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재완 작가님의 <기묘한 한국사>는 우리 역사 속에 가려졌거나 흐릿하게 다뤄진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탐구한 책이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석이 분분한 유물, 특이한 인물, 독특한 관습, 그리고 미스터리한 음모론까지 다양한 역사적 주제를 다룬다.이 책은 기존의 정사 위주 역사 교육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흥미롭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독자로 하여금 역사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기회를 준다.

 

첫 번째 장인 한국사 속 수수께끼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물과 사료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세한도가 일본을 거쳐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이나 첨성대의 구조에 관련된 비밀은 매우 흥미롭고 뜻깊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신묘년에 대한 기록과 그 해석의 차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유물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읽으며,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내 취미와 연결해 생각해보니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은 조선 시대의 무덤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의 송사의 대다수가 산송과 관련된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무덤은 단순한 장소 이상으로 우리 민족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세종의 묘자리를 옮긴 이야기와 조선을 넘어 400년이나 이어진 산송은 단순한 집안의 분쟁을 넘어선 사회적, 문화적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농경 민족으로서 땅에 대한 애착이 깊은 우리에게, 잠재적 생활 터전이 될 수도 있는 명당을 조상의 영혼을 위해 기꺼이 양보하는 관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 산천을 지나다 관리되지 않은 묘자리를 마주할 때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고민했을 조상의 마음과 버려진 상태를 보는 후손의 마음이 어떨지 곱씹어보게 된다.

 

세 번째 장에서는 독립운동과 근대사를 다룬다.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비롯해 익숙한 독립운동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우장춘 박사의 부친에 대한 내용이었다. 을미사변을 주도했던 친일파가 박사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걸은 우장춘 박사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맞물려 실로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이런 사례를 통해, 실제 역사가 영화보다도 극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네 번째 장에서는 한국사 속 음모론을 탐구한다. 영조의 경종 독살설이나 정철의 정여립 모반 사건처럼 익숙한 음모론도 등장하지만, 훈요십조의 호남 차별 조항을 둘러싼 논란이나 왕건의 생전 행보를 대조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왕건의 주요 측근이 호남 출신이었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훈요십조가 조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논란까지 깊이 있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조선 왕조가 관서 지역을 역차별한 사례를 떠올리며, 조선과 고려 모두 왕권을 보장했던 배경 세력이 역차별을 받은 기묘한 아이러니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궁녀와 내시, 역관과 화공 등 궁궐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특히 내시와 환관이 다른 개념임을 알게 된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고려 시대에는 내시가 신분이 낮은 이가 아닌 관직의 일종이었다는 것, 또한 이들이 단순히 궁궐의 하인이 아니라 고학력 전문직으로 왕권 강화에 기여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들의 삶과 희생에 대해 이렇게나마 알게 된 점이 개인적으로 값진 발견이었다고 본다.

 

이 책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려지고 흐릿하게 기록된 이면을 밝혀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우리 역사에 대한 신선한 흥미와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역사를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라 여겨 멀리했던 이들에게도 역사에 대한 재미와 깊이를 모두 잡은 책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기에 강력히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읽은 김주혜 작가님의 <작은 땅의 야수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대하소설이었다. 그래서 이번 신작 <밤새들의 도시>가 출간된다는 광고를 접하고, 기대감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출간 직후부터 이어진 뜨거운 SNS 프로모션을 지켜보면서 읽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지만, 뒤로 미루고 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소설을 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어수선한 심리 상태에서 섣불리 시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들의 도시>는 러시아의 천재 무용수 나탈리아 레오노바(나타샤)와 그녀를 둘러싼 무용수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인물소설이다. 나타샤와 알렉산드르 니쿨린(사샤)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발레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 실감 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레 팬이라면 분명 이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발레라는 예술을 좋아해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배우고, 공연까지 혼자 보러 다닐 만큼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이 작품은 매 순간이 감정이입과 몰입의 연속이었다. 나탈리아가 날아오를 때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중력을 거스르는 기분이 들었고, 무대 조명 아래에서 환희의 순간을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사랑을 느낄 때 나도 그녀와 함께 설렜고, 괴롭힘을 당하며 좌절할 때는 함께 고통에 빠졌다. 심지어 사고와 부상, 그리고 우울의 늪에 빠지는 순간들도 마치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특히 마지막 무대에서 나탈리아가 지젤을 공연하기 위해 나아가는 장면. 드라마틱한 부상을 딛고, 그녀와 환상의 파트너가 이루어낸 그 무대는 나에게 심리적 절정을 선사하며 눈물까지 나오게 했다. 나탈리아의 큰 고별 무대를 관통하며, 나는 이 작품 속 그녀의 삶에 온전히 기대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환희만 남긴 작품이 아니었다. 저자가 언급했듯, 아무리 위대한 예술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하지만 지젤 공연이 절정에서 끝이 나더라도, 나탈리아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진다. 나타샤가 마린스키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도약하는 장면은 우리 삶이 하나의 예술처럼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작품은 단순히 발레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인간 삶과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낸 고도의 서사적 예술이다.

