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시뮬레이션 - 모의실험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조혜정 지음 / 나무발전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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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시뮬레이션

 

  결혼한 지 3년차. 이맘때쯤 고비가 온다는데 여타 인간관계도 그러하듯 나와 다른 누군가와 맞춰서 관계를 지속한다는 건 꽤나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다. 못 견디고 이혼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혼이 곧 인생의 실패자라는 낙인에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잘잘못이나 실패, 또는 성공과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것 또한 아는 이들은 드물다. 마치 교통사고나 벼락을 맞는 것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가?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에서 누가 누굴 재단한단 말인가.

 

  이 책은 20년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며 우리 사회가 급격히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있음을 실감했다는 이혼전문변호사의 이야기다.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법률문제를 중심으로 저자의 이름을 딴 조혜정 변호사의 사랑과 전쟁’,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라는 제목의 칼럼들과 저자가 느낀 결혼과 이혼, 사람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책으로 엮었다. 인생 선배로서, 때론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의 역할까지 담당하며 변호사로서 해결해줄 수 있는 다양한 사례의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목차를 살펴보면 이렇다.

혼인신고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셨군요

애정은 사라져도 의무는 남는 부부의 세계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

헤어질 때는 돈으로 환가됩니다

 

  구성은 Q&A 형식으로 고민 상담을 요청한 이들의 질문이 나와 있었고, 틀에 박히지 않은 섬세하고도 적절한 해결책을 구체적 상황에 맞춰 제시하며 응원을 보탰다. 이를테면 한 집에서 각방 쓰는 결혼생활, 그만 끝내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상담내용엔 해시태그로 #새로운 인간형 #협의이혼 #조정이혼이라는 문구가 붙었고 서른 일곱의 아내가 살다보면 정이 생기겠거니 하며 세 번 만나 결혼을 결심했었다는 사연을 덧붙였다. 하지만 첫날밤에도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고, 결혼 1년 뒤 자신은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며 작은 방에 들어가 살았다고 했다. 이기적이게도 남편은 자기 집안에 이혼한 사람은 없다며 이혼은 절대 안하려는 상황이고, 상담을 요청한 아내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혼해야 재혼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저자는 결혼이 필요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신 거라고 입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모세대에는 별로 없었던 새로운 인간형인데 이런 성향의 사람은 가족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인간관계에 매우 서툴고 일정 수준의 애정을 부담스러워한단다. 배우자는 결혼생활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전, 가족사, 개인사 등 복합적 요인으로 개인의 성향이 형성되었기에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3년을 기다린 끝에 이혼을 결심한 내담자의 결론이 옳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협의이혼보다는 가정법원의 조정이혼 절차를 고려하는 것이 빠른 정리를 위한 방법이라고 조언하며 법률적인 답변도 달았다. 그러고 보니 송송커플도 이혼 조정을 신청하여 신속하게 끝냈던 사건이 생각났다.

 

  질문과 답변 외에도 <관계의 비용>이라는 코너를 두어 칼럼 형식으로 결혼생활과 이혼에 관한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담았다. 제목 중에는 세상 모든 시누이에게 고함이라든지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재산분할등 우리가 궁금해 마지않는 법적인 문제와 심리를 대변하는 속시원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무조건 이혼을 장려하지는 않았다. 외도는 곧 이혼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지 말고 신중하게 위기를 넘기는 것을 우선으로 선택해본 다음의 문제다.

 

나를 버린 어머니가 10억을 청구합니다라는 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연예인 고 구하라의 상황도 생각난다. 사례에선 부자인데도 어린 아들을 돌보지 않은 것, 아들이 성공했다고 10억을 달라고 소송까지 불사한 모습 또한 쉽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우리 민법엔 직계혈족 사이엔 상호 법률상 부양의무가 있다고 정했지만 부모 자식 간이라고 무조건 부양청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랬다. 청구자가 스스로 살 능력이 안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부모가 자식에 대한 양육책임을 다했는지와 관계없이 부모가 부양청구권을 갖는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경우엔 상당이 억울할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부양료를 책정할 때 부모의 손을 완전히 들어주지는 않는 듯하다. 부양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월10~20만원) 10억을 청구한 것에 비하면 말이다.

