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일본인들 - 한국 현대사에 그들은 무엇이었나
다테노 아키라 편저, 이정환.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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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기를 거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 그리고 일본인들을 생각함에 있어서는 식민지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터져나온 일본 정치인들의 극우적 발언,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인하여 일본에 대하여 긍정적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일 것이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피해자의 입장과 과거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이나 사죄를 하지 않은 채 우경화에 가속을 하고 있는 가해자의 입장이 서로 중첩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인식이 선악과 흑백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게 아직까지는 엄연히 현실을 규정짓고 그 기저를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그 일본인들>은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었던 일본인 72명에 대해서 각 인물별로 간략하게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그네들이 조선을 연관지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 갔는가에 대하여 그려내고 있다. 72명이나 되는 일본인 개개인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채롭지만 그 면면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나 지향점이 물론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한계를 가졌다는 점(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의 불일치가 대표적인 예)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시기를 살았다고 해서 모두 같은 가치관과 지향점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조선에 대하여 정한론을 주창하고 뿌리깊은 멸시관을 드러내면서 그네들의 식민지화를 합리화한 인물들(사이고 다카모리, 후쿠자와 유키치,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후쿠다 도쿠죠 등)도 있었는가 하면,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과 조선인들에 대해서 그네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세(식민지 통치)와 동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일본인들(후세 다쓰지, 하타다 다카시, 다우치 지즈코, 마쓰이 요시코, 마쓰이 야요리 등)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 대해서 일본인 내부에서도 보는 관점과 접근법이 다양하고도 상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당시를 살던 일본인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편파적인 이미지를 덧씌워서 해석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직까지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길게 드리워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서로 간에 입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감싸안으려 했던 이들(위에서 언급한 후자의 경우)도 적지는 않았으며, 그네들의 행적(이는 학자의 연구성과,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통한 형상화, 적극적인 현장활동 등)을 쉽게 망각한 채 일방적으로 비난 혹은 매도를 해서만은 아니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알아야 하는 법이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일도양단식으로 역사나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편파적으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이 책의 집필자로 들어가 있는 다카사키 소지가 지은 <식민지조선의 일본인들>(역사비평사, 2006)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연구서의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같이 읽으면 서로 보완되는 부분(개항기부터 식민지 시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드나들었던 일본인들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많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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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전쟁
고케츠 아츠시 지음, 박인식 외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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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그 자체가 질서유지, 병사관리, 군기의 철저 등의 수단으로써 적극적으로 자리매김된 것은 천황의 군대를 구성하는 일본군 병사의 정신구조 속에 폭력행사에 대한 과도하기까지 한 공포심과 그 반면에 피폭력의 공포와 불만을 외부로 분출시키려는 충동을 끊임없이 내재화시켜갔다. 말하자면, 억압의 위양委讓 원리가 군대 교육 속에 일관적으로 배양되고 폭력에 의한 억압상태의 연속이 타자에 대한 폭력행위를 통해서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했던 것이다.-161~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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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과거 - media, memory, history -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김경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절판


타자의 역사를 배우는 것만 중요하다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역사를 되풀이해서 배우고 상상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창조적으로 구사하는 힘을 어떻게 몸에 익히도록 할까 하는 점이다.-50쪽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사진을 볼 때 그 영상이 떠올리게 하는 감정에 대해 신중히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 나아가 그러한 영상이 지닌 역사적 의미에 대해 사진가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될 수 있는 한 그 속에 담겨있는 암묵적인 해석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다른 해석의 틀을 적용하면 어떤 해석이 나올 수 있는지를 비교해서 검토하는 일도 요긴하다.-138쪽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든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이든 '종군위안부'든, 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주의자가 저지른 원주민 학살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든, 말살의 역사학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2단계 전략을 되풀이하여 전개한다. 우선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원인, 결과라는 전체적 차원으로부터 논점을 분리하고, 논의를 오로지 편협한 정의의 문제로 몰아넣는다. 그 다음 아주 적은 수의 증거만 뽑아내서 집요하게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린다.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학살에 대한 말살의 역사학은 무엇보다도 살해당한 사람의 숫자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그러고 나서 사건 희생자의 잠재적인 수를 최소한으로 줄여보려고 특정한 증거문서나 증언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 옮겨간다.-309~310쪽

