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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
윌리엄 하웰.테리 모 지음, 백창재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5년 6월
평점 :
《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 서평
2025년 6월 19일 초판이 발간된 윌리엄 하웰과 테리 모의 《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는 부정적 포퓰리즘 현상의 원인을 정부의 무능으로 진단하며, 해결책으로 강한 대통령제와 적절한 권력 분립을 갖춘 정부 모델을 제시한 책이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분석한 내용은 흥미로웠으며, 이와 같은 논의의 시의성이 한국 정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다. 특히 한국에서도 최근 정부 무능 논란과 정치적 파동을 겪어왔기에,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에 관한 논의에 더욱 관심이 커졌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 위기’라는 내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대통령에게 입법과 예산 주도권을 부여하면서도 사면권과 인사권을 제한하고, 정보기관 통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강력하지만 민주적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는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주장에는 미국 정치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미국은 대통령 권력이 약하기 때문에 정부의 무능이 악화되고, 그로 인한 국민의 불신이 포퓰리즘적 리더를 등장시키는 기제가 되었다. 반면 한국은 오래도록 강한 대통령제 하에 운영돼 왔기 때문에 이 처방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이미 대통령 중심의 행정입법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국회는 사실상 정부 입법의 통과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 구조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대통령 권력 부족보다는 구조적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정치 체제를 분석하며, 저자들의 제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친일 자본과 재계, 언론, 그리고 사법·경찰 권력이 결합한 기득권 동맹이 정부와 민주적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위기는 단순히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기득권의 권력 구조가 민주적 제도를 훼손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에 가깝다.
한국 정치의 흐름을 돌아보면, 유능한 진보 정권은 기득권에게 체제 위협으로 간주된다. 그 결과 언론, 사법, 경제 권력이 결탁하여 정권을 무능하다는 프레임에 가두고 마비시킨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군사 독재, 권위주의적 통치, 부정적 포퓰리즘 리더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장면 정부의 붕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의 권력 마비를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최근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계엄령 사태에서는 부정적 포퓰리즘의 극단적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권 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구조의 병리적 복원력이 한국 민주주의의 체질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히 주장하건대, 한국 사회에 필요한 민주주의 개혁은 강한 대통령제가 아니라, 기득권의 비민주적 연합을 해체하는 데 있다. 이를 기반으로 아래와 같은 개선책을 고민해보았다. 첫째, 검찰의 기소권을 경찰, 공정위, 특검 등 다양한 기관에 분산시키고, 개방형 인사제도를 도입하여 검찰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언론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공재 지표를 발행하고 민간·개인 채널을 활성화하며, 대관 로비를 감시하는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셋째, 사법부에 개방형 인사 제도를 도입하고 재판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확대하며, 배심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정권과 제도의 분리를 보장하며 정부의 정책 지속성을 확보할 독립 기구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통해 보다 유능한 정부가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정부의 무능 자체라기보다, 유능한 정부 조차 실패하게 만드는 기득권 카르텔과 중층적 권력 구조에 있다. 이 책은 부정적 포퓰리즘 리더의 등장이라는 현대 정치의 위기를 탐구하며, 한국 정치 구조를 성찰할 중요한 기회를 선사한다. 민주주의는 나와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관심과 참여가 수많은 문제를 극복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