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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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세계적인 총상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한 법의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의 자서전격인 책이다. 전반부에 이탈리아 이민계의 가정에서 자라나 의학을 배우고 법의학자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를 서술하고 있다. 아버지는 미국 법의학계의 시조새격으로 역시 법의학자로 활동하셨으며 외할아버지도 의사였던지라 자연스럽게 의학을 전공하고 법의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빈센트 디 마이오의 얘기지만 전문 작가인 론 프랜셀이라는 사람이 책을 썼기 때문에 짜임새 있는 구성에 가독성이 좋아 글이 잘 읽힌다. 자신의 얘기는 짤막하게 들려주고 주로 법의학자로 활동하며 겪었던 중요했던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다.


책은 백인 자경단원에게 총을 맞고 사망한 흑인 청소년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당시 흑인 차별의 이슈로 떠올라 정당방위냐 아님 과격한 대응이냐의 문제로 미국 전역이 들썩거렸다고 한다. 결국 총상전문가인 빈센트 박사가 물증으로 사건을 밝혀 잠잠해진 에피소드가 밀도있게 전개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다소 공상적인 법의학의 세계가 아닌 리얼한 현장이 책에서 그려진다. 1982년 텍사스주의 외딴 도시에 소아과 병원이 생기고 세 아이이의 엄마인 패티 매클렐런은 허약한 막내딸 첼시를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았는데 목숨을 잃게 된다. 최초 사인은 돌연사였지만 결국 간호사인 지닌 존스가 주사약에 약물을 넣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뿐만 아니라 전 직장인 대형병원에서도 수십건의 유아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 지닌의 잔여 행각도 드러나게 된다. 사이코 패스인 지닌 존스는 일명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며 미국 연쇄살인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아울러 할리우드에서 벌어진 백만장자이자 천재적인 음악가가 B급 무비의 여왕으로 불렸던 전직 여배우의 살인사건에 대한 공방도 흥미롭게 다뤄진다. 백만장자는 유죄를 판결 받았지만 빈센트는 무죄의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말한다. 오스왈드의 가짜 시신 사건과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고흐의 죽음에 대한 추리도 재미있었다.


죽음의 진실에 대한 공방을 가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법의학은 장르소설에서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다뤄진다. 스카페타 시리즈도 그런 계열의 작품인데 책을 사놓기만 하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김에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학창시절로 돌아가 다시 시험을 보고 혹시나 의대로 진학하게 된다면 법의학자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 ㅎ


˝법의학자는 누군가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다양한 원인들 중에서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죽음의 방식은 의문사다. 그런데 법의학자의 판정은 죽은 사람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교도소에 보낼 수도 있고 무죄가 밝혀지거나 새로운 용의자가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의학자는 죽은 사람의 가족, 친구, 적, 이웃이 무엇을 바라든 편견 없이 사실에 기초한 과학적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가족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사람이 자살을 선택할 만큼 불행했다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차라리 총기 사고나 실족으로 죽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사고사라는 선언을 듣고 죄책감 없이 살아가고 싶어 한다.

때로 법의학자의 말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되기도 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법의학자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진실을 말해야 한다.˝(책소개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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