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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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들의 글쓰기 문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책을 다룬 대중 과학사 도서이다. 풍부하게 수록된 사진 자료는 독자로 하여금 당대의 책을 실제로 구경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제공하며, 흥미롭고 가독성 높은 문체로 풀어낸 글과 책의 탄생이 과학에 미친 영향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 책은 과학과 글의 만남이 인류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유익한 작품으로,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올 초 을유문화사의 SNS 홍보를 통해서였다. 발간 전 소개 글만으로도 큰 흥미를 느꼈던 터라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이 '가장 지혜로운 책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구매하였다. 더욱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은 며칠 후 을유문화사 서평단에 선정된 일이었다. 덕분에 내가 산 책은 책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선물로 전달할 수 있어 한층 더 기뻤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고대의 과학 기록을 정리하였고, 2장은 출판기의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3장은 19세기의 과학 고전들을 다루며, 4장은 20세기를 과학 혁명의 시기로 바라보고, 마지막 제5장은 1980년대 이후의 과학적 동향을 출간된 책들을 통해 가늠해 보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과학적 사유와 발견이 사회적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록이라는 소통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특히 흥미를 느낀 부분은 현대 유명 학자들조차도 시대적 편견, 종교적 및 정치적 억압, 성적 차별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글로 남기기 위해 투쟁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과학은 일반 대중에게 여전히 어려운 주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과학 교육이 보편화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중이 과학에 접근하기 쉬워진 것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인류를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을 넓게 접하려고 노력해왔지만, 그동안 내가 읽은 과학책들은 인공지능, 유전자, 천문학, 생물 진화, 뇌과학 등 특정 주제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학자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개념, 양자역학 등 새로운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저자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을 추가로 구매하기도 했다. 현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언제든 책을 집필한 저자와 영상이나 강연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이전에 미세아교세포에 관한 뇌과학 책을 읽고 해당 연구의 선구자인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큰 지적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이 글을 쓰고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과학 문외한이지만 흥미를 갖고자 하는 대중의 비중을 확대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지식이 책과 글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인류는 매번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모든 것을 발명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책으로 기록하고 후대에 전파한 덕택에 과학적 지식은 오늘날 소수의 특권층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되었다. 현대처럼 지식의 접근성이 높은 시대에서는 데이터 공유를 통한 오픈 액세스가 지식의 민주화에 필수적이라는 논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와 지적 자산에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받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 문제로 비난을 받았던 허젠쿠이 교수가 불법 의료 행위죄로 처벌받은 사건은 그러한 윤리적 책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처럼 과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소통시키는 행위는 현대적 요구를 수행하는 주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로서 나는 과학이 가지는 두 가지 사명을 진지하게 고찰해볼 기회를 얻었다. '발견으로서의 과학'은 과학 자체의 탐구와 혁신을 말하고, '전달로서의 과학'은 과학의 결과물을 대중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명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인류의 지적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의 역사와 과학적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이 충분한 재미와 지적 만족을 제공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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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성적이 오르는 쿼드스터디 - 나에게 꼭 맞는 학습 성향별 공부 가이드
김청유 지음 / 유노라이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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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 코칭전문가 김청유님의 <무조건 성적이 오르는쿼드스터디>는 학습자의 인지와 성향을 기반으로 학습 성향을 네 가지로 구분하고, 각 유형에 적합한 맞춤형 공부 전략을 제시하는 멘토링 교육서이다. 




나는 10년이 넘는 사교육 강사로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니 학습법을 설명한 공부법 책과 각종 합격 수기와 수험기를 기록한 에세이에는 늘 시선이 가게 된다. 수많은 공부법 책을 읽었으나,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이 책은 저자 한정의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제각각이다. 이 책의 저자가 수많은 예시로 강조한 바와 같이, 부모 자식간에도, 형제 간에도 학습 유형은 차이가 날 수 있다. 모두에게 효율적인 공부법 같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지극히 타당할 것이다. 




저자는 글에 인지 및 성향을 구분짓기 위한 검사 링크를 QR코드로 삽입해두었다. 삽입된 코드 속 질문은 교육자인 내 기준에는 질문의 의도가 명백하게 보여서 의도적으로 결과를 조작할 가능성이 적잖아 보였을 뿐더러, 질문 자체가 모호한 경우도 더러 있어 메타 인지가 낮을 경우 판단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내가 겪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습 과부화와 빡빡한 일정 때문에 살짝 번아웃이 온 상태이거나, 오랫동안 거듭된 학습지체 때문에 더이상 공사교육에 신의를 잃은 채 무관심을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길고 복잡하고 지나치게 상세한 설문이 오히려 독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판단도 들었다. 




