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모 방송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가 폭발적인 시청률과 인기를 얻으면서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듯하다. 겉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시청자의 눈을 자극할 만한 액션 장면으로 두루 포장하고 있지만, 이를 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보다는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한 상황을 극복하면서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는 이야기의 흐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맺어가고 있는 연인의 관계에 호의적인 공감을 표하면서 아무런 문제없이 온전한 상태로 사랑이 지속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실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단지 드라마에 불과할 뿐임에도 이처럼 시청자들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은연 중 감정이입을 드러내며 응원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형태가 어느 특정인에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공통적인 관심의 대상이라는 점과, 또한 그 이면에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용에서처럼 그러한 극적인 사랑의 과정이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우리들 각자 나름대로의 이상적인 소망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해서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사랑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만큼 쓸쓸하고 황량한 삶은 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이 작품은 연인 간에 간절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담고 있으며 전개과정에서 형언할 수없는 감동의 요소와 강렬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러브스토리가 펼쳐져 있어서 독자들이 주목해볼만하다. 그래서 로맨스작품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작품을 통해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된 아름답고 견고하며 숭고한 사랑의 기운을 가슴가득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작품 속 이야기의 배경은 세계 1차 대전 중에 독일의 침공을 받아 점령된 생페론이라는 프랑스 외곽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나치의 지배를 받기전만 해도 언제나 그렇듯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마을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들에 의해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매일매일 살얼음 같은 공포에 시달리며 암울하고 불안한 하루를 보낸다. 주인공 소피 르페브르는 예술을 사랑하는 화가와 결혼해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리면서 비록 작지만 아담한 호텔을 운영하던 중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편이 강제징용으로 군에 입대하게 되는 뜻하지 않은 이별을 맞는다. 그리고 결혼 전에 남편이 그려주었던 자신의 자화상을 바라보면서 직면한 아픔의 세월을 홀로 견디어 나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을을 관리하던 독일군 사령부로부터 독일 군인들을 위해서 저녁식사를 지속적으로 준비하라는 일방적인 지시를 받고 적잖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만약에 그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면 곧바로 자신을 포함한 마을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감당할 수 없는 후환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들의 명령에 따르기로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지 못하고 국가를 배신하고 나치에 부역하는 처사라며 곱지 않은 의심의 시선을 보낸다. 그렇게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에 독일 사령관이 그녀가 소중히 간직했던 자화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 중에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을 소식을 듣고 구출하기 위해 사령관을 찾아가 그림과 함께 그가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의 부탁은 거절되었고 오히려 체포구금당하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송된다. 이후 작품 속 이야기는 100년의 시간이 훌쩍 뛰어 넘어 그녀의 자화상에 대한 소유권 논란이 벌어지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의 내용과 관련하여 작가 조조 모예스가 기존에 발표했던 여러 작품을 살펴보면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녀 간에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소재를 꾸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기자기하고 행복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자신의 사랑을 위해 무언가 단단한 벽을 넘어야 하는 연인들의 애틋하면서도 간절한 사연을 품고 있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는 사별의 절망적인 환경에 놓여있으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감동의 여운을 담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사랑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눈에 띠는 것은 하나의 스토리 안에 시대를 달리하는 각기 다른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의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헌신적인 사랑의 표본을 감동 있게 그려내고 있어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아울러 작가는 이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궁극적인 사랑의 본질은 결코 물질적인 것에 좌우되지 않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와 가치관이 모두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종종 때와 상황에 따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져버리는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리고 사랑을 사랑답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를 한다. 또 어떤 이는 신뢰했던 사랑에 상처를 입고 좌절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마음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그러한 힘든 고통의 과정도 결국 사랑으로 충분히 치유될 수 있으며 언제든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흥미롭고 감동적인 로맨스 소설을 접한 것 같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혹시 이런 장르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감상해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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