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경다양성 커플일까요 - ADHD를 포함한 독특한 사람들의 관계 맺기
로나 헤커 지음, 성주연 외 옮김 / 학지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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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경다양성 커플일까요?

 

NT인 줄 알았던 내가, 신경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에 대하여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평균적인 신경전형 사람이라고 규정해왔다. 사회 활동도 가능했고, 감정 표현이나 관계 유지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었으며, 겉보기에는 일상 기능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경다양성 커플일까요?>를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사용해온 뇌의 운영체제가 사실은 전혀 다른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마주했다.

 

이 책은 단순한 관계 심리서가 아니라, 인지과학·신경심리학·감각처리 연구의 최신 통찰을 바탕으로 짜여 있다. 각 장면은 왜 어떤 사람은 과도하게 피곤해지고, 왜 어떤 관계는 오해를 반복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신경계의 정보처리 방식, 감각 민감성, 실행 기능의 차이로 설명해낸다. 그리고 그 설명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내 삶의 경험과 맞아떨어졌다.

 

나는 언제나 스몰토크가 불편했다. 너무 가볍거나 의미 없는 대화를 할 때면 에너지가 빠르게 고갈되고, 대화의 맥락을 붙잡으려 애쓰는 동안 머리가 과열되는 느낌을 자주 경험했다. 책은 이를 감각 정보 처리 차원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신경다양인은 언어를 연결의 장치보다 정보 단위로 처리한다. 의미 없는 말은 처리 비용만 높인다.

 

, 가벼운 소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부하가 증가해 피로도가 오르는 것이다. 이 설명은 내가 스몰토크를 회피하던 이유를 단번에 명쾌하게 보여줬다.

 

또한 나는 오래전부터 씹는 소리, 반복되는 소리, 먹방 같은 것들에 극심한 불쾌감을 느껴왔다. 책에서 제시하는 미소포니아는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청각 피질과 편도체의 과활성으로 인해 특정 소리를 위협으로 오인하여 과도하게 반응하는 신경학적 현상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그 설명을 읽으며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 뇌가 특정 감각을 다르게 처리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배우자와의 신체적 접촉에서 과부하를 느끼는 경험도 설명되었다. 난 피로할 때 신체 접촉이 고통에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책에 따르면 일부 신경다양인에게는 촉각 자극이 과도하게 증폭되어 들어오며, 이는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감각 신경계의 과흥분 상태에서 기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설명하기 어려웠던 내 몸의 반응들이 모두 하나의 지도로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반복적으로 실행 기능의 개별 요소주의 조절, 작업 기억, 시간 관리, 우선순위 설정가 어떻게 관계에서 충돌을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한다. 나는 종종 하루에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한 번에 계획하고, 잘 해내지 못하면 자책에 빠지고, 또다시 과한 계획으로 자신을 압박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배우자는 이를 욕심으로 해석했지만, 책은 이를 명확히 ADHD 스펙트럼 혹은 ND 특유의 실행기능 부하로 본다. 시간 감각이 흐려짐, 해야 할 일을 작업 기억에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함, 과업을 쪼개지 못하고 한 번에 거대한 단위로 시도함, 성취-좌절-보상 추구가 반복되는 루프, 이 모든 것이 내가 평생 겪어온 패턴과 거의 일치했다. 이때 느껴지는 충동성 역시 "의지 부족"이 아니라, 인지적 부하를 줄이기 위한 빠른 우회 전략이었다는 설명은 나를 깊이 안도하게 했다.

 

내가 특정 유형의 사람, 경계선을 쉽게 넘거나, 타인을 미묘하게 무시하거나, 자신을 과하게 포장하는 사람에게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설명되었다. 신경다양인은 사회적 위협 신호를 과민 탐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과거 대인관계에서 겪은 상처 경험(왕따, 소문 피해 등)과 결합되면 빠른 패턴 인식 시스템이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첫인상에 대한 촉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왔고, 실제로 문제적 인간 관계 대부분에서 그 촉은 정답이었다.