지식은 단지 표현일 뿐은 아니다. 그것은 감정과 행동을 형성하며, 세상에서 행동하는 체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325쪽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란 우리 안에 있는 과거,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과거의 존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알고,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를 아는 데 과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역사 교육이 이러한 주의를 환기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무엇을 가르친들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질 리 없다.-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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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현대침묵사 - 한국현대사 미스터리 추적
김환균 외 지음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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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해마다 기획되어 방송되는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많은 충격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PD들이 자신들이 기획하고 취재해서 엮어낸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글로 정리하여 출판을 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책의 제목과 부제만으로는 '현대사에 대해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교양서가 하나 더 나왔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보면서 서문과 목차를 훑어보고 나서야 이 책이 MBC에서 그동안 방영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글로 정리한 책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전편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꽤나 즐겨본 입장으로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에 반가운 마음이 앞서 책을 붙잡고 부지런히 읽어내려갔다. 그동안 TV의 영상을 통해서 본 내용들도 많았기에 중첩되는 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영상에서 글로 정리가 되면서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많은 주제들에 대해서 좀더 찬찬히 생각해볼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글 중간중간에 구성과 진행을 담당했던 PD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가운데 느꼈던 어려움들도 글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데 확실히 한국현대사에 대해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현장조사를 하는 게 쉽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의 현대사를 논함에 있어서 관련 인물들의 사망이나 철저한 함구, 자료의 유실이나 훼손 등이 꽤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와중에도 이만큼이라도 조사하고 정리하여 TV방송이라는 공공 영역을 통해서 드러내어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고, 무지나 무관심에 대해서 질타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물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자행된 수많은 국가폭력과 그로 인하여 침묵을 강요받은 많은 이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많은 의의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에 대하여 좀더 많은 조사와 연구 그리고 증언들이 나와서 성과가 깊이있게 축적되지 않으면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을 본 것에 불과하지 않을 것이다.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기조차 쉽지 않은 주제들을 어렵사리 끄집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만큼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해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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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리처드 부스 지음, 이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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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웨일즈 지방의 헤이란 지역에 헌책방 마을을 기초한 리처드 부스가 자신의 경험담을 담긴 책이다. 솔직히 다른 나라의 사정인지라 그리 와닿거나 하진 않았지만 저자의 헌책에 대한 열정은 담뿍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열정이라는 것은 저자가 특정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데서 비롯된 각종 사연을 소개한다기보다는 여러 분야의 책들을 가리지 않고 수집하여 싼 값에 공급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들을 정리한 만큼 어디까지나 공급과 수요의 교차점에 있는 헌책방업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이야기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집어들면서 짐작했던 내용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에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자신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지역을 넘어서서 다른 국가,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종류의 헌책방마을이 들어설 수 있도록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솔직히 어느 누가 헌책방을 중심으로 한 마을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겠는가?)에서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남기는 책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많은 분들 중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의 헌책방 운영 인생과 경험 그리고 철학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사람이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문득 고 이겸로 옹이 썼던 <통문관 책방비화>란 책과 더불어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있는 헌책방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에세이로 담아낸 최종규 씨의 <모든 책은 헌 책이다>란 책이 떠올랐다.

<통문관 책방비화>의 경우에는 인사동에서 "통문관"이라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가운데 있었던 일들을 회고 형식으로 정리했기에 구성 자체로 보면 어쩌면 리처드 부스의 이야기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통문관 책방비화>의 경우 저자가 통문관을 꾸려가는 가운데 거쳐갔던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귀중한 서적들(흔히 이름만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문화재급 서적)의 사연들이 많이 담겨 있기에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새겨둘만한 내용들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최종규 씨가 쓴 책의 경우(2006년도에 신간이 하나 나오기는 했는데, 아직 그 책까지 접해보진 못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헌책방들을 찾아다니면서 거기서 마주칠 수 있었던 다양한 책과 그에 대한 소감,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헌책방에 애정을 가지고 자주 찾아다니는 저자의 열정을 통해 수많은 헌책방들의 사연을 접할 수 있고,  저자가 여러 헌책방을 다니면서 쌓아올린, 헌책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생각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거기다가 지은이가 우리말로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풀어내는 게 쉽고도 평이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이 한글을 쓰면서도 너무 현학적이고 어려운 문투만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반성을 삼아볼 만도 한 책이다.

원래 읽은 책을 통해서 떠올린 책들의 이야기를 적다보니 내용이 조금은 벗어난 감이 있는데,  헌책방을 자주 이용하는 입장으로서 든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세태 속에서 새 책을 파는 서점도, 헌책을 다루는 헌책방들도 많이 문을 닫고 있는 게 씁쓸한 현실이기는 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책방을 근근히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역시 그것만으로는 현실의 장벽을 넘기가 쉽지만은 않은 편이다.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다는 게 문제의 가장 근간이 아닐까 싶다. 초, 중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가정에서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일단 들러서 일반 서점이나 헌책방에 어떤 책이 나와서 유통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둘러보면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정도라도 그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으면 어떨까란 생각도 해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접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만이라도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면 거기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활용의 가능성은 다양하겠지만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시험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배제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 학생들이 들른다고 하더라도 찾는 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교과서나 학습서 그리고 사전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현 세태가 헌책방에도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조금만 눈을 돌려서 책방 전체를 찬찬히 둘러보면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서가 한 켠 한 켠을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들을 둘러보는 가운데 자신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는 책을 만날 수 있는건데, 많은 이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그만한 여유조차 없는 것인지... 그런 여유조차 없는 환경이라면 부스가 이루어냈던, 헌책방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꿈꾸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리처드 부스는 현재 많은 이들이 책을 읽지 않고, 인터넷과 같은 매체에 의존하는 세태를 "인터넷이나 컴퓨터는 정보체계 면에서 책의 경쟁상대가 못 된다. 정보의 단순한 습득이 아닌 이해가 인생의 주요 과제이기 때문이다. (399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책을 찾아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들고 있는데, 맞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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