 

  책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예견하며 현명한 방법을 찾기를 조언한다. 현직 변호사가 지난 20년간 깨달은 법률지식과 삶의 지혜를 듣고 싶다면 이 책이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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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비적성 -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 엄마 비적성 여자의 육아 탐험기
한선유 지음 / 라온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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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비적성

 

  하하하! 너무 재밌다. 이렇게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어본 책은 참 오랜만이다. 저자는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어 출산과 동시에 자신이 육아비적성이라는 걸 커밍아웃하고 같은 육B(육아비적성을 지칭함)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사회적으로 처음 어머니 당하던날의 에피소드는 무척 공감되었다. 바로 산부인과를 방문하던 날이었다. 자신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간호사가 어머님, 검사받으러 오셨죠?” 라며 저자를 불렀을 때의 그 느낌적인 느낌! 꽤 비호감이었나보다. 나도 임신했다는 사실보다 어머니라고 처음 불렸던 그 때의 당황스러움이 뇌리에 박혀있다. 임산부가 된 저자는 그야말로 한없이 불쾌하고 힘들고, 배고프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는 최악의 병맛이었다고 회상하니 세상만사 다 귀찮아졌던 내 모습도 오버랩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거의 막달까지 입덧을 하며 웩웩거리던 난 이 책의 말마따나 미친뇬딱 일보 직전에 출산했다.

 

  목차를 살펴보니 너무 재치 있고 웃기다. <11, 19마리째 잡아먹던 날>이라든지, <각종 육아법 안 본 눈 삽니다>, <블로그 인스타 못하자: 따봉거지의 독방 육아>, <김지영식 복직은 이곳에도 없다> 등 현실감 있는 문구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난 저자가 나눈 네 가지 타입의 입덧러 중 다이어터형이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냄새도 못 맡고 아무것도 못 먹어 링거까지 맞아야 하는 스타일. 다행히 링거까진 안갔지만 남들 12~16주에 끝난다는 입덧을 거의 9개월까지 했다! 그럼 말 다했지 모. 저자는 먹덧이었나보다. 책은 걸뱅이라고 표현했는데 비위는 약하고 욱욱거리나 울렁거리는 속에 먹을 것을 채워 넣어야 사는 스타일이란다. 남편이 도대체 닭을 몇 마리 잡아먹어야 아기가 나오는 거야?” 라며 투덜댔다지만 그래도 배달의 민족을 자처한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내가 힘들면 남편이 도와야지. .

 

  출산 후엔 아이의 전집을 중고로 사려다 사기당한 에피소드도 나왔다. 오매불망 중고나라에 키워드 알람 등록을 해놓고 기다리다 그 원하던 전집 시리즈가 저렴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100만원이 넘고 중고도 60만원이 넘는 그 전집이 32만원에 나왔다니. 이건 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두달 치 분유값을 벌었다는 쾌재를 부르며 입금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물건이 오지 않아 범죄사건과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아이 키우느라 힘든 육아족에겐 이런 식의 발품을 파는 일이 종종 있지만 저자는 좁은 범위의 지인 사이의 중고 거래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알뜰살뜰하게 사는 것도 참 어렵다.

 

  육아도 선택의 문제이며 둔감하게 키워도 된다는 말을 심리 카운슬러 우에니시 아키라의 <둔감력 수업>을 제시하며 말했다. 누구나 처음이라 능숙할 수 없는 육아에 대해 시간을 두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아이의 울음을 너무 민감하게 큰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 속 울음을 더 챙겨보려고 애쓰길 조언했다. 이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같은 동지로서 육아탐험기랄까? 랜선 이모였을 땐 아름답게만 보였던 것이 현실 속에선 전쟁같음을 느끼며 그 와중에도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면서 아이 앞에서 작아지지 말자고 느꼈다. 비적성이라고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못하는 건 없다. 적성이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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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땅 - 지구를 이루는 물과 땅의 아름다운 형태들 I LOVE 그림책
크리스티 헤일 지음,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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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땅

