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리는 소리 문예단행본 도마뱀 3
이현호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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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리는 소리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마음이 시끄러울 땐 최대한 DJ의 멘트가 적거나 말투가 거슬리지 않고 조용조용한 프로그램으로 찾아 배경 같은 음악을 듣지만 외로울 땐 사람의 말소리가 듣고 싶어 게스트가 빵빵하게 나오는 시끌벅적한 프로그램을 골라 듣기도 한다. 이렇듯 소리라는 건 단순히 물리적인 진동을 넘어서는 무언의 힘이 있다. 지금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있는데, 태아의 청각기관은 5개월 무렵이면 거의 만들어지며 8개월 쯤에는 엄마의 몸 밖에서 나는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다니 몸가짐 외에도 소리를 조심해야 할 이유다. 태어나기 전부터 소리를 듣는다니 인간이 최초로 느끼는 감각답게 심오하다.

 

  문예단행본 도마뱀에서는 이번 호 나를 울리는 소리를 통해 이번에도 다양한 필자를 대동하여 다채로운 글들을 책에 담았다. 시인 김안님의 아버지가 내는 소리에 대한 에피소드는 마음이 찡했다. 틱 장애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는 소리는 치매 판정을 받은지 2년이 되어가는 아버지에게도 들려왔다. 쉬지 않고 반복되는 으음, 으음.” 이란 소리. 시인은 매일을 버티기 위해 연민도, 짜증도 아닌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마음을 지키고, 몸을 지키고 가족을 지킬 테니까. 시인이 듣는 소리는 의미 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 질서가 부여되고 그 속에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망각해가는 일상,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는 일상과 망각의 순환이었다.

 

  그런가 하면 2석 라디오가 들려준 잡음 섞인 방송에서 시작된 음악 감상과 기타연주, 작곡과 글쓰기의 여정은 정진영 소설가가 보여준 소리의 역사였다. 수시로 오래된 마음속 2석 라디오의 주파수를 조절하며 해적방송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을 것이라고. 그의 잡음 섞인 간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는 머지않아 응답될 것이다. 그것은 짱깸뽀 게임의 타짜와 작별하고 라디오를 선택한 순간부터 결정된 운명이었다.

 

  ‘블랙홀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주상균님의 나를 울리는 소리를 읽고 그의 하드록을 몇 곡 감상했다. 그의 순수의 시간들에 새겨진 소리의 울림이 음악을 통해 지속되고 있었다. 뜬금없이 아파트 단지에서 울리는 찹쌀떡~’ 소리에 모습과 느낌, 심지어 냄새까지도 느낀 그는 소리가 세상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릴 적 그가 들었던 음악들은 미래의 멋진 모습과 새로운 관심을 꿈꾸게 하는 소리였으며, 훈훈하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것이었다. 이처럼 소리는 이전의 기억과 함께 새로 경험하게 될 미래의 시간과 결합할 새로운 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유하는 소리는 소음이 될 때도, 그 자체로 언어이자 생각이 될 때도 있다. 이왕이면 마음까지 울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은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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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 아픈 청춘과 여전히 청춘인 중년에게
한기봉 지음 / 디오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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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제목을 보고 예닐곱 시절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 떠올랐다. 그땐 몸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몇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바람에 붕 떠서 실려 간 적이 있다. 그때도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을 보면 꿈은 아닌 것 같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이 등을 떠밀어 움직였다. 오늘 읽은 에세이가 내가 경험한 물리적인 바람은 아닐지라도 어디론가 가자고 말하는 바람 같은 삶의 기척이었다.

 

  지은이는 우리 아빠뻘 되시는 중년의 사내다. ‘아픈 청춘과 여전히 청춘인 중년에게, 위로와 연대감을 주는 글들이 포진되어 있다. ‘이 바람도 잦아들다 결국은 소멸될 터다. 참으로 앞을 머뭇거리고 옆을 기웃거리고 뒤를 두리번거린 삶이었다. 비루하고 고단했다. 이제 너무나 쉬운 삶의 매뉴얼. 그래, 살아야겠다.’는 문구가 삶을 바람의 성질에 빗대 묘사했고 그만큼 인생의 경험치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연륜 같았다.

