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 아픈 청춘과 여전히 청춘인 중년에게
한기봉 지음 / 디오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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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제목을 보고 예닐곱 시절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 떠올랐다. 그땐 몸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몇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바람에 붕 떠서 실려 간 적이 있다. 그때도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을 보면 꿈은 아닌 것 같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이 등을 떠밀어 움직였다. 오늘 읽은 에세이가 내가 경험한 물리적인 바람은 아닐지라도 어디론가 가자고 말하는 바람 같은 삶의 기척이었다.

 

  지은이는 우리 아빠뻘 되시는 중년의 사내다. ‘아픈 청춘과 여전히 청춘인 중년에게, 위로와 연대감을 주는 글들이 포진되어 있다. ‘이 바람도 잦아들다 결국은 소멸될 터다. 참으로 앞을 머뭇거리고 옆을 기웃거리고 뒤를 두리번거린 삶이었다. 비루하고 고단했다. 이제 너무나 쉬운 삶의 매뉴얼. 그래, 살아야겠다.’는 문구가 삶을 바람의 성질에 빗대 묘사했고 그만큼 인생의 경험치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연륜 같았다.

 

  지하철 환승 통로 한구석에서 평생의 시 한 편을 만났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조병화의 <천적>이라는 한 줄의 시.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은유와 환유의 언어 대신 그 당돌하고도 도발적인 생물학적 용어, 천적이 주는 제목은 이 시의 힘 그 자체였다. 천적 또는 공생, 기생 관계를 포함한 경이로운 생태계에서 인간은 천적이 없는 유일한 생물 종이라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유효한 코로나19같은 바이러스는 제압하지 못했지만. 조병화 시인이 읊은 천적이 결국 라는 건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정면으로 직시하고 대결하는 것일 터. 내 안의 욕망과 시비, 선악을 보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득도의 순간 아닐는지.

 

  나도 영화 <인턴>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는데, 거기 등장하는 할아버지 벤은 시니어 인턴으로 한 번도 자신의 경륜과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솔선수범했으며, 간섭하지 않되 묵묵히 지켜보는 꼰대같지 않은 70세 사원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도 퇴직하고서 다시 계약직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호칭이랄지 현재의 지위 등에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꼰대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영화 포스터엔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퇴직한 벤과 같은 나이가 주는 느낌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퇴직한 아빠가 즐거이 만나는 부류 중 하나는 바로 동창이다. 저자도 동창을 찾는 건 일종의 회귀본능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각자가 서로의 스승이며 그의 주름살이 내 주름살이고 그의 면상이 내 얼굴인 것이다. 나도 시간이 흘러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뒤에 만나는 친구의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과는 사뭇 다르겠지.

 

  에세이는 정보습득을 위한 글의 종류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떤 물건이 때로 필요성보다 감성적 가치로 존재하듯이 대체로 쓸쓸하나 가끔은 반짝이는 인생에서 꼭 있어야 할 절절한 독백과 성찰같은 글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중년을 위한 에세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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