 

  깔끔한 디자인과 색감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순식간에 앞뒤가 바뀌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책은 내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매우 지루하게 배웠던 지리적 정보들을 참 흥미롭게 보여준다. 물과 땅의 열 가지 형태를 다섯 쌍으로 묶어 페이지 앞뒤로 소개했다. 조물주의 상상력은 참 놀랍다. 이 아름다운 물과 땅의 경계가 드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꽉 찬 시야로 펼쳐진다. 직관적인 화면 분할과 생생한 색감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하늘을 날며 구경하듯 함께 책을 들여다보자.

 

  어느 가을날인 것 같다. 단풍이 빨갛게 물들고 있는 호숫가가 보인다. 유유자적 그 호숫가에서 보트를 타고 있던 소년은 다음 페이지에서는 섬 근처에서 세월을 낚고 있다. 부분이 전체가 되는 반전이 이루어졌다. 만은 곶이 되었고 결국 물과 땅의 형태가 보는 시점에 따라 같은 모양을 이름만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드넓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호수군으로 이뤄진 동그란 구멍은 다음 페이지에서 군도인 땅으로 변신한다. 마치 물과 땅의 대결 같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삽입된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식물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 여행한 호주의 본다이비치, 맨리비치가 생각났다.


  플랩 북에 이어 마지막엔 물과 땅의 형태를 이론적으로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앞선 페이지가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였다면 마지막엔 요약정리를 해놓은 식이다. 그래서 호수와 섬, 만과 곶, 해협과 지협, 호수군과 군도, 해만과 반도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를 이루는 물과 땅의 아름다운 형태들을 세계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곳곳의 유명한 땅과 물의 형태를 언급했다. 이를테면 코르시카 섬, 제네바 호, 갈라파고스 제도, 남극반도 같은 류이다. 특히 군도엔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딸린 섬의 무리인 고군산 군도도 소개되었다. 이 책을 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 근처에 잘 꾸며놓은 데이트코스 아라빛섬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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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 습관적으로 불행해 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 수업
이주현 지음 / 더로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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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감정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나도 포함해서. ‘과거의 받아들여지지 못한 오래 묵은 상처들은 빙하처럼 무의식에 흐르다 때때로 밖으로 흘러나와 자신과 인간관계를 망친다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그 케케묵은 감정은 감정의 주인인 조차도 부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가는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되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감정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자각의 시간을 가졌다. 바로 직면하여 그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인 오류관념을 재구성하였고 정서적으로 조건 없는 자기애를 통해 행복한 감정습관을 만든 것이다. 독자들에겐 이 책의 핵심메시지가 상당히 실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여러 예화와 인용, 작가의 체험이 실려 있다.

 

  다섯 중 맏딸로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지며 타인 위주로 산 저자. 지금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니 왜 안으로만 숨어들어갔는지, 왜 이리 미친 듯 일을 해댔는지 알 것 같았단다. 엄마가 해주지 않던 사랑의 말을 자신에게 스스로 하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안아주고 많이 울었더랬다. 저자의 소개를 들으니 동병상련의 경험을 한 많은 독자들이 위안을 받을 것 같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외부로부터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정작 자기 사랑의 마음은 뒷전인 것이다. 타인을 돌보기 이전에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남을 위한 인생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

 

