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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나의 텃밭 - 텃밭 중심 라이프
정원 지음 / 피그말리온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작고 소중한 나의 텃밭
정원님의 텃밭으로 놀러가고 싶어졌다. 흙과 바람과 벌레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록한 텃밭일지는 요즘과 같이 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이 지나면 더욱 뜨겁게 아니 달콤하게 여름을 맞이했다고 쓰여질 것 같다. 초록초록한 열매들은 더 단단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갈 것이고 꽃은 드문드문해질 테지만 실로 열매의 계절이 시작되는 여름이 눈부시게 빛날 테지. 가을만 결실의 계절이 아니다. 이쯤 되면 양상추도 양배추도 여러 겹으로 겹쳐서 둥글게 속이 들고, 아욱, 쑥갓 등 식탁에 수시로 올릴 수 있는 일상적인 잎채소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진다. 책에 삽입된 텃밭과 저자의 모습을 보니 마음까지 풍요로워진다.
아빠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해풍을 먹고 자라는 시금치며, 고추, 가지 등 평소에 심어보고 싶던 여러 것들을 정성스레 가꿨고 아주 만족해하신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이젠 불규칙적인 노동을 즐기는 몸이 되었다. 저자와 같이 어깨엔 노동의 근육이 생겼고 손은 거칠어졌고 얼굴은 점점 작열하는 태양에 그을렸지만 때때로 리듬감 있는 움직임이 아빠를 즐겁게 했다. 식탁에 올려놓은 아빠의 작품은 너무나 값졌다. 이번엔 뭘 심어볼까 아이 같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아빠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책을 보니 아빠가 생각났고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저자는 농장에서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라는 강연회를 듣고, 기르고자 하는 풀을 방해하는 모든 게 잡초라고 하는 통념에 언젠가부터 만연해졌다고 한다. 잡초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걷어낼지 아니면 다시 명명하고 새롭게 어울려 살 궁리를 할지 말이다. 다개장풀, 명지나물 등 다 먹을 수 있지만 자신이 기르고자 하는 토마토나 고추를 방해하면 그것이 잡초인 것인가?
처음 텃밭을 일구기 시작할 때는 마음속에 이미 심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생기고 머릿속엔 풍경을 그렸는데 어느 3월, 그날의 일지엔 ‘무얼 심었는지 몰라도 상관없지’ 라는 제목으로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할머니께 “지금 뭘 심어야 해요?” 라고 여쭸더니 “이것저것 다 심지. 좀 이따 보면 내가 뿌린 씨 나도 모른다.” 라는 다소 당황스런 대답이 들려왔다고. 모종가게에서 산 푯말이 세찬 바람에 날아가고 개구쟁이 아이들 발길에 채일 때쯤, 이게 도대체 어떤 싹이었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땐 답답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조금 쉬어가면 그만이다. 느긋하게 물도 주고 말도 걸고 시도 읊어주다보면. 그러면 된다. 여기서 인생철학이 등장한다. 우리가 걷는 각자의 인생길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면 무언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기쁜 마음으로 기르면 제 갈길을 가며 모습을 갖추는 채소처럼 말이다.
텃밭에서 자라는 건 채소만이 아니다. 싹트고 자라는 자신을 관찰하며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함께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