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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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김주혜 작가님의 <작은 땅의 야수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대하소설이었다. 그래서 이번 신작 <밤새들의 도시>가 출간된다는 광고를 접하고, 기대감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출간 직후부터 이어진 뜨거운 SNS 프로모션을 지켜보면서 읽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지만, 뒤로 미루고 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소설을 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어수선한 심리 상태에서 섣불리 시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들의 도시>는 러시아의 천재 무용수 나탈리아 레오노바(나타샤)와 그녀를 둘러싼 무용수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인물소설이다. 나타샤와 알렉산드르 니쿨린(사샤)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발레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 실감 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레 팬이라면 분명 이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발레라는 예술을 좋아해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배우고, 공연까지 혼자 보러 다닐 만큼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이 작품은 매 순간이 감정이입과 몰입의 연속이었다. 나탈리아가 날아오를 때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중력을 거스르는 기분이 들었고, 무대 조명 아래에서 환희의 순간을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사랑을 느낄 때 나도 그녀와 함께 설렜고, 괴롭힘을 당하며 좌절할 때는 함께 고통에 빠졌다. 심지어 사고와 부상, 그리고 우울의 늪에 빠지는 순간들도 마치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특히 마지막 무대에서 나탈리아가 지젤을 공연하기 위해 나아가는 장면. 드라마틱한 부상을 딛고, 그녀와 환상의 파트너가 이루어낸 그 무대는 나에게 심리적 절정을 선사하며 눈물까지 나오게 했다. 나탈리아의 큰 고별 무대를 관통하며, 나는 이 작품 속 그녀의 삶에 온전히 기대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환희만 남긴 작품이 아니었다. 저자가 언급했듯, 아무리 위대한 예술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하지만 지젤 공연이 절정에서 끝이 나더라도, 나탈리아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진다. 나타샤가 마린스키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도약하는 장면은 우리 삶이 하나의 예술처럼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작품은 단순히 발레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인간 삶과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낸 고도의 서사적 예술이다.

 

이성복 작가님는 문학은 인생이라는 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꾸는 또 다른 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문학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나의 문학 읽기는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 같은 것이다. <밤새들의 도시>를 통해 나는 예술, 인간관계, 그리고 욕망이 얼마나 날카롭게 얽혀 있는지 깨달았다. 나탈리아처럼 뛰어난 천재라 해도, 그녀가 가진 감정과 관계의 갈등은 결국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나타샤 주위의 인물들은 사샤를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나쁜 남자라고 여겼지만, 결국 나타샤는 그를 자신의 사랑이자 영혼의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나는 그녀가 사샤를 용서한 장면에서 그녀의 감정을 절절히 공감했다. 나 역시 사샤가 그녀를 사랑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사랑은 서로를 태워버릴 만큼 강렬하더라도, 끝내 함께할 수 없는 관계로 남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를 살라내며 자기 자신까지 태우는 불길 같았다. 반면, 매그너스와의 관계는 서로를 감싸 안는 따스한 불꽃처럼 오래도록 조화를 이루며 타오를 수 있는 안정적인 사랑이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사샤를 보내고 그의 행복을 빌었듯, 나 역시 이 등장인물들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고 싶다.

 

저자의 전작이 민족적 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면, 이번 신작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밤새들의 도시>는 단순히 예술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바로 나탈리아가 발레라는 예술을 통해 자신 안에 깃든 영혼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우리가 각자 가진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놓고 싶지 않은 꿈과 도전을 위해 나탈리아의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서사는 천재 예술가의 삶이기에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바로 그녀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울림이 만들어진다. 발레라는 낯선 세계를 배경으로 삼고는 있지만, 그 무대 안팎에서 무너지고 성장하는 나탈리아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삶에 연결되는 보편적 진리가 있다.

 

이 책은 단지 발레 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독자가 그녀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그녀들과 함께 날아오르는 동안 발레의 낯선 용어조차 마법의 주문처럼 마음속에 스며든다. 나는 이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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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도
유호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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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현 작가님의 『천사도』는 가상의 법률과 제도가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그리는 정치범죄판타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강력범죄자의 거주의 자유를 박탈하여 ‘천사도’로 불리는 섬에 격리하는 법제인 천사도법이라는 가상의 법률을 중심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해당 법은 실제로 2005년 플로리다에서 제정된 ‘제시카법’을 모티브로 하였다. 제시카법은 아동 성범죄를 계기로 만들어진 법률로, 성범죄자의 경우 초범 시 최소 25년 형, 재범 시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출소 후 위치추적장치 착용을 의무화한 법이다.  


