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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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의 추리문학이 국내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이끌면서 주목을 이끌었지만, 근래 들어 유럽의 인상 깊은 여러 스릴러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그 자리를 내어주고 조금은 위축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히 꾸준하게 나름 인지도 있는 작가들의 새로운 신간들이 소개되고 있음을 볼 때, 추리장르를 선호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조금은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이 소설은 일본의 추리장르를 접해본 독자들이라면 익히 알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으로 90년대 후반 문예지에 단편 형식으로 연재되었다가 곧바로 단행본 장편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출간된 작품이다. 그래서 사실상 신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선보였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대표할만한 몇몇의 작품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흥미롭고 놀라운 스토리텔링을 담아내고 있으며,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부 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이후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높은 시청률을 올린바 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밀리언셀러로 자리매김은 물론이고 추리작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입증한 역작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같은 표지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바 있어서 이미 완독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원작이 아닌 영화로 만나온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번에 번역을 새로이 하여 재출간된 만큼, 보다 충실한 원작의 묘미를 즐길 수 있을듯하다. 한편으로 아직 그의 작품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이 소설을 매개로 하여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 한 번 입문해보면 어떨까 싶고, 아울러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잠시나마 음미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 사건의 발단은 오사카 변두리 지역에 완공되지 않은 폐허건물에서 누군가 예리한 칼날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발견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그곳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며 피해현장에서 특별히 도난당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금품을 노린 강도사건과는 관련이 멀었으며, 피해자 가족과 주변 이웃 탐문의 내용을 고려해 볼 때, 개인적 원한에 의한 살해 동기의 부분도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파악되었다. 사건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기가 힘든 가운데 경찰은 전당포 거래내역을 세밀하게 조사하던 끝에,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에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확인되는 한 여인이 있었음을 알아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용의자로 지목된 여인이 갑자기 자신의 집안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피해자 스스로가 목숨을 끊었다고 판명하기에는 미심적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의혹만을 남긴 채 자살로 결말지으며 수사는 흐지부지 종결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한 남성에 대한 피살사건에 대한 범죄는 점차 미궁에 빠지게 되고 이후 경찰의 여러 조사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피해자의 아들이었던 기리하라 료지와 용의자로 딸이었던 가라사와 유키호는 각자 나름대로 개별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기이하게도 뜻하지 않은 끔찍한 미스터리 사건들이 연달아 나타나게 되고, 당시 전당포 주인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사사카키 형사는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그들의 행방을 은밀하게 추적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작품은 피살된 한 남자의 작은 미스터리 사건으로 출발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면 이야기의 전개 내용이 단절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구성을 보이면서 피해자와 용의자 가족이 연결된 20여 년 대장정의 서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소설 속에 풍겨지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음울하면서도 어두운 면이 부각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장르적 요소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연쇄적으로 미스터리사건과 조화를 이루면서 기묘한 스릴의 쾌감을 불러일으키며 더불어 독자로 하여금 과연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게 하는 은근한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가 거의 다루어지고 있지 않음에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과, 치밀한 구성을 통해 독자들이 추후 예측을 불허하는 줄거리의 전개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사건 피해자의 아들과 같은 사건 용의자의 딸은 자신들의 부모가 저지른 죄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 결국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하얀 어둠을 걷는다는 작품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음과 동시에,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기도 해서 사회성 짙은 시사적 이슈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장르문학을 접했던 독자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대다수가 뛰어난 가독성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에 속하기도 해서 굳이 여타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이 소설에서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넓혀 가보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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