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설계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전성수.이동희 옮김 / 반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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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주요 언론 기사에 따르면 국내 울산에 거주하는 1만 여명의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한국인 게놈 빅데이터를 만드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한바 있다. 물론 이전에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유전정보에 대한 분석이 있었지만 이는 400명 정도의 소규모에 불과했고, 이번처럼 대규모로 진행되는 것은 상당히 획기적이고 이례적이며 의학적으로도 진일보적인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한국인들이 자주 앓고 있는 질병의 위험도를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이나 특이질환에 대한 유전적 규명과 관련 질병을 사전에 예측함으로써 선진적인 치료의학체계를 갖추는 하나의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게놈을 활용한 맞춤의학이 가능해짐에 따라 향후 바이오의료산업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게놈이라는 말의 의미는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생물체가 생명현상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유전정보 DNA의 집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생명의 설계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게놈 연구가 시작되었을 당시의 초기 목적은 염색체 지도를 완성하려는 순수 학술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용 가능한 유전학적 정보가 새로이 발견되었고 농작물의 품종개량을 위한 유전자 재조합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이후 이러한 연구의 결과가 인간의 유전성 질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아래 국제 공동연구는 물론이고 각 국가별로 더 많은 투자와 연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게놈의 연구 내용이 전문적인 과학영역인데다가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내용들이 많아서 그동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많은 지식을 동원하지 않고도 인간게놈의 전반적인 부분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인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23쌍의 유전자들 중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몇 가지의 특징들을 골라 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구체적인 의미와 영향을 깊이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그 이면에 지금까지 유전자 해석 연구를 통해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인류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심리학, 고고학, 의학에 이르는 학문의 거의 모든 분야와 연관시킴으로써, 오늘의 시각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독자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유효한 도움을 주고자 했다는 점이다. 책 속에는 인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23쌍의 염색체를 순서대로 나열하여 각각의 염색체마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한 상징할만한 유전자를 찾아 그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게놈의 6번 염색체는 인간의 지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우리의 지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환경적 외부요인과 본래의 유전적인 부분과의 상관관계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분석하고 있으며, 9번 염색체의 경우에는 우리의 ABO식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이면서도 말라리아, 콜레라와 같은 질병문제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음을 여러 연구사례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11번 염색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나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개성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현대의학에서 이를 기반으로 반사회적 성향이나 성격을 치료에 응용되고 있다는 사실과, 특히 17번 염색체에서는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유전자를 이용해 암을 억제하거나 예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서 향후 암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새로이 모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독자들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유전인자에 대해 확대된 지식을 얻는 한편으로, 유전자의 연구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생명 경시나 생태계 파괴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내용이 이채로우면서도 주목을 이끄는 점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게놈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드러내어 열거한 것이 아니라, 생명공학에 앞서 윤리학에 배치되는 여러 문제점을 통찰하고 있으며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생학의 긍정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사회공익차원에서 어떻게 조절하고 다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게놈의 연구결과에서 나타난 실증적인 부분들을 통해 진화론과 인간결정론의 오류부분을 명확하게 지적함으로써 게놈의 연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다시금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논리적 견해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인간게놈의 내용이 해독 완료되었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유전정보를 구성하고 있는 순서를 알게 되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바탕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선천적 유전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미래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책에도 나와 있듯이 수십억 쌍에 이르는 엄청난 유전자가 과연 모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풀어내기에는 아직도 멀고 험난한 과정에 있으며, 더구나 이러한 연구의 결과가 때로는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욕구에 따라 오남용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결코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게놈의 연구로 축척된 지식이 생명과학 분야에 핵심적인 연결고리로 작용되고 있는 만큼, 이로 인해 경제적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야기될 소수 기업이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독점적 권한의 문제는 또 다른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인간 게놈의 발견은 과학의 진보를 증명하는 엄청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나온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볼 때 과학기술이 언제나 인간을 이롭게만 한 것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유전자 연구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물론이고 편협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과학적 지식을 쌓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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