저자는 이러한 법제를 토대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범죄자의 격리가 인권 보호 차원에서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범죄자를 사회에서 다시 수용할 경우, 재범 발생 위험과 잠재적 범죄 가능성을 국민이 사회적 비용으로 떠안는 것이 온당한가? 헌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명시하지만, 그 기본권은 범죄자와 일반 국민을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논쟁은 첨예한 의견 대립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독자로서 나는 제시카법과 같은 피해자의 이름을 따온 사후 법제가 마냥 달갑지 않음을 밝히고 싶다. 상징성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법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피해자 가족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강력한 범죄 사건에서 살아남은 가해자의 위치와 권리만 지나치게 보호되고, 피해자와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아픔은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죽은 제시카의 이름이 아닌, 그녀를 죽인 범죄자의 이름이 기억되어야 할 터인데, 법을 통해 되풀이되는 피해자의 기억이 그 가족들에게 또 어떤 고통을 안겨줄지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저자는 작품을 시작한다. 소설 속 천사도법은 한 대선 후보의 유세 전략에서 출발한다. 해당 후보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 인사로, 가해자를 피해자 주거지 근처에 치료 목적으로 석방하여 재범을 방관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죽음을 정치적 선전 용도로 이용한다. 심지어 자신의 딸이 연루된 범죄에서는 무고한 호텔 직원을 억울한 범인으로 몰아 처벌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양산하며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임에도 참혹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작품이 묘사하는 어두운 사회적, 정치적 비리는 우리 현실에서도 마치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비리를 떠올리게 하여 더 진한 괴로움을 준다.  


저자는 독자들의 울분을 헤아리며 권력형 악의 축이었던 대통령을 그가 만든 범죄자의 섬, 천사도로 불러들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한다.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책 속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들의 복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라는 점이 또 한 번 울림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현실에서도 법이 온전히 정의를 구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은 속도감 있고 흡입력이 강하며, 선과 악의 구도 또한 명확하다. 독자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감정이입할 대상이 뚜렷해진다. 많은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거나 수감되는 과정은 가슴 아프지만,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이 지혜롭게 생존 및 복수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법 위에 있는 법꾸라지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기 위해 피해자들이 법밖에서 자신의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은 씁쓸하지만, 이러한 피해자의 끈질긴 노력은 현실에서도 저항과 정의 실현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은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한 복수극으로, 책을 펼치는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동시에 우리 현실에서 법과 인권, 정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며, 분노를 넘어 피해자들이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만든다. 독자들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천사도』는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정치범죄판타지 소설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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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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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소설로,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된 전직 CEO 윌과 그의 간병인으로 취직한 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윌은 까칠하고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반면, 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발랄하고 따뜻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삶과 죽음,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집중적 탐구를 가능케 하며, 동시에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감동과 슬픔을 전달한다.


소설의 초반부는 주로 두 주인공의 관계 형성과 감정의 변화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루와 윌의 관계는 처음에는 대립적이지만 점점 유대감을 형성하며 발전한다. 이 관계는 로맨스 장르에서 익숙한 공식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특히 두 인물의 설정과 관계성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설렘과 기대를 선사한다. 이러한 익숙함은 작품의 초반부를 읽는 데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하며, 독자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중반부 이후에 드러난다. 윌과 루의 감정이 깊어지는 동안, 윌은 자신이 결정한 안락사 선택을 굽히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결정은 루와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다. 


특히 윌이 루에게 "당신을 사랑하지만 내게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소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백은 루에게 큰 좌절과 슬픔을 안겨주며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감정적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로맨스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는 사랑과 생존의 희망적 전개와는 달리,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여준다.


