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르부아르 ㅣ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평점 :
평상시 독서를 즐기는 편이지만, 사실 책을 읽는다고 꼴딱 밤을 새웠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처럼 만에 이 작품 속의 줄거리에 흠뻑 빠져들었다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주말의 밤을 하얗게 보내버렸다. 그 이유를 짐작해보니 이 작품이 여타의 장르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매력적인 스토리의 흐름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문학을 읽는데서 오는 어떤 모종의 감동과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작품의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외모적으로 조금은 독특한 인상을 주는 주인공 카미유 형사를 중심으로 범죄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그의 첫 시리즈이자 데뷔작을 우연하게 접하면서였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게 마련이다. 그는 55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문했음에도 발표하는 작품마다 자국에서는 물론이고 유럽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까지 상당한 호평을 받아 일찍이 베스트셀러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일부 작품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이 소개되자마자 장르문학을 선호하는 많은 독자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기대할만한 작가로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대개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대중들에게 단순히 말초적인 요소를 부각시켜 일시적인 재미를 안겨주고 빠르게 잊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시각에서 이 소설이 각별하면서도 이채롭게 느껴지는 것은, 자극적이며 일회성으로 소비될 수 있는 범죄사건에 국한하지 않으면서 한층 더 품격 있는 장르문학의 재미를 체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작품전반에 흡입력이 있는 매혹적인 줄거리의 전개와 문학적 풍미를 더한 기교적인 문장의 서술이 동반된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기를 적극권해보고 싶다.
작품은 세계1차 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에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적대적으로 대치하던 최전방의 전선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심하지만 정이 많은 성격을 지닌 주인공 알베르는 4년간의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를 겪어오며 하루빨리 종전의 날이 오기만을 고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소속된 부대의 상관으로부터 적의 진지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고 앞으로 나아가던 중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불길한 상황을 목격하고 적잖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포탄의 흔적으로 생긴 깊은 구덩이에 빠져 흙에 파묻히면서 혼자의 힘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있던 동료병사 에두아르가 그를 발견하고 목숨을 구해준다. 이후 알베르는 전투 중에 얼굴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그를 위해 헌신적인 간호를 아끼지 않는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종전을 맞이하고 알베르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에두아르가 보기 흉측한 자신의 얼굴을 비관하며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과 세상 밖으로도 나가고 싶지 않다는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와 함께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사회현실의 모습은 생사를 위협하며 고통만을 안겨주었던 전쟁에서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참전용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냉소했으며 일자리마저 구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에 그들은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듯 비참한 생활을 전전하다가 마침내는 서서히 무기력함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렇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에 에두아르는 알베르에게 전사자들의 추모와 관련하여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엉뚱하면서도 기막힌 묘안을 내놓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실천에 옮겨지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고 돌이킬 수도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우선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 프랑스 전후사회의 암울한 현실의 실상을 사실적이고 개연성 있게 풀어냄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에 따른 인간의 맹목적인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사회성이 짙은 내용을 담아내어 있어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특히 작가의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의 개성적인 등장인물의 설정, 그리고 생동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흐름은 페이지가 뒤로 넘어갈수록 눈을 떼게 하지 못할 만큼의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장르소설은 대부분 대중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문학의 예술적 요소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펼쳐지는 사건의 개요에서 비롯된 인과관계의 대중성을 선명하게 갖추었으면서도, 비극과 희극을 조화롭게 연결하여 그에 못지않은 문학적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요 인물이 되는 알베르와 에두아르가 전쟁이 남긴 후유증과 가난으로 점철된 불우한 처지를 이기지 못하고 때로 독선과 반목으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연민과 희생정신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나가는 두 사람의 인간애적인 모습에서, 또한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면서도 겉으로는 이를 표현하지 못하다가 정작 아들의 빈자리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아버지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회한의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겨주지 않았나 싶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원활한 소통을 도와주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장르소설이 독자에게 전해 주는 쏠쏠한 재미의 옵션뿐만 아니라, 비정한 사회 속에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인간성의 회복과 한편으로 점점 메말라가는 우리의 감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치의 의미까지를 함께 선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문학을 선호하는 독자들이라면 가급적 이 작품을 지나치지 말고 주목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