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도
유호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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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현 작가님의 『천사도』는 가상의 법률과 제도가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그리는 정치범죄판타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강력범죄자의 거주의 자유를 박탈하여 ‘천사도’로 불리는 섬에 격리하는 법제인 천사도법이라는 가상의 법률을 중심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해당 법은 실제로 2005년 플로리다에서 제정된 ‘제시카법’을 모티브로 하였다. 제시카법은 아동 성범죄를 계기로 만들어진 법률로, 성범죄자의 경우 초범 시 최소 25년 형, 재범 시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출소 후 위치추적장치 착용을 의무화한 법이다.  


저자는 이러한 법제를 토대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범죄자의 격리가 인권 보호 차원에서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범죄자를 사회에서 다시 수용할 경우, 재범 발생 위험과 잠재적 범죄 가능성을 국민이 사회적 비용으로 떠안는 것이 온당한가? 헌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명시하지만, 그 기본권은 범죄자와 일반 국민을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논쟁은 첨예한 의견 대립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독자로서 나는 제시카법과 같은 피해자의 이름을 따온 사후 법제가 마냥 달갑지 않음을 밝히고 싶다. 상징성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법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피해자 가족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강력한 범죄 사건에서 살아남은 가해자의 위치와 권리만 지나치게 보호되고, 피해자와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아픔은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죽은 제시카의 이름이 아닌, 그녀를 죽인 범죄자의 이름이 기억되어야 할 터인데, 법을 통해 되풀이되는 피해자의 기억이 그 가족들에게 또 어떤 고통을 안겨줄지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저자는 작품을 시작한다. 소설 속 천사도법은 한 대선 후보의 유세 전략에서 출발한다. 해당 후보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 인사로, 가해자를 피해자 주거지 근처에 치료 목적으로 석방하여 재범을 방관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죽음을 정치적 선전 용도로 이용한다. 심지어 자신의 딸이 연루된 범죄에서는 무고한 호텔 직원을 억울한 범인으로 몰아 처벌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양산하며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임에도 참혹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작품이 묘사하는 어두운 사회적, 정치적 비리는 우리 현실에서도 마치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비리를 떠올리게 하여 더 진한 괴로움을 준다.  


저자는 독자들의 울분을 헤아리며 권력형 악의 축이었던 대통령을 그가 만든 범죄자의 섬, 천사도로 불러들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한다.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책 속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들의 복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라는 점이 또 한 번 울림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현실에서도 법이 온전히 정의를 구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은 속도감 있고 흡입력이 강하며, 선과 악의 구도 또한 명확하다. 독자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감정이입할 대상이 뚜렷해진다. 많은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거나 수감되는 과정은 가슴 아프지만,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이 지혜롭게 생존 및 복수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법 위에 있는 법꾸라지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기 위해 피해자들이 법밖에서 자신의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은 씁쓸하지만, 이러한 피해자의 끈질긴 노력은 현실에서도 저항과 정의 실현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은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한 복수극으로, 책을 펼치는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동시에 우리 현실에서 법과 인권, 정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며, 분노를 넘어 피해자들이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만든다. 독자들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천사도』는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정치범죄판타지 소설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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