는 증상>

부산스럽다

수다스럽다

집중을 못 한다

충동적이다.



그래서 다소 산만하거나 한자리에 앉아서 진득하니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보는 사람 그런 쪽을 연상했었어요. 하지만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저희 딸이 혹시?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요즘 심각할 정도로 보이는 증상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어서 당황했어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책에 수록되어 있는 DSM-5진단과 성인용 ADHD 자가 보고 척도 증상 체크리스트 v 1.1까지 해보라고 했어요. 그리고서는 20여 년 만에 이 아이가 ADHD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 거예요.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해서 검사 진행 후 판단해야겠지만 상당한 내용이 일치해서 놀랐어요. 이른바 조용한 ADHD 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죄송하게도 책을 읽기 전에는 재미있겠다! 그러니 읽어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ADHD였던 사람이 정신과 의사가 된 데다가 이 책을 쓰기까지 했다니 흥미로운 건 당연하잖아요. 흔히 보이는 건강 서적처럼 그럴싸한 글로 서술하고 홍보 목적으로 구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했었어요. 하지만 읽다 보니까 제가 큰 오해를 했더군요.​



물론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된 건 맞아요. 리틀포니가 겪고 있는 증상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고요. 그런데 의학적인 내용,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었어요. 비의료인인 제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어요. 뜬구름이나 근거 없는 이야기를 풀어 놓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정신의학계에서도 ADHD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어떤 분은 아예 ADHD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었어요. 세상에는 명확한 선이 없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신체에 기질적인 문제는 없지만 우리는 장운동의 이상을 겪기도 하고 통증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이런 걸 스트레스성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처럼 ADHD에 대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필자도 말하고 있듯이 사람마다 증상은 다르게 나타나는 거고요.


이 책에는 성인 ADHD에 대한 이해를 돕는 예시가 퍽 많이 나와요. 필자 자신이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상세하게 드러나죠.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ADHD 여부를 판단하는 간편 검사도 수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효율을 살려서 케어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다루고 있죠. 개인적으로 행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의료적인 처치나 처방과 병행하면 도움 될 수 있어요.


한 가지 방법만으로 좋아지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신체 질환도 처방제를 먹더라도 운동과 식습관을 병행하라고 하잖아요. 그렇기에 ADHD 관리 처방을 받아도 명상이나 마음 챙김 등으로 함께 돌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주변에 산만한 사람이 있거나 본인이 그렇다면 분명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에 관심을 둘 거예요.


하지만 전혀 그런 점이 없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른 상태가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에는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고 불리는 증상이지만 실제로 부산스럽고 산만함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니라니까요. 저도 딸이 ADHD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의심 상태라 오히려 이해하는 데 도움 되었어요.


그러므로 ADHD에 대해서 궁금하거나 관심이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를 읽어보길 바라요. 성인 ADHD라고 해서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두려워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자신 혹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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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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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대부분이 조선에 할애되어 있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에서는 '이 말은 절대로 쓰지 말아라!'라고 왕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적을 정도로 꼼꼼하게 문서로 기록했기에 역사 자료가 풍부한 편이니 당연한 일이죠. 학창 시절 국사의 반은 조선이요 나머지 반을 다른 시절에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역사 과목은 조선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표니 업적 같은 걸 달달 외우고 시험을 본 통에 그나마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물며 고려와 거란이 싸워온 이야기는 그냥 서희가 소손녕한테 멋지게 말을 해서 물러나게 했다! 나중에 또 쳐들어와서 몽진하다가 다시 수복했다! 그런 식으로 만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역사적 사건은 많았지만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탓에 소손녕이랑 소배압이랑 비슷한 시대인지 강감찬 장군은 언제쯤 활약을 했었던 건지. 아니, 강감찬이 있는데 서희는 왜 외교 담판을 지었던 건지 혼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겁니다. 국사 몇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듯 배운 데다가 당시만 해도 입시 배점이 높지도 않았고 하니 반쯤 포기했던 탓에 뭐 아무것도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역사를 잘 모르는 건 즐겁게 떠들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딱딱한 서적을 읽으면서 파고들기에는 지적 수준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역사책이긴 한데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술술 읽힙니다.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책입니다.


저자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루면서 서희와 소손녕이 등장하는 1차 침공(993년) 그리고 양규와 김숙홍이 등장하는 2차 침공(1010)을 나누어 풀어나갑니다. 대신들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강감찬의 느리게 반격하는 항전을 수락한 현종의 이야기도 생생히 전합니다. 거란을 고려를 꾸준히 침략해왔지만 결코 이쪽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에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이 오랫동안 치러왔던 전쟁을 사실에 입각하여 풀어나가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연결 지었습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느껴지니 책을 놓기 힘들었습니다. 2023년 11월에 KBS에서는 대하사극으로 고려거란전쟁을 제작하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 원작자로서 그리고 자문으로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서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깊이 다루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고려사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축소되어 전달되는데요, 저자는 이런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하여 <고려사>와 <요사>, <송사>와 같은 국내외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였습니다. 이를 집대성하여 책을 만들되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마치 역사 소설의 초반이나 중반에 등장하는 배경 설명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요한 장면은 소설의 서술 방식을 차용하며 따옴표 안에 대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에서는 삽화를 넣어서 무겁지 않도록 장치하였습니다. 어린이 서적에서나 볼법한 삽화를 통해 가볍고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형이나 전투 루트, 몽진 경로 등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도를 넣어서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읽다 보면 지리에 약하거나 고려에서 사용하던 지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편안했습니다. 독자로서는 이런 장치들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작가는 이를 위해서 무려 14년을 바쳤다고 합니다.


고려거란전쟁은 딱 전시만 다루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흐름이기에 전쟁 사이에 흘러가는 왕실의 상황이나 주변국의 이야기도 함께 짚어봅니다. 하지만 너무 그쪽으로 치중하여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였습니다. 짜임새 있는 진행 덕분에 보다 많은 걸 알고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쉽게 서술되어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일독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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