간혹 원하는 장래희망은 또렷하나, 스스로 어떤 학습스타일을 갖고 있고 어떤 점이 강점이고, 또 어떤 점이 약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학생들에게는, 저자가 제시하듯 거칠게나마 큰 공부의 유형을 정하고 그에 맞는 지도 방식으로 학습을 유도하는 편이 실질적으로 성적 향상에 큰 보탬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성향에 맞는 맞춤형 공부가 중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의 스타일에 딱 맞는 지도가 행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 역시 대형 학원에 있을 때는 획일된 교재와 정해진 진도 스케줄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기를 강요당한 바가 많고, 수업의 평균적인 난이도와 맞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추가 교재를 선정하는 것을 꺼리는 학원장들도 많았다. 학생과의 지도 방침에 있어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소규모 입시학원으로 이동하여 수업에 관한 재량권이 넓어져도, 정해진 수업 스케줄 안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늘 존재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수업 이후에 개인적으로 따로 봐주다가, 그럴 거면 과외를 하라, 는 비난을 받은 바도 여러 번 있었으며, 학부모에게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항의 전화를 받은 적도 다반사였다.




교사가 학생의 맞춤형 돌봄을 원한다 하여도 그것은 학생 본인 희망, 학부모의 이해, 학원의 협력이란 전제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난제라는 점을 나는 내 몸을 부딪쳐 가며 현장에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기에 나는 왜 이 아이에게만 다른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이 책의 출간이 몹시 반가웠다. 




이 책에서는 학습자의 학습 유형을, 원칙주의형, 목표지향형, 한 우물형, 전체주의형 네 가지로 구분한다. 학원에서는 대체로 학습자를 원칙주의형이라고 생각하거나(기초학력이 낮은 경우) 목표지향형이라 상정(학과성적이 좋을 경우)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나는 전체주의형이었다. 실제로 그래서 나는 친구 따라 종합 학원을 다녔을 때보다 학원을 다 관두고 독서실에서 자기주도형으로 스스로 개념을 손으로 필기하며 정리하고 공부할 때 훨씬 더 성적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모든 학생들에게 학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문제집이나 강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저자가 언급하였듯이 어쩌면 학습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그의 학습 성향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기반한 학습 기반 조성과 학습자에 대한 신뢰일지도 모르겠다. 




그 점을 나는 이 책의 후미에 실린 학습자들의 후기를 읽으며 깨달았다. 아이들은 제각각의 개성을 지녔고, 내 아이는 느리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인교육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현행 교육 시스템에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각형 모양의 아이를 애써 원형틀 안에 구겨넣기 보다는, 허준이 교수님의 사례처럼 학습자의 스타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공감하고 응원하는 문화가 이 사회에 퍼져나가기를,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학습자 본인과 그를 지원하는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유대 형성의 첫 걸음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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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
윌리엄 하웰.테리 모 지음, 백창재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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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 서평


2025년 6월 19일 초판이 발간된 윌리엄 하웰과 테리 모의 《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는 부정적 포퓰리즘 현상의 원인을 정부의 무능으로 진단하며, 해결책으로 강한 대통령제와 적절한 권력 분립을 갖춘 정부 모델을 제시한 책이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분석한 내용은 흥미로웠으며, 이와 같은 논의의 시의성이 한국 정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다. 특히 한국에서도 최근 정부 무능 논란과 정치적 파동을 겪어왔기에,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에 관한 논의에 더욱 관심이 커졌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 위기’라는 내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대통령에게 입법과 예산 주도권을 부여하면서도 사면권과 인사권을 제한하고, 정보기관 통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강력하지만 민주적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는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주장에는 미국 정치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미국은 대통령 권력이 약하기 때문에 정부의 무능이 악화되고, 그로 인한 국민의 불신이 포퓰리즘적 리더를 등장시키는 기제가 되었다. 반면 한국은 오래도록 강한 대통령제 하에 운영돼 왔기 때문에 이 처방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이미 대통령 중심의 행정입법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국회는 사실상 정부 입법의 통과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 구조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대통령 권력 부족보다는 구조적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정치 체제를 분석하며, 저자들의 제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친일 자본과 재계, 언론, 그리고 사법·경찰 권력이 결합한 기득권 동맹이 정부와 민주적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위기는 단순히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기득권의 권력 구조가 민주적 제도를 훼손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에 가깝다.  


