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박연미 지음, 정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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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은 자국의 동맹국들과 함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사상적 이념을 앞세워 치열한 대결의 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동유럽의 국가들은 1980년 초기에 이르러 거의 모든 산업에 성장둔화라는 침체기를 겪으며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하게 되자, 마침내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계획경제를 포기를 선언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북한은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외면한 채, 지금까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만이 자신들을 구원할 유일한 이념인 것처럼 고수하며 폐쇄적인 사회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권력을 세습해왔던 집권층들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의 원조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하게 되었고 산업 전반의 낙후된 기술수준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자 자력갱생이라는 모토를 내세워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생활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아왔다. 결국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던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중국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남한의 자유롭고 눈부신 경제성장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면서 목숨을 건 남한으로의 탈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이 책은 집안의 몰락으로 비인간적인 북한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어 13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와 함께 탈북을 결행하고 중국과 몽골을 거쳐 남한에 정착하여 인권운동가로 거듭나기까지, 한 여성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북한주민들이 겪는 실상은 물론이고 그들의 탈북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듯하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20073월 말경에 엄마와 함께 목숨을 걸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그녀가 탈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원인은 오로지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생존의 본능이 우선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며칠 전에 중국으로 먼저 건너간 하나밖에 없는 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중국과 국경으로 맞닿은 북한의 양강도 혜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그녀의 눈에 비친 중국 땅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자랑하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중국을 다녀온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은 바에 의하면 북한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실 유년기를 보냈었던 2000년 초반만 해도 그녀의 집은 아버지가 중국의 업자와 밀수를 통해 제법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나름대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당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그 결과 그녀의 아버지 사업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남에게 빚을 지는 신세로 전락해버렸으며 급기야는 집을 팔고 친척집을 전전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로 이어졌다. 그녀는 엄마와 중국으로 국경을 무사히 넘기만 한다면 북한에서의 어려웠던 생활에서 곧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돈을 받고 국경을 넘게 해주었던 브로커들은 인신매매 하는 곳으로 그들을 팔아 넘겼고 말을 듣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는 협박으로, 언제 북송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자비한 성폭행도 감내해야만 했다. 이들 모녀는 불행 중 다행으로 한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우리 국내로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었지만 가슴 아픈 쓰라린 과거의 기억은 여전히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솔직담백하면서도 허심탄회하게 지난날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그동안 독자들이 언론으로만 보아왔던 북한의 실상과 목숨을 담보하는 탈북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은 경제의 악순환이 반복되자 이를 빌미로 배급을 중단하고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 스스로가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하여 강요해왔다. 그 결과로 평양에 거주하는 일부 기득권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책 속에는 그러한 냉엄한 현실의 분위기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또한 과거에는 남한으로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자 최근 북한은 탈북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한층 강화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장마당의 규제를 풀어 자유롭게 허용하는 등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여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려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여전히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향후 북한의 미래는 더욱더 암담한 나락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 대다수의 주민들은 가난과 기아에 몸부림을 쳐야하는 심각한 고통에 직면해있으며 이미 중국으로 탈북을 강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북송될 것을 우려해 마치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사안에 대해 우리가 단순하게 피상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북한의 실상을 직시하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감싸주는 너그러운 포용의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독자들이 탈북민에 대해 고정되고 경직된 시각에서 바라볼 것이 아닌, 동포애가 바탕이 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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