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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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본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은 일본문학사의 고전적 맥락 속에서 늘 이중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그는 누구보다 일본적인 소재를 집요하게 다루었음에도, 정작 작품이 그려내는 감정적·미학적 효과는 일본적 정서와 어긋나 있다. 바로 이 모순적 균열이 그의 문학을 세계문학으로 확장시키는 지점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적 이유이다. 이 단편집에서 드러나는 미시마의 문학적 사유와 미학적 전략을 살피는 일은, 일본이라는 공간을 넘어 근대 이후 인간 존재가 겪는 소외·정체성의 파편화·욕망의 균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 현대문학은 종종 정서적 지역성(local affect)”으로 규정된다. 습한 여름의 공기, 소리의 여백, 계절의 시간성, 절제의 미학인 와비, 쇠락의 미학인 사비, 말하지 않은 비극미와 숭고미인 유겐의 미학, 공동체적 억압 등 일본적 감정구조가 작품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그러나 미시마 유키오는 그 틀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일본적 소재를 빈번히 차용하면서도, 그 소재를 문화적 표상이나 장소적 상징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인간 존재의 원초적 층위인 육체·욕망·죽음·파국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최소화하여 사용한다.

 

온나가타가 그 대표적 작품이다. 가부키라는 극도의 일본 전통문화는 문화의 무대지만, 미시마는 이를 가면의 구조와 정체성의 흔들림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한다. 이는 일본적 서정성의 특유한 과잉 감정과는 정반대이며, 오히려 사르트르·카뮈의 실존적 불안에 가깝다. 저자는 일본적 풍경을 지우고 존재의 상처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지역성을 떠나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일본 미학은 본래 감추기·비워두기·쇠락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이러한 미학을 충실히 따르는 대신, 그것을 전복시키거나 균열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은 절정 직전의 긴장이나 절정 직후의 균열에 배치된다. 이는 디오니소스적 충동, 즉 충만한 생의 에너지와 파멸 본능의 결합과 밀접히 닿아 있다.

 

우국은 그 미학의 정점이다. 충성·사랑·육체·국가라는 요소가 모두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지점에서 폭발한다. 전통적 일본미학에서는 죽음의 장면조차도 절제와 여백의 방식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으나, 미시마는 이를 폭력적인 완성, 절정에서의 붕괴로 그려낸다. 이는 고전적 비극미와 연결됨과 동시에 현대적 존재론이 말하는 정체성의 해체 순간을 상징한다. 미시마의 작품에서 절정과 파국은 그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인 셈이다.

 

단편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 인식과 타자 인식의 충돌 속에서 무너진다. 담배속 소년은 타인의 응시를 통해 자기 존재를 처음 자각한다. 이는 라캉의 시선의 이론혹은 푸코의 감시와 규율의 구조와 맞닿는다. 시 쓰는 소년은 창작이라는 내적 세계와 현실적 관계와 감정의 충돌 속에서 믿어온 언어의 확신이 부서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루코는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욕망의 충돌을 다룬다. 온나가타의 만기쿠는 수행된 성(gender-as-performance)이 무너지는 순간 감정의 파국을 경험한다.

 

이 모든 작품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근대 이후 인간은 왜 이렇게 많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가면이 흔들리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구조적 불안과 근대성의 균열을 드러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기 증명과 소모, 불안과 번아웃 속에서 정체성의 균열을 경험한다. SNS 시대의 자기 브랜딩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가면을 요구하고, 속도와 경쟁은 존재의 허기를 심화시킨다. 그래서 미시마의 인물들은 시대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 오늘의 우리를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

 

왜 우리는 완벽을 강요받는가? 왜 아름다움은 그토록 덧없게 느껴지는가? 왜 우리는 절정에서조차 불안을 느끼는가? 왜 욕망은 늘 파국의 가능성을 동반하는가?

 

저자는 위 질문들에 대해 심리학적·사회학적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문학적 장면으로 증명해낸다. 그의 문장은 학문보다 서늘하고, 철학보다 더 직접적이며, 이론보다 더 깊이 인간의 심연을 찌른다.

 

이 단편집을 다시 읽으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균열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세계문학의 작가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정서를 배경으로 밀어낸다. 그의 미학은 일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 전통이 품은 균열을 드러낸다. 그의 인물들은 일본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근대 이후 인간의 불안이라는 보편적 구조를 보여준다. 미시마의 문학은 다음을 향해 있다. “인간은 절정의 순간에 가장 정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파국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오래되었지만 낡아 있지 않다. 일본적이지만 세계적이며,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이다. 가장 지역적인 소재로 가장 보편적인 비극을 쓴 작가, 그게 바로 미시마 유키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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