 

  지하철 환승 통로 한구석에서 평생의 시 한 편을 만났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조병화의 <천적>이라는 한 줄의 시.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은유와 환유의 언어 대신 그 당돌하고도 도발적인 생물학적 용어, 천적이 주는 제목은 이 시의 힘 그 자체였다. 천적 또는 공생, 기생 관계를 포함한 경이로운 생태계에서 인간은 천적이 없는 유일한 생물 종이라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유효한 코로나19같은 바이러스는 제압하지 못했지만. 조병화 시인이 읊은 천적이 결국 라는 건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정면으로 직시하고 대결하는 것일 터. 내 안의 욕망과 시비, 선악을 보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득도의 순간 아닐는지.

 

  나도 영화 <인턴>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는데, 거기 등장하는 할아버지 벤은 시니어 인턴으로 한 번도 자신의 경륜과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솔선수범했으며, 간섭하지 않되 묵묵히 지켜보는 꼰대같지 않은 70세 사원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도 퇴직하고서 다시 계약직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호칭이랄지 현재의 지위 등에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꼰대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영화 포스터엔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퇴직한 벤과 같은 나이가 주는 느낌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퇴직한 아빠가 즐거이 만나는 부류 중 하나는 바로 동창이다. 저자도 동창을 찾는 건 일종의 회귀본능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각자가 서로의 스승이며 그의 주름살이 내 주름살이고 그의 면상이 내 얼굴인 것이다. 나도 시간이 흘러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뒤에 만나는 친구의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과는 사뭇 다르겠지.

 

  에세이는 정보습득을 위한 글의 종류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떤 물건이 때로 필요성보다 감성적 가치로 존재하듯이 대체로 쓸쓸하나 가끔은 반짝이는 인생에서 꼭 있어야 할 절절한 독백과 성찰같은 글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중년을 위한 에세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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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0~3세 육아 핵심 가이드
류인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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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고 잘놀고 잘자는 0~3세 육아핵심가이드

 

  처음 아이를 들쳐업고 집 앞 소아과로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한겨울이었고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되어 열이 났다. 고열은 아니었지만 난 식겁해서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처방해준 약을 먹고 열이 내렸고 난 마음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인 내 책임인 것만 같아 노심초사하게 된다. 육아서를 정독해 읽어도 막상 실전에선 허둥지둥대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오늘 읽은 책은 소아과 아빠 의사인 류인혁님의 육아서이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에 관한 객관적이고 중요한 정보들을 많은 부모와 공유하고 싶어 네이버 포스트에 글을 연재하고 이렇게 책으로도 펴냈다. 국제 최신 논문 기반의 육아 솔루션답게 여러 학회의 최신 자료가 수록되어 있었고 신생아 육아부터 성장과 영양, 습관, 건강, 감염관리까지 부모가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난 요즘 아이의 대소변 가리는 것에 관심이 많다. 조급해하진 않으려고 하는데 주변 또래 아이들을 보니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저자는 말했다. 대소변 가리기를 늦게 시작하거나, 중간에 실패하거나, 훈련이 길어지는 것은 아이의 지능이나 성격과 관련이 없다고. 최근에는 대소변 훈련을 너무 일찍 시작하는 것이 아이와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거나 행동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예전보다는 좀 늦게, 아이가 충분히 준비되었다는 사인을 보여주면 시작할 것을 권유한다고 한다. 제시된 신체적, 발달적, 행동적 준비 리스트를 보니 아직 우리 아이는 많이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개월 수는 할만한 나이인데 대소변 가리기에 아직 관심이 없는 듯하다. 긴 인내와 시간, 훈련과 칭찬이 필요한 이것을 부모로서 잘 지켜보고 실천해야겠다.

 

  지난달에 영유아 구강검진 시기를 놓쳤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죽어도 안 가겠다고 버텨서 못 갔다. 그래서 이 책에 제시된 치아 관리 가이드를 정독해 읽었다. 36개월까지는 6개월에 한 번씩, 그 후엔 1년에 한 번씩 치과 검진을 권유한다고 했다. 공갈젖꼭지를 빨거나 젖병을 늦게 끊는 것도 치아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습관이었다. 우리 아이는 평균보다 훨씬 늦게 뗐다. 이 둘 모두. 영구치가 난 후에도 손가락을 빨거나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다면 부정교합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중이염도 발생할 수 있다니 무섭다. 두 돌이 넘어서야 젖병을 끊었는데 책에선 충치 발생의 위험을 높이는 젖병을 돌 이후엔 빠르게 끊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둘째가 태어나면 이 원칙을 꼭 지키리라 다짐했다. 아직까진 아이에게 칫솔질만 해주는데 치실의 중요성도 언급해주어 치실을 사용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아이가 얼마나 협조할지는 의문이지만 올바른 치실 사용법을 배워 아이에게 적용해보리라.