 

이성복 작가님는 문학은 인생이라는 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꾸는 또 다른 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문학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나의 문학 읽기는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 같은 것이다. <밤새들의 도시>를 통해 나는 예술, 인간관계, 그리고 욕망이 얼마나 날카롭게 얽혀 있는지 깨달았다. 나탈리아처럼 뛰어난 천재라 해도, 그녀가 가진 감정과 관계의 갈등은 결국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나타샤 주위의 인물들은 사샤를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나쁜 남자라고 여겼지만, 결국 나타샤는 그를 자신의 사랑이자 영혼의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나는 그녀가 사샤를 용서한 장면에서 그녀의 감정을 절절히 공감했다. 나 역시 사샤가 그녀를 사랑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사랑은 서로를 태워버릴 만큼 강렬하더라도, 끝내 함께할 수 없는 관계로 남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를 살라내며 자기 자신까지 태우는 불길 같았다. 반면, 매그너스와의 관계는 서로를 감싸 안는 따스한 불꽃처럼 오래도록 조화를 이루며 타오를 수 있는 안정적인 사랑이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사샤를 보내고 그의 행복을 빌었듯, 나 역시 이 등장인물들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고 싶다.

 

저자의 전작이 민족적 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면, 이번 신작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밤새들의 도시>는 단순히 예술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바로 나탈리아가 발레라는 예술을 통해 자신 안에 깃든 영혼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우리가 각자 가진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놓고 싶지 않은 꿈과 도전을 위해 나탈리아의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서사는 천재 예술가의 삶이기에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바로 그녀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울림이 만들어진다. 발레라는 낯선 세계를 배경으로 삼고는 있지만, 그 무대 안팎에서 무너지고 성장하는 나탈리아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삶에 연결되는 보편적 진리가 있다.

 

이 책은 단지 발레 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독자가 그녀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그녀들과 함께 날아오르는 동안 발레의 낯선 용어조차 마법의 주문처럼 마음속에 스며든다. 나는 이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도
유호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호현 작가님의 『천사도』는 가상의 법률과 제도가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그리는 정치범죄판타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강력범죄자의 거주의 자유를 박탈하여 ‘천사도’로 불리는 섬에 격리하는 법제인 천사도법이라는 가상의 법률을 중심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해당 법은 실제로 2005년 플로리다에서 제정된 ‘제시카법’을 모티브로 하였다. 제시카법은 아동 성범죄를 계기로 만들어진 법률로, 성범죄자의 경우 초범 시 최소 25년 형, 재범 시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출소 후 위치추적장치 착용을 의무화한 법이다.  


저자는 이러한 법제를 토대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범죄자의 격리가 인권 보호 차원에서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범죄자를 사회에서 다시 수용할 경우, 재범 발생 위험과 잠재적 범죄 가능성을 국민이 사회적 비용으로 떠안는 것이 온당한가? 헌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명시하지만, 그 기본권은 범죄자와 일반 국민을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논쟁은 첨예한 의견 대립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독자로서 나는 제시카법과 같은 피해자의 이름을 따온 사후 법제가 마냥 달갑지 않음을 밝히고 싶다. 상징성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법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피해자 가족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강력한 범죄 사건에서 살아남은 가해자의 위치와 권리만 지나치게 보호되고, 피해자와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아픔은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죽은 제시카의 이름이 아닌, 그녀를 죽인 범죄자의 이름이 기억되어야 할 터인데, 법을 통해 되풀이되는 피해자의 기억이 그 가족들에게 또 어떤 고통을 안겨줄지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저자는 작품을 시작한다. 소설 속 천사도법은 한 대선 후보의 유세 전략에서 출발한다. 해당 후보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 인사로, 가해자를 피해자 주거지 근처에 치료 목적으로 석방하여 재범을 방관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죽음을 정치적 선전 용도로 이용한다. 심지어 자신의 딸이 연루된 범죄에서는 무고한 호텔 직원을 억울한 범인으로 몰아 처벌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양산하며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임에도 참혹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작품이 묘사하는 어두운 사회적, 정치적 비리는 우리 현실에서도 마치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비리를 떠올리게 하여 더 진한 괴로움을 준다.  


저자는 독자들의 울분을 헤아리며 권력형 악의 축이었던 대통령을 그가 만든 범죄자의 섬, 천사도로 불러들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한다.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책 속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들의 복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라는 점이 또 한 번 울림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현실에서도 법이 온전히 정의를 구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은 속도감 있고 흡입력이 강하며, 선과 악의 구도 또한 명확하다. 독자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감정이입할 대상이 뚜렷해진다. 많은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거나 수감되는 과정은 가슴 아프지만,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이 지혜롭게 생존 및 복수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법 위에 있는 법꾸라지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기 위해 피해자들이 법밖에서 자신의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은 씁쓸하지만, 이러한 피해자의 끈질긴 노력은 현실에서도 저항과 정의 실현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은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한 복수극으로, 책을 펼치는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동시에 우리 현실에서 법과 인권, 정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며, 분노를 넘어 피해자들이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만든다. 독자들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천사도』는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정치범죄판타지 소설로 추천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소설로,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된 전직 CEO 윌과 그의 간병인으로 취직한 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윌은 까칠하고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반면, 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발랄하고 따뜻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삶과 죽음,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집중적 탐구를 가능케 하며, 동시에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감동과 슬픔을 전달한다.