 

책을 통해 나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감정·표정의 미세 신호를 고해상도로 감지하는 신경 시스템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정보량이 많은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사회적 가면 파트였다. 나는 새로운 관계에서는 극도로 친절하고 사회적 규범을 충실하게 따르며, 때로는 역할 수행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친해질수록 그 가면을 벗고 본래의 흡수식 감각 처리와 직설적 사고가 드러나는 편이었다. 책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경다양인은 신경전형의 언어 체계를 분석하여 모방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해왔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본래의 신경 패턴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많은 ND들은 연애 초반과 달라졌다” “네가 처음만큼 다정하지 않다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나는 이 진술을 읽는 순간, 오랜 상처의 구조가 설명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신경다양성과 신경전형성이 짝을 이뤘을 때 가장 흔히 발생하는 문제들을 책임 분배의 불균형인지 처리 방식의 차이로 설명한다. ND는 실행 기능 부담을 과도하게 떠안게 되고 NT는 계획 과부하를 제어하지 못하는 ND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고 ND는 피로와 감각 과부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오해를 낳는다. 이 설명은 나와 남편의 갈등 패턴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특히 터치 과부하나 성적 자극의 민감도 차이는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감각 처리 체계의 구조적 차이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비로소 우리 관계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리 둘이 서로의 신경계를 모른 채 살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이 책은 내가 누구인가를 신경과학적으로 명명해준 첫 책이다.

<우리는 신경다양성 커플일까요?>는 심리적 공감의 차원을 넘어서, 감각 처리, 실행 기능, 사회적 처리, 정서 조절, 신경계의 부하 패턴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단지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신경구조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 감각 자극들에는 뇌의 생물학적 이유가 있었다.

관계 속에서 반복되던 오해는 의도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차이였다.

내가 살아오며 느끼던 소외감, 에너지 고갈, 패턴 집착, 첫인상의 정확성은 한 가지 언어로 설명될 수 있었다. 즉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신경계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훨씬 더 너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커플 문제 해결서가 아니다. 자신의 뇌의 작동 방식을 처음으로 구조적으로 이해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깊은 해방감을 선물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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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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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시대의 징후다

 

 

현대의 불안을 더 이상 개인의 내면적 취약성으로 환원해 바라보던 오래된 시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 되었다. 불안은 더 이상 개인의 성격 문제의지박약으로 규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안 장애의 급증, 우울증의 만연, 스트레스 관련 질환의 폭발적 증가는 일종의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낸 집단적 현상에 가깝다. 키렌 슈나크의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전제로 출발하며, 불안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리·사회 구조·심리적 환경이 맞물린 총체적 현상으로 다룬다.

 

책의 효용은 불안을 해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불안을 다루는 체계적 도구들을 소개하면서, 불안이 인간의 생존 시스템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불안은 주로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배양된다. 불안정 노동의 확대,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의 급증, 고용 안전망의 붕괴, 경기 침체, 과도한 경쟁 체제,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다수가 된 사회의 고립감, SNS가 만든 비교와 감시의 문화, 비대면 접촉의 증가 등은 불안을 정상화시키는 환경적 조건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형태로든 예측 불가능성을 삶에 내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고용은 더 유연해졌지만 동시에 더 취약해졌고, 관계는 더 다양해졌지만 더 불안정해졌으며, 기술은 더 발전했지만 정서적 고립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들은 개인의 심리적 기반을 뒤흔들며, 불안을 하나의 시대 징후로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을 감지한 것처럼 개인이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 당신이 약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무력감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충분히 훈련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에 대한 반응을 배울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인지적 접근뿐 아니라 신체 기반·감각 기반 조절 기법을 폭넓게 소개한다.

 

책에서 강조하는 첫 번째 전환은 불안을 생각의 문제로만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불안은 감정 이전에 신경계의 생리적 반응이며, 공포 회로가 켜지는 과정이 신체에서 먼저 일어난다.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 열감, 메스꺼움, 손 떨림 등은 모두 신경계의 전형적 반응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신체 감각을 기록하는 과제를 제시하며, 불안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 내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한 인문학적 전환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인간은 이성을 중심으로 자아를 구성해왔지만, 현대의 불안은 그 서사를 무너뜨린다. 몸은 이성보다 먼저 감정을 읽고 드러낸다. 그렇기에 불안을 다루는 방법은 결국 신체 감각을 회피하지 않고 관찰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책의 독창성은 단순히 상담적 조언을 넘어서 실제로 신경계를 낮추는 간단한 기술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껌씹긴, 얼음 찜질, 간단한 신체활동, 운동, , 노래 등 다채로운 방식의 쉽고 일상적인 긴장 완화 방식을 책은 꼼꼼하게 소개한다.