 

  이 책은 영아의 수유부터 수면, 소아비만, 편식, 우유와 영양제 등의 가이드, 예방접종, 장염, 설사, 수족구 같은 전염병과 대처법 등 다양한 정보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저자 또한 소아청소년 전문의였으나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경험 없는 초보 아빠에 불과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같은 마음의 부모들을 이해하고 궁금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육아에 대한 최신의 객관적인 답을 모아 책을 냈다고 소회를 밝혔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인터넷 정보보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0세에서 3세의 아이를 둔 부모는 필독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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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는 밤 - 달빛 사이로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
강가희 지음 / 책밥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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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냐는 질문에 언제나 ‘위로’ 라고 답한다는 저자처럼 타인과 나 자신에게마저 치일 때 날 위로해준 것은 책이었다. 공감을 통한 위무. 이것이 달빛 사이로 다가와 안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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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는 밤 - 달빛 사이로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
강가희 지음 / 책밥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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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는 밤

 

  고단한 하루에 지쳐있는 내 손을 지그시 잡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작가의 말마따나 삶의 은유를 찾아가는 일이다. 이 과정이 메타포가 되어 시시한 삶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작가가 소개한 명작을 다시금 곱씹어보며 찾아읽기도 했다. 내가 놓치거나 느끼지 못했던 위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된 적이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볼수록 느낌이 새로웠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인 이것은 낙관적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신분 차이로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완성하고자 5년 만에 신흥 부자가 되어 나타난 개츠비. 하지만 졸부였던 그는 태생적 부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부자와 함께 상속되는 품위가 없었다. 게다가 의외로 순진했던 이 남자는 오로지 돈의 벽만이 그의 첫사랑이었던 데이지와 갈라놓았었다고 착각했다. 그의 순정보다 처음 본 아름다운 셔츠에 반한, 돈에 충만한 데이지와 재회하곤 그가 매일 그려왔던 꿈속의 여인이 아니었음을 느꼈으리라. 얄팍한 사랑에 모든 걸 건 개츠비는 바보같았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강 건너 빛나는 초록 불빛은 존재하되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또한 나만의 초록 불빛을 가지고 싶은 밑도 끝도 없는 낙관적 희망을 쉽게 버릴 수 없다. 그것만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등불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말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대로 서울이란 미친 집값의 도시에선 나만의 빛을 갖게 되는 게 취업보다 더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알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든 투기든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겐 개츠비같은 속성이 있을 터. 허망하더라도 삶의 욕망은 멈출 수 없기에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 란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 작품인데 이 책을 통해 대략 내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중문학부 동창생들이 모인 쑨웨이의 집에서 위로가 값싼 동정이 될까 봐 내색하지 못하고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숨긴 채 건배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얼마 전 대학동기오빠에게 연락을 받았다. 동문회원명부 책자가 왔길래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말이다. 이거 받으니 후원금 내라고 계속 연락이 온다며 난감하다고 투정하는 그에게 내가 궁금했던 동문 몇 명의 연락처를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엔 이름과 함께 졸업 연도, 주소와 이메일, 현재 직업까지 적혀있었다. 물론 현재 직업이 적힌 동문들은 학교와 원활한(?) 연락과 접촉이 잘되는, 잘나가는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교사가 되기도 했고, 변호사도 있었다. 전공답게 법무팀 과장, 공무원도 꽤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동문은 졸업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던 언니다. 막 입성했을 때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녀도 나도 책자엔 이름뿐이었다. 왠지 서글퍼졌다. 연락처가 있었는데 번호를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인생 참 얄궂다.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마음이 아리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꿈꿔온 이상대로 살 줄 알았는데 우리의 대부분은 아주 평범하고 시시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는 건 행복이 아니라 좀 더 고통스럽거나 좀 덜 고통스럽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는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내게 다가온 명작이 절실히 위로해준다.

 

  책을 왜 읽냐는 질문에 언제나 위로라고 답한다는 저자처럼 타인과 나 자신에게마저 치일 때 날 위로해준 것은 책이었다. 공감을 통한 위무. 이것이 달빛 사이로 다가와 안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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