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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음, 김혜연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2월
평점 :
오래전 어떤 책에서 본 기억에 의하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리스 로마신화를 배운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어자체가 로마어, 다시 말해서 라틴어에서 파생되었고 라틴어의 많은 부분을 로마인들이 받아들여 자기네 것으로 만든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의 여러 나라의 많은 신화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그리스 로마의 신화가 폭넓게 알려지고 있는 원인 중에 한 가지는 아마도 영어를 제2외국어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생긴 문화적 요인에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는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에 어디선가 한번 보거나 들을 것 같은 이색적인 지명이나 인명, 혹은 영화나 게임, 소설을 통해 북유럽의 신화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왔지만, 정작 그 내용이 어디서 유래되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독자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북유럽 신화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고 때로 배척되면서 상대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외면 받아왔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북유럽 신화는 민간에서 민간으로 전해져 오는 전설의 형태를 통해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왔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접할 수 없었던 북유럽 신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담아내었고, 아울러 독자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색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간헐적이고 표피적으로만 알아왔던 북유럽 신화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더불어 다양한 문화적 양식의 토대를 쌓는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책 속에는 북유럽의 신들을 대표하고 승리의 신이며 우주를 상징하는 오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대기를 관장하면서 모성애의 신이 되는 그의 아내가 프리가와 그의 자녀들에 관한 것으로 이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신이 점차적으로 등장하는 각각의 단편적인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하지만 소개되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개괄하여 보면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구조로 연결되고 있어서 그리스 신화와는 별개로 색다른 재미와 함께 유럽 문화의 원천을 느끼는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세 가지의 공간적인 배경이 등장하는데 오딘을 비롯하여 그를 따르는 신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인 ‘아스가르드’와 인간과 다른 종족이 사는 ‘미르가르드’ 그리고 지옥이며 죽음의 세계로 대변되는 헬로 나누어진다. 오딘은 자신의 형제와 힘을 합해 태초의 거인이자 사악했던 이미르를 죽이고 그 시체를 이용해 하늘과 대지를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거인족의 일부가 살아남으면서 신들에게 패배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오딘은 인간들이 사는 곳에 법과 질서를 부여하며 그들을 이롭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을 추종하는 신들을 이용해 전쟁을 부추키어 용감한 전사의 영혼을 거두었는데, 이는 훗날 악의 세력과의 피할 수 없는 최후의 결투를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은 끓임 없이 악을 물리치기 위한 대결의 양상을 벌이지만, 때로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아름다우면서도 애틋한 사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모험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신들의 종말을 예고하는 라그나로크가 시기를 맞으면서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다하게 되는데, 책속의 내용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발현되는 희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대단원의 결말로 마무리 되어간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느끼겠지만 북유럽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북유럽 신화 속의 오딘은 그리스의 제우스와 또한 그의 아내 프리가는 헤라와 견줄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러 신들의 이미지와 성격 그리고 그들의 행동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 사실 책속에 나와 있는 북유럽신화의 모든 이야기에는 9세기경 운문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옛 에다의 자료와 이후 제작된 산문 방식의 신에다의 실린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두 책의 내용은 기록되는 과정에서 당시 기독교 신앙의 영향으로 애초 신화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다소 변화된 형태로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북유럽의 신화의 일부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문제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북유럽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야기 전반에 선과 악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결구조와 호쾌함이 체감될 정도의 역동적인 측면이 두드러져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길수록 재미를 가중시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야기의 바탕에 약간 어둡고 파괴적이며 비극적인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이점은 차갑고 추운 북유럽의 기후적인 요소와 진취적인 성향의 게르만의 민족성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화를 읽는 목적은 개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화를 읽음에 있어서 분명한 사실 중 한 가지는, 다양한 세계관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확대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그 내용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 있는 교훈이나 슬기로운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이 펼쳐내는 신화 속의 멋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하면서 북유럽 역사 문화의 근원을 알아가는 일석이조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