 

껌을 씹는 행위는 턱의 리듬성 움직임을 통해 과도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뇌의 혈류량을 높여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진시키며, 긴장을 완화한다. 이는 생존 반응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된 상태로 신경계를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또 얼음의 강한 감각은 신경계를 순식간에 현재로 끌어당긴다. SNS·뉴스·경제 위기·미래 불확실성으로 과열된 신경계는 빠른 온도 자극에 반응하며 과도한 각성 상태에서 빠져나온다. 이것은 현대인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도구이다.

 

허밍, 노래 부르기, 낮은 목소리의 발성 반복은 미주신경을 자극해 신체를 진정 모드로 전환한다. 사회적 고립과 비대면 접촉 증가로 인해 감정 표현이 줄어든 현대인에게 특히 유용한 조절 방식이다. 목소리는 자기 자신을 달래는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춤추기나 운동 같은 신체의 큰 움직임은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하고 코르티솔을 낮춘다. 불안이 깊을수록 몸이 웅크리는 성향이 강해지는데, 춤은 그 반대를 요구한다. 고립, 정서적 침잠,좌식 노동으로 체화된 긴장을 해소하는 데 탁월하다. 인류는 원시 시대부터 음악과 움직임을 통해 집단적 스트레스를 조절해왔다.

 

이러한 기술들은 단순한 팁을 넘어서, 현대인이 상실한 신체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의 불안은 주로 머릿속에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과부하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불안은 아래의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스 확산, 고용 불안정, 자영업의 수익 구조 악화와 종속성 심화, 장기간 이어진 경제 불황과 미래 예측 불가능성, 핵가족, 1인가구 증가로 인한 정서적 고립, SNS 비교 문화, 감정의 과잉 노출, 대면 관계의 축소, 팬데믹 이후 강화된 거리감, 사회적 고립감 증가 등, 개인의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는 개인의 불안이 사적 경험을 넘어 사회 구조 자체가 불안정을 내장하고 있는 시대임을 시사한다. ‘노력하면 된다는 낡은 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저자가 불안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고, 재조절하도록 안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은 개인이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견디기 어려운 세계의 구조적 조건이 불러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안을 다루는 첫걸음은 자기 비난을 멈추는 것이다. 불안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며, 더 강한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도 아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신경 시스템이 현대 사회의 과도한 속도와 압력에 맞서 피로해진 결과다.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안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반응 방식을 다시 배워 몸의 감각을 신뢰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개인의 회복 탄력성이 아니라, 개인과 신체, 감각과 환경, 사회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인문학적으로 통찰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현대인은 더 많은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불안정성을 떠안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불안을 개인 내부의 결함으로 환원하는 대신, 불안을 몸과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불안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은 불안이라는 감정 뒤에 숨겨진 신체의 언어, 사회의 구조, 시대의 흐름을 동시에 읽도록 이끄는 드문 안내서다. 불안이 깊은 사람일수록 이 책의 실천적 조언은 몸에 빠르게 가닿을 것이다. 이 책은 불안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동시에 불안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시대적 폭력에서 한 걸음 벗어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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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 아워 - 삶의 격을 높이는 인생 설계의 기술
최유나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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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 아워

: 분절된 현대인의 시간 구조와 다층적 정체성의 관리 기술

 

현대인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업무, 돌봄, 학습, 창작, 가계 운영 등 여러 층위의 역할이 하루 단위로 교차하며, 각 층위는 서로 충돌하고 우선순위를 두고 경쟁한다. 이러한 분절된 삶의 구조는 N잡러라는 용어가 익숙해진 시대적 흐름을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역할 간의 부딪힘을 어떻게 최소화하며, 자기 효율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라는 문제에 가깝다.

 

<마일리지 아워>는 이 다층적 삶의 구조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시간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변호사, 방송작가, 에세이스트, 웹툰 작가, 강연자, 그리고 두 아이의 부모라는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살고 있다. 독자가 그 목록을 읽는 순간 불가피한 의문이 떠오른다. 하루가 24시간뿐인 조건에서 어떻게 저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자연스레 책의 목적을 선명하게 구성한다. 이 책은 시간을 늘리는 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구성하는 방식을 재정의한다.

