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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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이제서야 클리어했다. 이제는 월클감독으로 우뚝 올라선 봉준호감독의 외할아버지이자 월북작가인 박태원의 한국문학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모더니즘 소설의 효시격에 해당되며 의식의 흐름 기법과 함께 지식인의 일일을 통해 일제강점기 시대의 사회상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문지사에서 현대 문학 100년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고 우리 문학의 고전을 동시대의 작품처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기 위해 기획된 '한국문학전집' 15권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비롯한 박태원 작가의대표 단편 13편을 수록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볼 수 있는 박태원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면,


"190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에 <동명>의 '소년칼럼'에 <달맞이>가 뽑혔으며, 춘원 이광수에게 개인적으로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일본 동경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33년에는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에 반기를 든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5년 첫 장편소설 <청춘송>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1936년에는 <조광>에 <천변풍경>을 연재했다. 1946년에 남로당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했으나, 1948년에는 좌익 인사를 감시, 관리하던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중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53년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취임했으나,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면서 창작 금지 조처를 받았다. 1960년에 창작 금지 조처가 풀려 작가로 복귀하면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였지만 당뇨병으로 인한 안질환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는 등 시련을 겪는 가운데 1977년과 1980년에 <갑오농민전쟁> 1,2부를 출간한 후,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3부가 출간되었다.책임 편집 천정환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현재 서울대, 홍익대 강사저서로는 <근대의 책 읽기-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박태원 소설의 서사 기법에 대한 연구>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근대화의 문제> <계몽주의와 '재미'의 근대화>등이 있음.(소개글 발췌)"


소설집중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는 박태준 작가의 호로 일종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일본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별다른 직업없이 경성 시내를 배회하며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는 지식인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모더니즘 기법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 이외에 단편소설들에서도 박태준 작가 개인의 삶으로 추정되는 소설가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맛깔스럽게 보여준다. 소설의 이야기체가 익숙하지 않지만 워낙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솜씨가 좋아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아울러 각 작품의 기저에 깔려있는 일종의 슬픔도 세련된 지식인의 우울한 단상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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