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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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장르를 선호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미야베 미야키 작가의 작품을 한 번쯤 접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부 독자들은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일본문학계에서 미스터리의 여왕이자 최고 인기작가로 군림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과 연관하여 최근 그녀의 새로운 작품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 점을 생각할 때, 개인적으로 미미작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사실 미미작가는 한동안 시대소설에 몰두해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행복한 탐정이라는 시리즈물을 통해 다시 새롭게 현대물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 세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우연한 기회에 재벌가의 딸을 구해준 인연을 계기로 결혼까지 하게 되고 곧바로 대기업 총수인 장인의 회사에서 사보를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게 되는 스기무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이번 시리즈물은 그녀가 오래전 사회파추리작가로 활동하면서 주요 소재로 삼았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녀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흥미롭게 펼쳐내고 있어 독자의 주목을 이끈다. 이 소설은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사건 흐름에 따른 다양한 등장인물에 얽힌 사연들을 바탕으로 작품 속으로 몰입이 쉽고 가독성을 체감할 수 있어서 부담 없이 읽어내려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작품에는 하나의 사건을 토대로 인간의 도덕적 감정이나 죄의식에 관한 부분이 상당히 부각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우리 사회에 도덕적해이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을 고려해 볼 때, 작품내용을 통해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품의 이야기 속 중심인물이 되는 스기무라는 재벌가의 사위라는 주변 의식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며 장인의 회사에서 사보를 만드는 일을 하는 평사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보 연재를 위해 오래전 정년퇴직으로 사장자리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직장상사를 취재하러 편집장과 함께 출장길에 나서게 된다. 성공적으로 취재를 끝마친 후에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에 급작스럽게 버스납치범에 의해 타고 있던 몇몇의 승객과 함께 인질로 붙잡힌다. 버스납치범은 초라한 인상을 주는 힘없는 노인이었지만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던 까닭에 스기무라를 포함해 납치된 승객들은 자칫 서투른 행동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운 공포와 맞닥트린다. 그러나 버스를 납치한 노인은 인질들을 향해 결코 해코지 할 마음은 없으며 자신이 하는 말에 협조를 해준다면 아무런 사고 없이 풀려날 것이고 사건이 종결되면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각자에게 약간의 위로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인질들을 안심시킨 노인은 곧바로 몸이 불편한 나이 많은 여성인질 한 명을 풀어주면서, 그녀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게 되면 현재의 상황을 경찰에 즉시 알릴 것을 요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의 전화통화에서 노인은 세 명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그들을 찾아 사건 현장으로 데려와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요구사항이 지켜지면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인질들을 무사히 풀어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버스를 납치한 노인과 경찰과의 살벌한 대치 속에 맴도는 침묵과 긴장감도 잠시, 경찰은 버스 안으로 진압을 시도하게 되고 이후 작품 속 이야기는 독자들이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또 다른 국면으로 급격히 접어들게 된다.


이 소설은 미미여사가 <모방범>, <화차>, <이유>와 같은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리매김하던 중에, 잠시 현대추리물의 출간을 접어두고 2년여의 기간 동안 시대물에 몰두를 끝내고 난 후에 발표한 첫 시리즈물이다. 이 시리즈에서의 눈에 띠는 특징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탐정이나 경찰이 등장하여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을 내세워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문제가 된 다단계에 의한 사기조작에 관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시사성이 짙은 내용을 그려내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반대로 돌려보면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다단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소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범죄의 영역으로 내몰려지는 서민들의 우울한 삶을 개연성 있게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전개되는 줄거리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한편으로 애틋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접점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소설에서 아쉽게 여겨지는 것은 사건의 발단이 되는 버스납치와 같은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와 비례하는 공포나 긴장감이 생각보다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말부분에서도 기대이상의 반전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작품의 내용과 관련하여서 최근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자본주의 폐해라고 할 수 있는 금전만능주의가 만연되어 있는듯해 보인다. 아울러 극도의 이기주의로 타인을 배려하려는 윤리의식이 조금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은 바로 그와 같이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범죄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예리한 시각으로 다룬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도덕적 가치관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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