소설의 초반부는 주로 두 주인공의 관계 형성과 감정의 변화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루와 윌의 관계는 처음에는 대립적이지만 점점 유대감을 형성하며 발전한다. 이 관계는 로맨스 장르에서 익숙한 공식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특히 두 인물의 설정과 관계성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설렘과 기대를 선사한다. 이러한 익숙함은 작품의 초반부를 읽는 데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하며, 독자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중반부 이후에 드러난다. 윌과 루의 감정이 깊어지는 동안, 윌은 자신이 결정한 안락사 선택을 굽히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결정은 루와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다. 


특히 윌이 루에게 "당신을 사랑하지만 내게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소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백은 루에게 큰 좌절과 슬픔을 안겨주며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감정적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로맨스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는 사랑과 생존의 희망적 전개와는 달리,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여준다.


작품은 이러한 윌의 결정을 통해 로맨스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삶을 사랑했던 윌이 생리 현상 하나 제어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느낄 절망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부분은 단순한 로맨스를 초월한 휴먼 드라마로 느껴진다. 윌의 선택은 독자에게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신중한 메시지는 소설을 통속적인 감동 이상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윌은 루에게 "살아요, 루"라는 당부를 남긴다. 이는 윌에게 마음을 다했던 루가 그의 죽음을 직면하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루는 윌과의 만남을 통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경험했고,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받는다. 이러한 결말은 단순한 개인적 사랑의 서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생존과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통속적인 로맨스의 전형성을 활용하면서도 파격적인 결말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나눈 사랑과 감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오늘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생명력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품은 예측 가능한 전통적 전개 방식과 충격적 결말 사이의 균형을 통해 독자를 끌어들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에 따라, 이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할 만한 가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쓰는 내 인생의 페이지 - 4050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열 가지 이야기
권경애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쓰는 내 인생의 페이지는 중년 세대를 위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생의 2막을 맞이하기까지의 과거를 성찰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제2의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보내고 있는지를 열 명의 저자가 진솔한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은 각 저자가 걸어온 다양한 삶의 행로에서 얻은 통찰을 담았으며, 직장에서의 은퇴, 재취업, 건강 악화, 가족 문제, 그리고 제2의 꿈과 도전 등 실제로 우리 사회의 중년층이 직면하는 고민들을 가감 없이 다루었다. 저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도전하고 삶을 돌아본 기록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달한다. 이 책은 제2의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내게도 큰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한국에서는 80살이 넘어선지 제법 되었고, 더 이상 60대 은퇴 이후 십 여 년 동안 인생 종막을 준비하는 방식은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 국민 언니 김미경 코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상들보다 영양적으로나 사회적으로 15살은 더 젊다고 말하며, 나이를 단순히 물리적인 숫자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실제로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겉모습으로는 나이를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하곤 한다. 내 시부모님께서도 90대에 가까운 연세이시지만 감사하게도 지금도 정정하시다. 이러한 점에서 4050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부르는 것은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나 역시 스무 살 한철의 공부로 20년 가까이를 살아왔으니, 이제야 내가 걸어보지 않았던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나 참으로 다행이었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이미 안정적인 생계 수단을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이미 올해 초에 일을 관두고 새로운 꿈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야 했지만, 이사 문제로 일이 지연되면서 반년 가까이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키우던 아이들의 투병과 사고로 계획보다 지출이 늘어났고, 반복되는 인테리어와 이사 준비, 취소와 지연이 겹치다 보니 금전적 부담 또한 커진 탓이다. 먹고사는 현실에 발목 잡혀 도전이 미뤄지다 보니 처음 계획했던 일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도 커지고 말았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책에서 저자들은 내게 이렇게 조언하는 것 같았다.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되, 인생의 우선순위를 잃지 말라’고. 내 스스로가 건강하게 바로 서야 가정도 평화로울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나보다 먼저 인생이란 여행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진솔한 조언은 내게 온화한 격려가 되어 가슴을 따뜻하게 적신다. 


책에서는 거창한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이들이 정직하게 얻은 결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책 속에서 보여준 전업 주부, 자영업자, 새로운 자격증을 공부하여 새 사업을 시작한 사람,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가며 젊게 살아가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중년의 삶은 모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중년 이후의 삶은 축소와 소멸이 아닌, 새로운 도약과 재창조의 시기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나에게도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라떼는 말이야’를 반복하는 초라한 삶을 긍정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힘차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현재의 나를 긍정하며 미래의 나를 기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쓰는 내 인생의 페이지>는 그리하여 모든 중년에게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