한국 정치의 흐름을 돌아보면, 유능한 진보 정권은 기득권에게 체제 위협으로 간주된다. 그 결과 언론, 사법, 경제 권력이 결탁하여 정권을 무능하다는 프레임에 가두고 마비시킨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군사 독재, 권위주의적 통치, 부정적 포퓰리즘 리더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장면 정부의 붕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의 권력 마비를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최근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계엄령 사태에서는 부정적 포퓰리즘의 극단적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권 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구조의 병리적 복원력이 한국 민주주의의 체질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히 주장하건대, 한국 사회에 필요한 민주주의 개혁은 강한 대통령제가 아니라, 기득권의 비민주적 연합을 해체하는 데 있다. 이를 기반으로 아래와 같은 개선책을 고민해보았다. 첫째, 검찰의 기소권을 경찰, 공정위, 특검 등 다양한 기관에 분산시키고, 개방형 인사제도를 도입하여 검찰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언론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공재 지표를 발행하고 민간·개인 채널을 활성화하며, 대관 로비를 감시하는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셋째, 사법부에 개방형 인사 제도를 도입하고 재판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확대하며, 배심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정권과 제도의 분리를 보장하며 정부의 정책 지속성을 확보할 독립 기구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통해 보다 유능한 정부가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정부의 무능 자체라기보다, 유능한 정부 조차 실패하게 만드는 기득권 카르텔과 중층적 권력 구조에 있다. 이 책은 부정적 포퓰리즘 리더의 등장이라는 현대 정치의 위기를 탐구하며, 한국 정치 구조를 성찰할 중요한 기회를 선사한다. 민주주의는 나와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관심과 참여가 수많은 문제를 극복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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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당신을 위한 자존감 워크북
김기현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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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현 상담사님의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당신을 위한 자존감 워크북>은 사회초년생이 사내 관계 속에서 직면하는 자존감 저하와 번아웃에 대한 해결책을 심리학적 이론에 기초하여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쓰기 위한 책이다. 텍스트힙이 사회적 현상으로 퍼져 나가며 요즘 한창 필사용 책의 발간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필사노트를 구매했을지언정, 필사용으로 출간된 책은 구매한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의 구성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 책은 전체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출근이 싫은 마음 이면에 있는 관계의 고통과 문제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존감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부는 저자의 집필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파트로, 7단계에 걸쳐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실습을 워크북 형식으로 차분히 구성하였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 안의 비판자를 만나고, 욕구의 좌절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한 뒤, 성공 경험과 자기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각 단계가 세세하게 나뉘어진 워크시트로 제공된다.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될 법한 실습 위주의 책을 눈앞에 두고,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책을 독자로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저자의 말처럼 처음은 읽고, 그 다음에는 쓰는 책으로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 무너지거나 상처 받는 일은 다반사인데, 일회성으로 쓰고 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워크시트의 각 단계마다 커다란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하루에 한 단계씩, 퇴근 후 하루를 돌아보면서 적어보기로 했다. 쓰다 보니 한 단계씩 진행해도, 평균적으로 20-30분은 꼬박 걸려서 하루에 여러 단계씩 진행하는 건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루에 한 단계씩 분량을 줄이되, 대신 글을 쓰면서 내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의식을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나면 다이어리에 칭찬과 격려의 짤막한 글을 남기곤 했다. 그렇게 하나씩 진행하여 오늘이 벌써 4일째이다. 


