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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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스릴러, 공포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호러 에세이라니. 지금까지 없었던 에세이 세계가 아닌가! 하면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소름이 돋는다>라는 제목이지만 꼭 소름이 돋지 않더라도 그 묘한 기분을 느끼는 건 중독성 있는 쾌감이기에 놓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작가 배예람은 안전가옥 '대스타' 앤솔로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데, 기회가 되면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세이를 참 맛있게 썼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소소한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소설과 영화, 게임에 이르는 이야기까지 풀어내면서 자신의 호러 세상을 마음껏 펼쳤습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경험에 공감하고 나도 저 영화 봤는데! 맞다 그랬었지! 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무서운 걸 보면 몇 날 며칠이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기어이 찾는 묘한 심리까지 공감하였기에 에세이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겁쟁이어도 괜찮다. 아니, 겁쟁이라서 다행이다. 공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서 기쁘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껏 겁먹고, 마음껏 두려워하자. 다시금 마음먹으며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공포를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밤이다.

-P.24



나이 먹다 보니까 진짜 무서운 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고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모를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불필요한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책에서 '지하철에서 출입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좀비들이 달려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P.109)'라는 질문을 옆 사람에게 했다가 머쓱해졌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요즘 새로 나온 지하철은 중간 문이 안 닫히는 데, 만일 앞 칸에서 좀비가 달려오면 어떻게 방어해야 하나를 - 지하철에 앉아서 리틀포니와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타입이라... 아마 작가님께서 제게 물었다면 심각하게 함께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상상과 고민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연일 계속되는 비에 혹시 지반이 약해져서 집이 기울어지는 건 아닌지, 벽면으로 스며드는 물기는 과연 마를지. 뭐 이런 실질적인 문제가 공포로 다가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건가 봅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급증하는 초파리가 알을 낳으면 어떡하나 하는 호러스러움을 상상했으니까요.




우리 집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제일 무서운 일은 습기 때문에 빨래가 덜 마르거나 화장실 배수구가 막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저거 봐, 집이 넓으면 저게 문제라니까.

-p.50


저희 집이야 6평형 에어컨으로도 충분히 커버되는 정도의 소박한 사이즈라서 '숨바꼭질'처럼 누가 숨어들 염려도 없으니 악령의 침입이나 존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른스럽고 의젓해진 건 빈곤에서 나온 걸까요? 하하. 아무튼 어릴 때 귀신에 의한 두려움은 커가면서 점점 현실적인 문제로 옮아간 게 맞긴 한가 봅니다.



<소름이 돋는다>에세이에서는 다양한 영화도 다룹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본 모든 무비를 소환할 수는 없으니까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는데요, 제가 본 영화도 제법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이나 슬래셔 고어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스승의 은혜' 같은 영화는 보았었기에 으으... (생략)



작가가 간직한 호러 세상을 들여다보니 나의 세상은 어떤 걸까 하는 생각에 잠시 잠겼었습니다.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들도 마구 생각나더군요. '미드 소마'으로 충격받아 1년 정도 고생했던 터라 '유전'은 보지도 못했었는데, 신작이 나오더군요. '유전'부터 시도해 볼까 합니다.



참. 저는 '닥터후' 시리즈에서는 우는 천사가 제일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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