 

저자는 현대인의 시간 문제를 단순히 기술 부족이나 게으름의 산물이 아니라 심리적 과부하와 역할 간 간극이 만든 구조적 문제로 바라본다. 실제로 다층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반대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분절된 삶 속에서 각 영역을 동일한 강도로 관리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날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질책한다. 이 책은 이러한 자기비판적 태도를 해체하고, 시간 관리의 기준을 외부 기대가 아니라 내부 감당 가능성에서 출발하도록 요청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 해결 메시지들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실패는 적립된다, 행복은 욕심 분의 노력이다, 시간을 쓰는 방식은 결국 나를 정의한다 등등은 시간 관리의 기술이라기보다 삶의 체계를 재구축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현대인은 실패를 시간 낭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실패는 곧 정체, 뒤로 물러섬, 혹은 무능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저자는 실패를 오히려 경험치 적립으로 읽는다. 실패의 기록은 생산성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선택 비용을 줄이고 판단 체계를 정교하게 만든다.

 

이 원리는 N잡러의 삶에 특히 유용하다. 여러 영역을 동시에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실패는 필연적이다. 모든 영역에서 완벽을 추구하면 결국 소진에 이르기 때문이다. 실패를 적립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전환 가능한 자산으로 바꾼다. 이 관점 전환만으로도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부과하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

 

저자가 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조언, “행복은 욕심 분의 노력이다는 시간 관리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욕심이 지나치게 크고 그것을 감당할 노력의 양이 따라주지 않을 때, 불행은 구조적으로 발생한다는 간단한 비례 관계이다.

 

현대인의 시간 부족 문제는 실제로 시간이 모자랐다기보다, 욕망의 총량과 가용 시간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N잡의 삶은 일종의 분수식이다. 분모(욕심)가 너무 크면 분자(노력)가 아무리 커도 행복감은 낮아진다. 분모를 줄이는 전략은, 곧 삶의 전반적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이 공식은 자기계발 담론이 흔히 제시하는 더 많이, 더 빨리, 더 노력하라는 충고와 거리를 둔다. 대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과 감정적 용량을 먼저 설정하고, 목표치를 현실에 맞게 줄이는 전략을 우선시한다. 이는 심리적 소진을 막고, 장기 지속 가능한 작업 구조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조절 장치다.

 

저자는 시간을 단순한 흘러가는 자원으로 보지 않는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시간을 쓴 방식이 곧 삶의 방향을 규정한다는 이 명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분절된 삶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다층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시간은 종종 외부 요구에 의해 분절된다. 의무와 책임이 시간의 우선권을 차지하면, 자기 영역의 시간은 마지막 순서로 밀려난다. 저자가 말하는 시간 선택의 기술은 외부의 요구보다 자기 정의에 따른 시간 배분을 우선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저자는 즉각 처리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바로 해결하고, 반복적인 가사나 업무는 자동화하고, 선택 비용이 큰 결정은 미리 구조화하여 뇌의 여유 공간을 확보한다. 이는 시간 사용의 효율성을 넘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판단 체계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가장 큰 시간적 고충은 충돌이다.일과 가사, 돌봄과 휴식, 학습과 생계, 창작과 의무는 서로 시간대를 차지하며 갈등한다. 이 책이 지닌 흥미로운 지점은, 이 충돌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충돌 자체를 현대적 삶의 구조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충돌을 없애려 하지 않고, 충돌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충돌로 인한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재편성한다. 이 접근은 완벽주의적 시간 관리와는 전혀 다른 길이다.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는 대신, 균형이 깨질 것을 전제하고 대비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여러 정체성을 지닌 사람에게 시간은 단순한 단위가 아니라 서사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결국 삶을 어떤 구조로 만들어갈지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태도는 이러한 서사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시간을 쪼개 사용하기보다,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설계하려는 태도이다. 특히 직업·가사·돌봄·학습·창작이 모두 혼합된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질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자동화, 즉각 처리, 선택 비용 축소, 욕심 조절 등의 원리는 결국 시간의 질을 높이는 방법들이다. 이 원리들은 N잡러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유효하다.

