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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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벽지가 나를 쳐다본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 무례한 눈빛에 나는 몹시 화가 난다

저 벽지 안에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도 모르고 오직 나만이 알아본 무언가가

그건 마치, 허리를 굽히고 무늬 뒤를 기어 다니는 여인같아 보여 정말 보기 싫다

 

  이런 문장을 접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난 당장 내가 있는 장소의 벽지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기괴한 벽지 대신 아주 단순한 무채색의 무늬 없는 벽지가 보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그런 아내가 걱정된 의사 남편은 아내를 외딴 시골의 별장으로 데리고 와 3개월간 휴식을 취하도록 돕는다. 여기서의 휴식 치료법은 몇 주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며 외부 자극을 삼가고 지적 활동, 창의적 활동은 절대 금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마사지 요법이나 전기 충격 요법을 병행하기도 했고 강장제라 부르는 신경 안정제를 주사하기도 했는데, 상당수 그것은 환자를 나른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약 성분을 함유하고 있었다!

 

  저자는 샬롯 퍼킨스 길먼이다. 이 소설은 정신 이상의 발단 과정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포착한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안정 요법을 통해 오히려 정신적으로 파멸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던 그녀는 광증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완전한 휴식을 위해 온 커다란 방에 갇혀 흉물스러운 벽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매우 안타까웠다. 아내를 무척 사랑했지만, 자신의 아내가 나약하고 불안증세를 보이며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생각한 남편은 상상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없다고 경고한다. 글쓰기 또한 아내를 병들게 한다고 믿고 있어 글을 쓰는 행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점점 더 머릿속에 벽지 생각으로 가득찬 그녀는 고문 수준의 벽지 무늬가 빛에 따라 바뀐다는 느낌을 받고는 특히 달빛에 비췬 벽지의 겉무늬가 쇠창살이 되어 그 뒤에 여자가 또렷하게 나타나는 환영을 본다. 그 여자는 언제나 벽지 무늬를 뚫고 나오려고 애쓰지만 무늬가 목을 조르기에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달빛이 들이치자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이고 기어 다니며 무늬를 흔들기 시작하는 그 여자를, 그녀 또한 달려가 도와주었다. 벽지를 있는 힘껏 떼어내니 해방된 기분이 든 그녀. 갇혔던 벽지에서 이토록 넓은 방으로 나와 그 여자처럼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하며 벽이 둘러 난 얼룩이 자신의 어깨와 꼭 맞아 만족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남편은 기절하여 쓰러지고 그녀는 그의 몸을 기어 넘어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기괴하지만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통해 여성이 억압받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 이후 휴식 치료법은 중지되었다. 하나의 문학이 여성의 수많은 억압장치 중 하나를 무너트렸다. <월간 내로라>의 취지처럼 단숨에 읽고 잔상은 깊어졌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누런 벽지> 와 같이 단순에 읽을 수 있는 고전 단편을 번역할 다음 달의 소설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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