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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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대부분이 조선에 할애되어 있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에서는 '이 말은 절대로 쓰지 말아라!'라고 왕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적을 정도로 꼼꼼하게 문서로 기록했기에 역사 자료가 풍부한 편이니 당연한 일이죠. 학창 시절 국사의 반은 조선이요 나머지 반을 다른 시절에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역사 과목은 조선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표니 업적 같은 걸 달달 외우고 시험을 본 통에 그나마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물며 고려와 거란이 싸워온 이야기는 그냥 서희가 소손녕한테 멋지게 말을 해서 물러나게 했다! 나중에 또 쳐들어와서 몽진하다가 다시 수복했다! 그런 식으로 만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역사적 사건은 많았지만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탓에 소손녕이랑 소배압이랑 비슷한 시대인지 강감찬 장군은 언제쯤 활약을 했었던 건지. 아니, 강감찬이 있는데 서희는 왜 외교 담판을 지었던 건지 혼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겁니다. 국사 몇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듯 배운 데다가 당시만 해도 입시 배점이 높지도 않았고 하니 반쯤 포기했던 탓에 뭐 아무것도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역사를 잘 모르는 건 즐겁게 떠들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딱딱한 서적을 읽으면서 파고들기에는 지적 수준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역사책이긴 한데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술술 읽힙니다.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책입니다.


저자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루면서 서희와 소손녕이 등장하는 1차 침공(993년) 그리고 양규와 김숙홍이 등장하는 2차 침공(1010)을 나누어 풀어나갑니다. 대신들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강감찬의 느리게 반격하는 항전을 수락한 현종의 이야기도 생생히 전합니다. 거란을 고려를 꾸준히 침략해왔지만 결코 이쪽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에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이 오랫동안 치러왔던 전쟁을 사실에 입각하여 풀어나가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연결 지었습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느껴지니 책을 놓기 힘들었습니다. 2023년 11월에 KBS에서는 대하사극으로 고려거란전쟁을 제작하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 원작자로서 그리고 자문으로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서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깊이 다루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고려사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축소되어 전달되는데요, 저자는 이런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하여 <고려사>와 <요사>, <송사>와 같은 국내외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였습니다. 이를 집대성하여 책을 만들되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마치 역사 소설의 초반이나 중반에 등장하는 배경 설명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요한 장면은 소설의 서술 방식을 차용하며 따옴표 안에 대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에서는 삽화를 넣어서 무겁지 않도록 장치하였습니다. 어린이 서적에서나 볼법한 삽화를 통해 가볍고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형이나 전투 루트, 몽진 경로 등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도를 넣어서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읽다 보면 지리에 약하거나 고려에서 사용하던 지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편안했습니다. 독자로서는 이런 장치들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작가는 이를 위해서 무려 14년을 바쳤다고 합니다.


고려거란전쟁은 딱 전시만 다루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흐름이기에 전쟁 사이에 흘러가는 왕실의 상황이나 주변국의 이야기도 함께 짚어봅니다. 하지만 너무 그쪽으로 치중하여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였습니다. 짜임새 있는 진행 덕분에 보다 많은 걸 알고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쉽게 서술되어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일독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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