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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존재란 무엇인가? 최근 몇 달 간 이 문제는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컴퓨터의 가상 세계 속의 존재와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이 세계의 존재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부터 현대의 양자 중력에 이르기까지 과학이 대답해온 '실재(reality)'의
의미에 대해 탐구해가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결론에서 말하는 실재는 참으로 미묘하다.
모든
것이 양자(quantum)들의 네트워크로 되어 있다는 것! 아니, 모든 '것'이 아니다. '물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어있는[空] 공간과 시간조차 양자들의 네트워크가 움직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산물이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마치 물질처럼 만들어지다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나와 같다니, 무(無)와 유(有)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간과 나의 차이를 만드는가? 무엇이 나와 사람들의 차이를 만드는가? 책의 후반부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그 해답으로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정보'란 가능한 상태의 수를 양으로 환원한 것이다. 그 상태의 수가 많을 수록 정보량은 많은 것이다.
사실 일찍이 열역학이나 양자역학으로부터도
'정보'라는 존재가 예고되어 왔다. 그 이유는 정보가 세계의 관계와 연결망, 그리고 상호작용에 관한 미스터리를 풀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다. 이런 상호작용을 무시했던 고전역학에서는 정보의 중요성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양자 중력은 양자역학의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여기서도 또한 정보가 중요하다.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정보'의 상호작용, 그것이 양자들의 네트워크에서 우주의
'존재'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나의 의문에 약간의 해답을 던져주었다. 모든 것이 정보로부터 비롯된다면, 즉 it from
bit라면, 사회 속의 나, 가상 세계 속의 나 등도 모두 하나의 '존재'로서 성립할 수 있다. 그 존재가 실행되는 차원이 다를 뿐
현실과 사회, 가상 사이의 위계는 없다. 나는 그동안 현실의 '나'만이 진정한 존재고, 나머지는 단순한 아바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머지들 또한 하나의 존재이며, 이들이 겹치고 관계를 이루며 '나'라는 존재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여전히 현실 속의 '나'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 속의 내가 자리를 잃는다면
총체적인 '나'는 붕괴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 관계나 컴퓨터에 갖혀 현실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자칫 내가 붕괴해 버릴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