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미니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매년 범죄사건을 다루는 새롭고 다양한 추리물이 꾸준히 선보이고 있고, 더불어서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제법 많이 소개되고 있기에 사실 처음 접해보는 낮선 작가의 작품에 선뜻 눈길을 주는 것이 좀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그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표지제목의 특이성이 크게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야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혹시 단순히 제목에서 비롯된 호기심을 무시하고 지나쳤더라면, 아마도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하나의 사건에서 촉발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기대 이상으로 한껏 고조되는 스릴의 재미를 맛보는 체감의 기회를 잃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표지 제목에서 보듯 이니미니라는 말의 뜻은 여러 사람이 모여 게임을 할 때, 술래를 정하거나 편을 가르기 위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종의 노래나 구호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낱말은 작품 속 사건전개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저 의례적으로 수반되는 행위가 아닌 사실상 절체절명의 의미심장함이 내포되어 있다. 이 소설이 여타의 작품과 비교해서 유난히 돋보이면서 깊은 인상으로 남는 것은 이니미니라는 단어로 함축되어지는 범죄사건의 특이성에 있다고 할 수 있을듯하다. 작품 속 사건의 범죄자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 두 명의 피해자를 가두어 놓고,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죽이고 홀로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하는 오로지 단 한 가지의 선택만을 강요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성적인 인간으로부터 짐승의 본능을 시험하게 만드는 당황스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본다면 이 작품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만족할만한 흥미의 요소를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 이야기는 서로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이였던 샘과 에이미가 런던의 한 공연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자동차를 얻어 탔다가 누군가에 의해 돌연 납치를 당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두 사람은 오래전 폐쇄되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지고 낡은 수영장에 버려진다. 의식을 잃고 깨어난 그들은 아무런 탈출구가 없음을 사실에 망연자실하게 되고 범죄자로부터 비밀번호가 잠긴 핸드폰을 통해서 그곳에 놓여 있는 총알 하나가 장전된 권총으로 둘 중 상대를 쏘아 죽인 사람만이 그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음을 통보받는다. 결국 한모금의 마실 물도 없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점점 잃어버리게 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한의 굶주림과 고통을 견디지 못한 에이미는 마침내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자신의 남자친구 샘을 쏘아 죽이고 그곳을 빠져나오게 된다. 한편 에이미가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은 소극적인 수사를 펼치다가 에이미가 귀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건의 책임을 맡고 있던 수사반장 헬렌을 보낸다. 그리고 그동안 그들이 어떤 겪었으며 어떻게 탈출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정신쇠약으로 피폐해진 그녀의 증언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회사 동료였던 두 남자가 에이미의 납치사건과 똑같은 방식으로 저질러진 제2의 피해자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유사성을 띤 이러한 범죄의 양상이 또 다시 연이어 터지면서 사건의 책임을 맡은 수사반장 헬렌은 가늠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목격자도 없으며 사건해결을 풀어 줄 여타의 증거도 찾을 수 없었던 기괴한 미스터리 사건의 실마리는 의외로 예상치 못한 곳에 잠재되어 있었다.

 

이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아무래도 최고의 백미는 사건의 피해자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납치되고 감금되어 사랑하는 연인이나 우정으로 뭉쳐진 같은 회사의 동료를 죽여야만 살아남게 되는 극단적인 범죄의 양상을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건 전개의 흐름에서 이 작품을 읽는 독자 자신으로 하여금 만약에 당신이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이성에 호소하여 비인간적인 면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애초 인간이 지닌 본능에 의지해 스스로를 맡겨 둘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기대 이상의 이채로움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으로 본다. 작품과 관련하여 작가와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아마도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관계 속의 비정한 현실의 상황을 목도하고, 그러한 문제점을 작품 속에 비유적으로 현실감 있게 녹여내어 독자들에게 사회적 문제의식을 자극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인간 본연의 도덕적 가치관과 연결된 주제의식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인상 깊은 작품으로 독자 앞에 다가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게 마련인데, 때로는 그러한 선택지 중에 선과 악이라는 경계의 모호함을 만나게 될 때 적잖은 갈등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 주안점을 두어 사건을 긴장감 있게 진행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생각지 못한 의외의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동원된 가독성 있는 스토리텔링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흡입력을 뿜어낸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기막힌 상황을 충격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독자들이 장르소설의 장점을 최대한 만끽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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