작품은 이러한 윌의 결정을 통해 로맨스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삶을 사랑했던 윌이 생리 현상 하나 제어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느낄 절망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부분은 단순한 로맨스를 초월한 휴먼 드라마로 느껴진다. 윌의 선택은 독자에게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신중한 메시지는 소설을 통속적인 감동 이상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윌은 루에게 "살아요, 루"라는 당부를 남긴다. 이는 윌에게 마음을 다했던 루가 그의 죽음을 직면하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루는 윌과의 만남을 통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경험했고,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받는다. 이러한 결말은 단순한 개인적 사랑의 서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생존과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통속적인 로맨스의 전형성을 활용하면서도 파격적인 결말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나눈 사랑과 감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오늘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생명력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품은 예측 가능한 전통적 전개 방식과 충격적 결말 사이의 균형을 통해 독자를 끌어들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에 따라, 이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할 만한 가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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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내 인생의 페이지 - 4050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열 가지 이야기
권경애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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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내 인생의 페이지는 중년 세대를 위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생의 2막을 맞이하기까지의 과거를 성찰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제2의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보내고 있는지를 열 명의 저자가 진솔한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은 각 저자가 걸어온 다양한 삶의 행로에서 얻은 통찰을 담았으며, 직장에서의 은퇴, 재취업, 건강 악화, 가족 문제, 그리고 제2의 꿈과 도전 등 실제로 우리 사회의 중년층이 직면하는 고민들을 가감 없이 다루었다. 저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도전하고 삶을 돌아본 기록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달한다. 이 책은 제2의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내게도 큰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한국에서는 80살이 넘어선지 제법 되었고, 더 이상 60대 은퇴 이후 십 여 년 동안 인생 종막을 준비하는 방식은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 국민 언니 김미경 코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상들보다 영양적으로나 사회적으로 15살은 더 젊다고 말하며, 나이를 단순히 물리적인 숫자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실제로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겉모습으로는 나이를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하곤 한다. 내 시부모님께서도 90대에 가까운 연세이시지만 감사하게도 지금도 정정하시다. 이러한 점에서 4050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부르는 것은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나 역시 스무 살 한철의 공부로 20년 가까이를 살아왔으니, 이제야 내가 걸어보지 않았던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나 참으로 다행이었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이미 안정적인 생계 수단을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이미 올해 초에 일을 관두고 새로운 꿈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야 했지만, 이사 문제로 일이 지연되면서 반년 가까이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키우던 아이들의 투병과 사고로 계획보다 지출이 늘어났고, 반복되는 인테리어와 이사 준비, 취소와 지연이 겹치다 보니 금전적 부담 또한 커진 탓이다. 먹고사는 현실에 발목 잡혀 도전이 미뤄지다 보니 처음 계획했던 일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도 커지고 말았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책에서 저자들은 내게 이렇게 조언하는 것 같았다.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되, 인생의 우선순위를 잃지 말라’고. 내 스스로가 건강하게 바로 서야 가정도 평화로울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나보다 먼저 인생이란 여행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진솔한 조언은 내게 온화한 격려가 되어 가슴을 따뜻하게 적신다. 


책에서는 거창한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이들이 정직하게 얻은 결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책 속에서 보여준 전업 주부, 자영업자, 새로운 자격증을 공부하여 새 사업을 시작한 사람,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가며 젊게 살아가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중년의 삶은 모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중년 이후의 삶은 축소와 소멸이 아닌, 새로운 도약과 재창조의 시기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나에게도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라떼는 말이야’를 반복하는 초라한 삶을 긍정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힘차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현재의 나를 긍정하며 미래의 나를 기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쓰는 내 인생의 페이지>는 그리하여 모든 중년에게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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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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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자인 강보라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지난 4월에 읽은 2025년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바우어의 정원>을 통해서였다. <바우어의 정원>의 주인공은 지난 삼년 간 세 번의 유산을 하고 배우 활동을 접었다가 오디션을 계기로 간만에 사회로 나온다. 눈이 내리는 도로 위에서 낡은 모닝 차를 서툴게 조작하면서 운전하는 장면은, 그녀가 꽤나 사회와 깊게 단절되어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주인공인 은화가 참여한 연극의 오디션 주최측은 그녀에게 여성의 몸과 상처에 대한 자기고백적 연기를 요구한다. 은화는 삼년 간의 칩거의 근원이었던 유산에 대한 고백으로 오디션을 참여한다.


지난 삼년 간 저는 세 명의 아이를 잃었습니다.