  불행한 것도 습관이고, 이유가 없는 감정은 없으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과 감정의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내용이 책 전반에 걸쳐 서술되었다. 특히 미래를 행복하게 살려면 불행한 감정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윤씨의 사례처럼 자신의 인생이 아빠와 남편 때문에 망쳤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관념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분명 아빠와 엄마가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행복한 장면을 자주 상영해야 무의식에 행복을 심고 현실에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미해도 좋다. 반복적으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듯 행복의 패턴으로 점차 바뀌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며 감정의 행복의 열쇠가 숨어있다는 내용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인간관계의 숨은 의도는 받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타인이 나의 욕구를 들어주는 대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이다. 부모와 자녀관계도 그렇고 연인관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처음은 자기와의 관계이다. 스스로에게 함부로 하며 남에게 인정받기 바라는 건 모두 가식이다. 타인은 또 다른 나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그 힘으로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관계 다이어트는 먼저 자신의 부정적 관념을 빼는 게(다이어트하는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감정을 조절하고 휘둘리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가장 먼저 감정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스스로 오늘 기분은 어때?’ 와 같이 알아주고 물어봐주면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느껴진다. 감정은 알아주기만 해도 많이 풀어지는 존재다.

 

  마치 행복을 찾아 떠나는 파랑새처럼 저자는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찾았는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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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나의 텃밭 - 텃밭 중심 라이프
정원 지음 / 피그말리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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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나의 텃밭

 

  정원님의 텃밭으로 놀러가고 싶어졌다. 흙과 바람과 벌레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록한 텃밭일지는 요즘과 같이 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이 지나면 더욱 뜨겁게 아니 달콤하게 여름을 맞이했다고 쓰여질 것 같다. 초록초록한 열매들은 더 단단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갈 것이고 꽃은 드문드문해질 테지만 실로 열매의 계절이 시작되는 여름이 눈부시게 빛날 테지. 가을만 결실의 계절이 아니다. 이쯤 되면 양상추도 양배추도 여러 겹으로 겹쳐서 둥글게 속이 들고, 아욱, 쑥갓 등 식탁에 수시로 올릴 수 있는 일상적인 잎채소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진다. 책에 삽입된 텃밭과 저자의 모습을 보니 마음까지 풍요로워진다.

 

  아빠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해풍을 먹고 자라는 시금치며, 고추, 가지 등 평소에 심어보고 싶던 여러 것들을 정성스레 가꿨고 아주 만족해하신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이젠 불규칙적인 노동을 즐기는 몸이 되었다. 저자와 같이 어깨엔 노동의 근육이 생겼고 손은 거칠어졌고 얼굴은 점점 작열하는 태양에 그을렸지만 때때로 리듬감 있는 움직임이 아빠를 즐겁게 했다. 식탁에 올려놓은 아빠의 작품은 너무나 값졌다. 이번엔 뭘 심어볼까 아이 같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아빠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책을 보니 아빠가 생각났고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저자는 농장에서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라는 강연회를 듣고, 기르고자 하는 풀을 방해하는 모든 게 잡초라고 하는 통념에 언젠가부터 만연해졌다고 한다. 잡초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걷어낼지 아니면 다시 명명하고 새롭게 어울려 살 궁리를 할지 말이다. 다개장풀, 명지나물 등 다 먹을 수 있지만 자신이 기르고자 하는 토마토나 고추를 방해하면 그것이 잡초인 것인가?

 

  처음 텃밭을 일구기 시작할 때는 마음속에 이미 심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생기고 머릿속엔 풍경을 그렸는데 어느 3, 그날의 일지엔 무얼 심었는지 몰라도 상관없지라는 제목으로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할머니께 지금 뭘 심어야 해요?” 라고 여쭸더니 이것저것 다 심지. 좀 이따 보면 내가 뿌린 씨 나도 모른다.” 라는 다소 당황스런 대답이 들려왔다고. 모종가게에서 산 푯말이 세찬 바람에 날아가고 개구쟁이 아이들 발길에 채일 때쯤, 이게 도대체 어떤 싹이었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땐 답답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조금 쉬어가면 그만이다. 느긋하게 물도 주고 말도 걸고 시도 읊어주다보면. 그러면 된다. 여기서 인생철학이 등장한다. 우리가 걷는 각자의 인생길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면 무언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기쁜 마음으로 기르면 제 갈길을 가며 모습을 갖추는 채소처럼 말이다.

 

  텃밭에서 자라는 건 채소만이 아니다. 싹트고 자라는 자신을 관찰하며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함께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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