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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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들의 글쓰기 문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책을 다룬 대중 과학사 도서이다. 풍부하게 수록된 사진 자료는 독자로 하여금 당대의 책을 실제로 구경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제공하며, 흥미롭고 가독성 높은 문체로 풀어낸 글과 책의 탄생이 과학에 미친 영향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 책은 과학과 글의 만남이 인류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유익한 작품으로,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올 초 을유문화사의 SNS 홍보를 통해서였다. 발간 전 소개 글만으로도 큰 흥미를 느꼈던 터라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이 '가장 지혜로운 책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구매하였다. 더욱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은 며칠 후 을유문화사 서평단에 선정된 일이었다. 덕분에 내가 산 책은 책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선물로 전달할 수 있어 한층 더 기뻤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고대의 과학 기록을 정리하였고, 2장은 출판기의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3장은 19세기의 과학 고전들을 다루며, 4장은 20세기를 과학 혁명의 시기로 바라보고, 마지막 제5장은 1980년대 이후의 과학적 동향을 출간된 책들을 통해 가늠해 보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과학적 사유와 발견이 사회적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록이라는 소통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특히 흥미를 느낀 부분은 현대 유명 학자들조차도 시대적 편견, 종교적 및 정치적 억압, 성적 차별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글로 남기기 위해 투쟁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과학은 일반 대중에게 여전히 어려운 주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과학 교육이 보편화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중이 과학에 접근하기 쉬워진 것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인류를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을 넓게 접하려고 노력해왔지만, 그동안 내가 읽은 과학책들은 인공지능, 유전자, 천문학, 생물 진화, 뇌과학 등 특정 주제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학자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개념, 양자역학 등 새로운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저자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을 추가로 구매하기도 했다. 현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언제든 책을 집필한 저자와 영상이나 강연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이전에 미세아교세포에 관한 뇌과학 책을 읽고 해당 연구의 선구자인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큰 지적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이 글을 쓰고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과학 문외한이지만 흥미를 갖고자 하는 대중의 비중을 확대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지식이 책과 글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인류는 매번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모든 것을 발명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책으로 기록하고 후대에 전파한 덕택에 과학적 지식은 오늘날 소수의 특권층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되었다. 현대처럼 지식의 접근성이 높은 시대에서는 데이터 공유를 통한 오픈 액세스가 지식의 민주화에 필수적이라는 논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와 지적 자산에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받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 문제로 비난을 받았던 허젠쿠이 교수가 불법 의료 행위죄로 처벌받은 사건은 그러한 윤리적 책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처럼 과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소통시키는 행위는 현대적 요구를 수행하는 주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로서 나는 과학이 가지는 두 가지 사명을 진지하게 고찰해볼 기회를 얻었다. '발견으로서의 과학'은 과학 자체의 탐구와 혁신을 말하고, '전달로서의 과학'은 과학의 결과물을 대중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명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인류의 지적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의 역사와 과학적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이 충분한 재미와 지적 만족을 제공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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