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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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리스트에 올려놨던 책이었는데 드디어 읽어봤다. 땡겼던만큼 재미있게 빛의 속도로 이틀간에 걸쳐서 가볍게 독파했다. 역시나 너무 재미있게 가슴에 와닿는 장면과 컨셉으로 즐거움을 가져다준 책이다.


저자인 구스미 미사유키는 얼마전 돌아가신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라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고독한 미식가의 정서가 느껴진다. 고독한 고로상이 낮에 목욕 한판하고 근처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정확히 부합한다.


책의 뒷면에 허영만 화백이 이렇게 말했다.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이 몇 있다. 그러다 이 책을 보고 한 가지 추가했다. 바로, 낮탕술 한 잔! 크흐흐흐˝  꼭 은퇴후에 해야되나? 시간되는대로 은퇴전에도 하는게 맞다고 본다. 요즘 사우나를 자주 안가서 그렇지 낮술은 나의 로망이기도 하다. 깔끔하게 몸을 다듬고 시원한 맥주의 맛은 즐겨본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살짝 비밀스러운 쾌락이다.


총 10개의 목욕탕과 10개의 술집이 소개된다. 홋카이도 목욕탕을 빼고 전부 도쿄 인근에 있는 목욕탕으로 보인다. 대부분 전철을 타고 가서 목욕을 즐긴 후, 낮술 한 잔하고 초저녁에 복귀하는 컨셉으로 투어구도가 맞춰져있다. 따라하는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조만간 내 블로그에도 몇 번 포스팅을 해볼 예정이다.


머리말에 깊은 공감이 갔던지라 한 번 적어본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마시는 술은 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밤보다는 몸이 팔팔하기 때문이겠지. 몸도 마음도 원하는, 말하자면 승리의 나발을 부는 술이다. 사람들이 한창 일하는 시간에 마시니 어쩐지 겸연쩍기도 한데, 그런 느낌이 술을 더 맛있게 한다. 아직 할 일이 남았건만 그걸 무시하고 밝은 햇살 아래서 당당히 마셔버리는, 나더러 뭘 어쩌란 말이냐는 식의 통쾌한 기분도 술맛을 돋운다.


마셔도 아직 ‘오늘‘이 남아있다는 시간적 여유로움도 술맛을 풍성하게 한다. 말 그대로 밝은 술이다. 마시고 싶으니가 마신다. 그러니 취기도 명쾌하다. 기분 좋다. 한낮의 술은 어디를 어떻게 뜯어보아도 최고다. 그리고 술에 넘어가기 전에, 술에 무릎을 꿇기 전에 거침없이 돌아가는 것이 이상적이긴 한데. 쩝


밤술은 말이 많다. 피곤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지겨우니까. 마시자고 하니까. 또는 기분 좋은 일이 있으니까. 기념일이니까. 거기 술이 있으니까. 이른바 ‘까술‘이 많다. 좋건 나쁘건 이유를 달고 마신다. 몸도 마음도 기대는 듯한, 어리광을 부리며 빠져버리는 듯한, 말하자면 이쪽에서 애당초 패배를 선언하고 들어가는 술이다.


그러다 결국 ‘취했으니까‘라며 사람에게도 기댄다. 마셔버리면 오늘은 끝이다. 집에 돌아가 꿈속을 헤매며 자는것뿐이다. 끝장으로 향하는 술이다. 노래방에서 한 곡 뽑아본들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술기운과 잠기운이 마구 뒤섞인다. 취한 건지 졸린 건지. 아아, 오늘 반도 술이 나를 집어삼킨다. 모든 것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뭐 그렇게까지 밤술을 비난할 필요도 없겠지만. 어느 모로보나 건강하고 정직하면서 밝은 낮술에 비할 바 아니다.


한낮이라면 술 말고도 목욕탕이 있다. 막 문을 연 목욕탕. 천창에서 밝은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들고, 그 사이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커다란 탕 안에서 몸을 쭉 뻗으면 마음까지 쓰윽 열린다. 높은 천장에 물통 부딪치는 소리가 ‘콩‘ 울린다. 수증기 냄새에 파묻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내자. 시원하게 몸을 씻고 산뜻한 기분으로 나서면, 아직 하늘은 밝다. 이렇게 기분 좋은 일도 없다. 하루를 처음으로 되돌려놓은 듯하다. 오늘을 다시 살아가는 기분. 최고!


그렇다면,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 최고*최고, 그게 바로 낮은 목욕탕과 술이다. 지금 바로 일을 제쳐두고 가장 좋아하는, 혹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목욕탕에 가자. 그리고 그 근처에서 시원하게 한 잔 마셔버리지, 뭐. 암, 그렇고말고. 이히히히˝


머리말에 책의 모든 내용이 실려있다고 보면 된다. 킥킥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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