 

<마일리지 아워>는 방법론적으로는 시간 관리를 다룬 자기계발서의 외형을 띠지만, 실질적으로는 현대인의 분절된 삶을 설명하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이 책은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독려하지 않고,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의 구조를 재편성하여, 실패를 자산으로 이해하고, 욕심과 노력을 현실적으로 배분하며, 시간 선택의 기준을 자기 정의에서 시작하도록 안내한다. 이 책의 메시지는 다층적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역할이 많은 사람일수록 외부 요구보다 내부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책은 반복적으로 환기시킨다. 결국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시간 관리 기술에 있지 않다. 핵심은 자신의 시간과 삶을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다층적 정체성을 지닌 현대인, 특히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마일리지 아워>는 시간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하나의 도구이자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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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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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본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은 일본문학사의 고전적 맥락 속에서 늘 이중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그는 누구보다 일본적인 소재를 집요하게 다루었음에도, 정작 작품이 그려내는 감정적·미학적 효과는 일본적 정서와 어긋나 있다. 바로 이 모순적 균열이 그의 문학을 세계문학으로 확장시키는 지점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적 이유이다. 이 단편집에서 드러나는 미시마의 문학적 사유와 미학적 전략을 살피는 일은, 일본이라는 공간을 넘어 근대 이후 인간 존재가 겪는 소외·정체성의 파편화·욕망의 균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 현대문학은 종종 정서적 지역성(local affect)”으로 규정된다. 습한 여름의 공기, 소리의 여백, 계절의 시간성, 절제의 미학인 와비, 쇠락의 미학인 사비, 말하지 않은 비극미와 숭고미인 유겐의 미학, 공동체적 억압 등 일본적 감정구조가 작품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그러나 미시마 유키오는 그 틀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일본적 소재를 빈번히 차용하면서도, 그 소재를 문화적 표상이나 장소적 상징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인간 존재의 원초적 층위인 육체·욕망·죽음·파국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최소화하여 사용한다.

 

온나가타가 그 대표적 작품이다. 가부키라는 극도의 일본 전통문화는 문화의 무대지만, 미시마는 이를 가면의 구조와 정체성의 흔들림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한다. 이는 일본적 서정성의 특유한 과잉 감정과는 정반대이며, 오히려 사르트르·카뮈의 실존적 불안에 가깝다. 저자는 일본적 풍경을 지우고 존재의 상처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지역성을 떠나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일본 미학은 본래 감추기·비워두기·쇠락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이러한 미학을 충실히 따르는 대신, 그것을 전복시키거나 균열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은 절정 직전의 긴장이나 절정 직후의 균열에 배치된다. 이는 디오니소스적 충동, 즉 충만한 생의 에너지와 파멸 본능의 결합과 밀접히 닿아 있다.

 

우국은 그 미학의 정점이다. 충성·사랑·육체·국가라는 요소가 모두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지점에서 폭발한다. 전통적 일본미학에서는 죽음의 장면조차도 절제와 여백의 방식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으나, 미시마는 이를 폭력적인 완성, 절정에서의 붕괴로 그려낸다. 이는 고전적 비극미와 연결됨과 동시에 현대적 존재론이 말하는 정체성의 해체 순간을 상징한다. 미시마의 작품에서 절정과 파국은 그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인 셈이다.

 

단편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 인식과 타자 인식의 충돌 속에서 무너진다. 담배속 소년은 타인의 응시를 통해 자기 존재를 처음 자각한다. 이는 라캉의 시선의 이론혹은 푸코의 감시와 규율의 구조와 맞닿는다. 시 쓰는 소년은 창작이라는 내적 세계와 현실적 관계와 감정의 충돌 속에서 믿어온 언어의 확신이 부서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루코는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욕망의 충돌을 다룬다. 온나가타의 만기쿠는 수행된 성(gender-as-performance)이 무너지는 순간 감정의 파국을 경험한다.

 

이 모든 작품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근대 이후 인간은 왜 이렇게 많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가면이 흔들리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구조적 불안과 근대성의 균열을 드러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기 증명과 소모, 불안과 번아웃 속에서 정체성의 균열을 경험한다. SNS 시대의 자기 브랜딩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가면을 요구하고, 속도와 경쟁은 존재의 허기를 심화시킨다. 그래서 미시마의 인물들은 시대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 오늘의 우리를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

 

왜 우리는 완벽을 강요받는가? 왜 아름다움은 그토록 덧없게 느껴지는가? 왜 우리는 절정에서조차 불안을 느끼는가? 왜 욕망은 늘 파국의 가능성을 동반하는가?