여태까지 진행한 단계 중에서는 내면의 비판자를 관찰하는 어제의 워크시트가 내게 가장 유용했던 것 같아서 잠시 그 내용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는 굉장히 욕심이 많다. 욕심은 많은 반면, 체력과 정리력은 부족한 편이라 물건도 넘쳐나고, 일거리도 늘 넘쳐서 툭하면 밤을 새며 가뜩이나 위태로운 건강을 해치기 다반사다. 관심 분야도 넓고, 올해는 이사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상반기를 몇 번이나 집을 옮겨다니는 와중에 비루해진 체력을 다 깎아 먹어서, 원래 계획했던 장기 계획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는 못해서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계속 나를 몰아치다가 상반기 내내 누적된 피로로 감기 몸살과 번아웃에 시달리던 터라, 나는 내심 이 책의 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받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펼쳐들어 읽으며 하루에 한 장씩 워크북의 내용을 적어내려가다가, 나는 3단계 내면의 비판자 앞에서 한참 주저했다. 원하는 바를 다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과, 더이상은 무리라고 속삭이는 자아의 충돌을 줄곧 외면해왔으나, 더이상은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욕심 사납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내면의 비판자와 마주 섰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자꾸 만들어내는 나를, 내면의 비판자는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다. 욕심부리고, 체력과 시간, 능력이 부족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자의 말에 반론의 여지는 없었지만, 마음 속에 가득찬 꿈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크북의 질문에 하나씩 답하면서 나는 이 비판이, 내 능력을 섣불리 재단했던 내 유년 시절과 지금의 가까운 이들 때문에 형성된 내 상처입은 반발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면의 비판자는, 계속 내가 무리하며 건강을 해치고 삶의 질을 낮추다가 그들의 예단이 진실이 되어, 내가 또다시 상처입고 주저앉을까 봐 걱정해서 나를 적당선에서 만류하고 싶어 했던 고마운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안의 적이라고 여긴 비판의 목소리를 깊이 있게 통찰하며, 나는 말은 험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친구 한 명을 얻은 기분이었다. 워크북을 작성하는 동안 나는 내게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고 느꼈다. 긍정과 자기 돌봄의 감각을 체험하고 나니 오늘 밤, 내일 밤, 그리고 내가 또 상처받는 어떤 밤에 써내려갈 나머지 돌봄의 워크북이 몹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워크북을 작성하면서 나는 자존감 회복은 결심만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습관이 되어야 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직장이 싫고 힘든 모든 현대인에게, 일이 버거운 게 아니라 사람이 힘겨운 이들에게, 나처럼 오랜 번아웃에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지쳐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좀처럼 자신 안에 있는 냉혹한 비판자와 화해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짧고 강한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읽기 위한 책에서 쓰기 위한 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 책은 독자의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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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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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작가님의 <기묘한 한국사>는 우리 역사 속에 가려졌거나 흐릿하게 다뤄진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탐구한 책이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석이 분분한 유물, 특이한 인물, 독특한 관습, 그리고 미스터리한 음모론까지 다양한 역사적 주제를 다룬다.이 책은 기존의 정사 위주 역사 교육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흥미롭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독자로 하여금 역사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기회를 준다.

 

첫 번째 장인 한국사 속 수수께끼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물과 사료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세한도가 일본을 거쳐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이나 첨성대의 구조에 관련된 비밀은 매우 흥미롭고 뜻깊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신묘년에 대한 기록과 그 해석의 차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유물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읽으며,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내 취미와 연결해 생각해보니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은 조선 시대의 무덤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의 송사의 대다수가 산송과 관련된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무덤은 단순한 장소 이상으로 우리 민족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세종의 묘자리를 옮긴 이야기와 조선을 넘어 400년이나 이어진 산송은 단순한 집안의 분쟁을 넘어선 사회적, 문화적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농경 민족으로서 땅에 대한 애착이 깊은 우리에게, 잠재적 생활 터전이 될 수도 있는 명당을 조상의 영혼을 위해 기꺼이 양보하는 관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 산천을 지나다 관리되지 않은 묘자리를 마주할 때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고민했을 조상의 마음과 버려진 상태를 보는 후손의 마음이 어떨지 곱씹어보게 된다.

 

세 번째 장에서는 독립운동과 근대사를 다룬다.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비롯해 익숙한 독립운동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우장춘 박사의 부친에 대한 내용이었다. 을미사변을 주도했던 친일파가 박사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걸은 우장춘 박사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맞물려 실로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이런 사례를 통해, 실제 역사가 영화보다도 극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네 번째 장에서는 한국사 속 음모론을 탐구한다. 영조의 경종 독살설이나 정철의 정여립 모반 사건처럼 익숙한 음모론도 등장하지만, 훈요십조의 호남 차별 조항을 둘러싼 논란이나 왕건의 생전 행보를 대조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왕건의 주요 측근이 호남 출신이었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훈요십조가 조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논란까지 깊이 있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조선 왕조가 관서 지역을 역차별한 사례를 떠올리며, 조선과 고려 모두 왕권을 보장했던 배경 세력이 역차별을 받은 기묘한 아이러니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궁녀와 내시, 역관과 화공 등 궁궐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특히 내시와 환관이 다른 개념임을 알게 된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고려 시대에는 내시가 신분이 낮은 이가 아닌 관직의 일종이었다는 것, 또한 이들이 단순히 궁궐의 하인이 아니라 고학력 전문직으로 왕권 강화에 기여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들의 삶과 희생에 대해 이렇게나마 알게 된 점이 개인적으로 값진 발견이었다고 본다.

 

이 책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려지고 흐릿하게 기록된 이면을 밝혀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우리 역사에 대한 신선한 흥미와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역사를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라 여겨 멀리했던 이들에게도 역사에 대한 재미와 깊이를 모두 잡은 책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기에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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