 

 다시 읽어도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독백.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일지도 모른다. 나도 작중 주인공처럼 지난 3년간 7명의 아이를 잃었다. 저자는 스스로 겪지 않은 이야기를 썼노라 고백했지만, 작중 은화의 이야기는 내게는 나의 이야기였다. 작년에 나는 6년 만에 힘들게 들어선 태아를 뱃속에서 잃었고, 재작년 봄에는 3개월을 기다려서 가까스로 데려올 수 있었던 입양 딸냥이를 고작 두 달만에 병마로 떠나 보내야 했으며, 재작년 가을에는 14년을 키워온 내 장남 아들 냥이를 3개월에 걸친 시한부 심장, 신장 투병 끝에 잃었다. 재작년 겨울에는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산된 두 마리의 손주 냥이를 보내줘야 했고, 올해 봄에는 또 한 마리를 태내에서, 또 한 마리의 증손주냥이를 태어난지 보름도 되지 않아 떠나보내야 겠다. 내 고양이들과 태아는, 모두 내게는 하등 다를 바 없는 자식이고, 새끼를 잃은 어미에게 상실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다시 시간을 돌이켜도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발버둥을 치면서 최선을 다했어도, 떠나버린 생명의 무게는 내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되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회한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을 앞세우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데, 근 삼년 사이에 너무 많은 내 새끼들을 보내면서 나는 그걸 몇 번이나 깨우쳤다. 그 와중에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다가 가까스로 살린 내 애기들이 나를 이 땅에 잡아두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기나긴 슬픔의 여정에서 어느 순간 나를 놓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안으로 침잠하면서, 온갖 것을 곱씹으면서 만약을 거듭하던 절망과 슬픔의 순간들. 시간을 돌이킨다 해도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반추되던 시간들. 아이들과의 이별은, 나를 죄 없이도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할퀴어대던 시간들. 나는 은화의 담담한 고백 속에서 그녀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로 들이마신 상한 우유 속의 벌레가 저의 몸을 근원적으로 망쳐놓았을 지 모른다는 그녀의 비합리적인 고백이 너무도 잘 공감이 되었다. 원래 아이를 잃은 어미란 그런 존재이다. 온갖 미신과 비합리와 맹신 속에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세우게 되는, 못나고도 슬픈 존재 말이다. 짧은 단편을 지나간 고통과 함께 읽어서일까. 저자가 등단 후 4년 간 쓴 글을 곱게 갈무리하여 소설집으로 출간한 이 소설집에서 역시나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작품은 역시나 일전에 읽고 재독하게 된 '바우어의 정원'이었지만, 그 작품 외에도 인상적인 글들이 아주 많았다. 


단편집 말미에 수록된 작품 해설서를 보니 저자의 작품이 자기 정체성과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자기 서사, 타자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불편함을 직시하는 용기를 드러낸 작품이란 표현이 직간접적으로 반복되던데, 나도 일정 부분 공감하게 되었다. 저자의 글은 결코 쉽고 술술 읽히지 않는다. 작중 화자들은 어딘가 꼬여있는 느낌이다.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곧고 다정하지 않다. 상처 입은 과거에 여즉 붙들려 있거나 혹은 풀리지 않은 욕망을 숨기고 있거나, 혹은 아직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까닭에, 조금씩 삐딱하게 사회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흡사 인생의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관찰자인 조연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글 같다는 인상이 들었달까. 그렇기에 작중 인물이 그려내는 세상은, 그 세상에서 나름의 가치를 실현하며 반듯하게 서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한 감각을 자아낸다. 하지만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이어지는 우리네 삶을 반영하듯, 저자의 작중 세계가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삶 그 자체의 투영이란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이기도 한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저자의 글은 낯선 감각을 자아낸다. 그저 생경할 뿐더러 어떤 의미로는 이상하기도 한, 그래서 나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글들이랄까. 하지만 반듯하지 않으면 어떠하고, 익숙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쉬운 인물이 나오는 글이 아니라 이해가 안 되지만 한 번쯤 이해해보고 싶은 인물들이 나오는 글이 독자의 읽기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신형철 평론가님의 발언에 나도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글이 가진 이색적인 감각은, 한 번쯤 경험해보고 내 것으로 끌어안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이들 속에서 내 삶을 반추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그녀가 제시하는 불편함은 깊은 사유와 통찰의 기회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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