 

저자는 위 질문들에 대해 심리학적·사회학적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문학적 장면으로 증명해낸다. 그의 문장은 학문보다 서늘하고, 철학보다 더 직접적이며, 이론보다 더 깊이 인간의 심연을 찌른다.

 

이 단편집을 다시 읽으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균열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세계문학의 작가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정서를 배경으로 밀어낸다. 그의 미학은 일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 전통이 품은 균열을 드러낸다. 그의 인물들은 일본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근대 이후 인간의 불안이라는 보편적 구조를 보여준다. 미시마의 문학은 다음을 향해 있다. “인간은 절정의 순간에 가장 정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파국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오래되었지만 낡아 있지 않다. 일본적이지만 세계적이며,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이다. 가장 지역적인 소재로 가장 보편적인 비극을 쓴 작가, 그게 바로 미시마 유키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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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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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작가의 장편소설 얼굴들은 단순한 범죄 서사를 넘어, 인간의 비가시적 얼굴을 탐구하는 일종의 심리·사회적 해부도처럼 읽힌다. 책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압도적인 긴장감과 차가운 서술의 방식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평범한 악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모순적인지 되묻게 만든다.

 

책의 소개 문구는 이 작품의 핵심 세계관을 명징하게 제시한다.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자,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자, 오직 자신의 쾌락에 굴복한 자, 선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평범한 악인들.” 이 문장은 인간의 악이 특별한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악은 익명적이고, 일상적이고, 때로는 정상성의 얼굴을 하고 우리 곁을 스며든다.

 

한국 속담에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면역된 악성(惡性)의 심리또는 평범한 악(Banality of Evil)’로 설명해 왔다. 고전적인 범죄소설의 악인은 선명한 동기와 상징적 이미지를 가진 존재들이 많았지만, 얼굴들이 제시하는 악은 그러한 전형성을 벗어난다. 이 소설의 악인들은 우리와 동일한 언어를 쓰고, 같은 공간을 살아가며, 거의 구분되지 않는 일상성을 지닌 얼굴로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섬뜩하고, 더 현실적이다.

 

소설은 강렬한 사형 장면으로 시작해 독자를 긴장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장면의 목적은 잔혹성의 표현이 아니다. ‘살인의 죄책을 느끼지 못하는 자라는 존재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방식의 기원을 묻는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사건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그들의 욕망·침묵·회피·이기심이 교차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 속 악의 얼굴들이 결코 특별하거나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도덕적 무감각을 훈련해온 경찰, 명예와 권력을 위해 윤리를 포기한 교수, 타인을 파괴해도 죄책 없이 사라지는 대학생, 이 모든 삶을 관찰하며 글의 소재로 삼으려는 소설가까지 각자의 얼굴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동일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특히 여경 광심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축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그녀의 태도는 단순한 악의 전형이라기보다, 감정의 기능이 마모된 현대인의 초상처럼 읽힌다. 감정이 마모된 인간은 더 쉽게 타인을 도구화하고, 더 쉽게 윤리적 경계를 잃는다. 광심은 그런 의미에서 악의 개인적 형태라기보다, ‘악의 사회적 징후를 상징하는 존재다.

 

이 작품이 가진 흡입력은 단순한 범죄의 퍼즐을 맞추는 재미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서늘한 시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어두운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다. 등장인물 각각은 하나의 역할이라기보다, 다양한 인간성이 교차하는 장()이다. 악은 특정 주체에게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전이되며, 서로 다른 얼굴을 쓰고 나타난다. 이 점은 작품을 사회적·철학적 독해로 확장하게 만든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삶의 결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__은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과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심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무심함이 어떻게 다른 형태의 악과 연결되는지 보여주며, 독자에게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문학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도 깊은 감정적 긴장 속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미스터리적 구조 위에 인간학적 질문을 겹쳐놓음으로써, 장르적 매혹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끌어낸 것이다.

 

__은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윤리 구조와 사회적 모순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소설에 더 가깝다. 악은 특별한 존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잠복해 있는 가능성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타인을 대하는가? 우리는 어떤 얼굴로 사회 속에 존재하는가? 작품은 이 질문을 독자의 손에 쥐여주며, 서늘한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얼굴들은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 인간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깊은 창문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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