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나체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가 상당히 난하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니 19세 미만 구독불가로 나오던데 막상 책을 읽고 나면 마케팅 포인트를 그쪽으로 잡았나 쉽기도 하고 조금 이상한 측면은 있었다. 저자는 히가시노 게이치로다. [마티네의 끝에서]를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고 그의 책들을 찾아서 보려고 하던중 중고책을 구입할때 이 소설을 발견하고 일단 구입해뒀던 책이다.


얼마전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며 그가 일본 여행시 만났던 사람들중 낯이 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치로인데 두 분이 상당히 친밀한듯 싶었다. 히가시노가 일본에서 김연수 작가를 대접하며 한국 음식점에 갔던 일을 글로 적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에피소드를 읽으며 히시기노의 소설이 생각나 바로 읽게 됐다.


상당히 얇은 책이지만 임팩트 있게 술술 읽힌다. 평범한 중학교 여교사와 살짝 찌질한 색을 밝히는 남자가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서 만나 서로의 육체와 성에 탐닉하는 이야기다. 여교사는 어떻게 보면 성경험이 별로 없는 순진한 여자였는데 인터넷 닉네임 미치라는 남자를 만나 그녀의 닉네임 미키라는 여자가 점차 대담하게 욕망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시 히가시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리나 상황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었다. 일본에서 괜히 천재작가로 불리는게 아닌듯 싶다. 마티네의 끝에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 소설이었다. 살짝 르포타주 스타일의 문체를 차용해 객관적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방법도 일본 문학에서 자주 보는 스타일이지만 식상하지는 않았다.


주목하고 싶은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치로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면,


˝명문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권두소설로 전재되고, 다음해 같은 작품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 당시 최연소 수상 기록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재림‘이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예리한 시각과 전위적 기법으로 차세대 일본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아쿠타가와 상의 대학 재학생의 수상은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이후 23년 만의 일이었다.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신세대 작가인 그는 1998년 스물셋의 나이에 ‘일식‘으로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할 당시 화려한 한문투 문체와 장대한 문학적 스케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소설하면 흔히 떠올리는 ‘가벼움‘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많은 국내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밝은 문장으로 죽음을, 무거운 문체로 연애를 그릴 순 없냐는 그의 말에서 순문학 작가로의 포부와 자부심이 묻어난다. 

1975년 6월 22일 아이치 현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금각사‘라는 명작을 남긴 미시마 유키오(1925~1970)에 푹 빠져 지내면서 미시마가 책에서 조금이라도 언급한 작가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접한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만, 괴테 등이다. 어린 시절의 독서가 오늘날 그를 소설가로 성장하게 한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 교토 대학 법학부 입학하여 소크라테스에서 자크 데리다에 이르는 정치사상사를 공부했다. 문예창작과의 제도적인 문인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며, 정치사상사를 문학 공부와 병행하는 것이 작가적 성찰을 얻는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문학 교육이 아닌 다른 경험으로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많은 그는 재즈 대담집을 발간하고 건축잡지의 책임편집을 맡는 등 문학 외적인 방면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8년에는 모델 겸 디자이너인 하루나와 결혼했다. 이제는 등단 10년이 넘는 중견작가로, 1993년과 비교해 70% 정도로 규모가 줄어든 일본 순문학 시장에서 소설의 힘을 믿고 소설을 통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며, ‘공감‘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자 한다.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의고체 문장으로 중세 유럽의 한 수도사가 겪는 신비한 체험을 그린 『일식』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再來)‘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일본 열도를 히라노 열풍에 휩싸이게 하며 일본 내에서 4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9년 메이지 시대를 무대로 젊은 시인의 탐미적인 환상을 그려낸 두번째 소설 『달』을 발표한 이후 매스컴과 문단에서 쏟아지는 주목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3년여 동안 침묵을 지키며 집필을 계속해, 2002년 19세기 중엽의 파리를 배경으로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대작 『장송』을 완성한다. 같은 해 특유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본 산문집 『문명의 우울』을, 2003년에는 이윽고 현대 일본으로 작품의 배경을 옮겨 젊은 남녀의 성을 세심한 심리주의적 기법으로 추구하는 등 실험적인 형식의 단편 네 편을 수록한 『센티멘털』(원제:다카세가와)을 발표한다. 

2004년에는 더욱 심화된 의식으로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로지 등 현대사회의 여러 테마를 아홉 편의 단편으로 그려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을, 2006년에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소재로 삼아 현대인의 정체성을 파헤친 『얼굴 없는 나체들』을 연달아 발표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에 심취했던 법학도가 소설가의 길을 걸으며 전혀 다른 스타일의 소설들을 양산하고 있는것 같다. 어쩐지 살짝 탐지적으로 느꼈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영향을 받았구나...아무튼 그의 데뷔작인 일식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얼굴 없는 나체들]은 그의 소설중 살짝 일탈을 겪는 작품인것 같기는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