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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불안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시대의 징후다
현대의 불안을 더 이상 개인의 내면적 취약성으로 환원해 바라보던 오래된 시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 되었다. 불안은 더 이상 ‘개인의 성격 문제’나 ‘의지박약’으로 규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안 장애의 급증, 우울증의 만연, 스트레스 관련 질환의 폭발적 증가는 일종의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낸 집단적 현상에 가깝다. 키렌 슈나크의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전제로 출발하며, 불안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리·사회 구조·심리적 환경이 맞물린 총체적 현상으로 다룬다.
책의 효용은 불안을 해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불안을 다루는 체계적 도구들을 소개하면서, 불안이 인간의 생존 시스템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불안은 주로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배양된다. 불안정 노동의 확대,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의 급증, 고용 안전망의 붕괴, 경기 침체, 과도한 경쟁 체제,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다수가 된 사회의 고립감, SNS가 만든 비교와 감시의 문화, 비대면 접촉의 증가 등은 불안을 정상화시키는 환경적 조건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형태로든 예측 불가능성을 삶에 내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고용은 더 유연해졌지만 동시에 더 취약해졌고, 관계는 더 다양해졌지만 더 불안정해졌으며, 기술은 더 발전했지만 정서적 고립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들은 개인의 심리적 기반을 뒤흔들며, 불안을 하나의 시대 징후로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을 감지한 것처럼 개인이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즉, 당신이 약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무력감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충분히 훈련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에 대한 반응을 배울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인지적 접근뿐 아니라 신체 기반·감각 기반 조절 기법을 폭넓게 소개한다.
책에서 강조하는 첫 번째 전환은 불안을 ‘생각의 문제’로만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불안은 감정 이전에 신경계의 생리적 반응이며, 공포 회로가 켜지는 과정이 신체에서 먼저 일어난다.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 열감, 메스꺼움, 손 떨림 등은 모두 신경계의 전형적 반응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신체 감각을 기록하는 과제를 제시하며, 불안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 “내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한 인문학적 전환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인간은 이성을 중심으로 자아를 구성해왔지만, 현대의 불안은 그 서사를 무너뜨린다. 몸은 이성보다 먼저 감정을 읽고 드러낸다. 그렇기에 불안을 다루는 방법은 결국 신체 감각을 회피하지 않고 관찰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책의 독창성은 단순히 상담적 조언을 넘어서 실제로 신경계를 낮추는 간단한 기술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껌씹긴, 얼음 찜질, 간단한 신체활동, 운동, 춤, 노래 등 다채로운 방식의 쉽고 일상적인 긴장 완화 방식을 책은 꼼꼼하게 소개한다.
껌을 씹는 행위는 턱의 리듬성 움직임을 통해 과도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뇌의 혈류량을 높여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진시키며, 긴장을 완화한다. 이는 생존 반응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된 상태로 신경계를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또 얼음의 강한 감각은 신경계를 순식간에 현재로 끌어당긴다. SNS·뉴스·경제 위기·미래 불확실성으로 과열된 신경계는 빠른 온도 자극에 반응하며 과도한 각성 상태에서 빠져나온다. 이것은 현대인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도구이다.
허밍, 노래 부르기, 낮은 목소리의 발성 반복은 미주신경을 자극해 신체를 진정 모드로 전환한다. 사회적 고립과 비대면 접촉 증가로 인해 감정 표현이 줄어든 현대인에게 특히 유용한 조절 방식이다. 목소리는 자기 자신을 달래는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춤추기나 운동 같은 신체의 큰 움직임은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하고 코르티솔을 낮춘다. 불안이 깊을수록 몸이 웅크리는 성향이 강해지는데, 춤은 그 반대를 요구한다. 고립, 정서적 침잠,좌식 노동으로 체화된 긴장을 해소하는 데 탁월하다. 인류는 원시 시대부터 음악과 움직임을 통해 집단적 스트레스를 조절해왔다.
이러한 기술들은 단순한 팁을 넘어서, 현대인이 상실한 신체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의 불안은 주로 머릿속에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과부하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불안은 아래의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스 확산, 고용 불안정, 자영업의 수익 구조 악화와 종속성 심화, 장기간 이어진 경제 불황과 미래 예측 불가능성, 핵가족, 1인가구 증가로 인한 정서적 고립, SNS 비교 문화, 감정의 과잉 노출, 대면 관계의 축소, 팬데믹 이후 강화된 거리감, 사회적 고립감 증가 등, 개인의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는 개인의 불안이 사적 경험을 넘어 사회 구조 자체가 불안정을 내장하고 있는 시대임을 시사한다. ‘노력하면 된다’는 낡은 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저자가 불안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고, 재조절하도록 안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은 개인이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견디기 어려운 세계의 구조적 조건이 불러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안을 다루는 첫걸음은 자기 비난을 멈추는 것이다. 불안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며, 더 강한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도 아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신경 시스템이 현대 사회의 과도한 속도와 압력에 맞서 피로해진 결과다.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안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반응 방식을 다시 배워 몸의 감각을 신뢰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개인의 회복 탄력성이 아니라, 개인과 신체, 감각과 환경, 사회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인문학적으로 통찰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현대인은 더 많은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불안정성을 떠안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불안을 개인 내부의 결함으로 환원하는 대신, 불안을 몸과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불안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은 불안이라는 감정 뒤에 숨겨진 신체의 언어, 사회의 구조, 시대의 흐름을 동시에 읽도록 이끄는 드문 안내서다. 불안이 깊은 사람일수록 이 책의 실천적 조언은 몸에 빠르게 가닿을 것이다. 이 책은 불안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동시에 불안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시대적 폭력에서 한 걸음 벗어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