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역설 - 슈퍼 달러를 유지하는 세계 최대 적자국의 비밀
정필모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국내외의 언론에 초관심사로 대두되었던 사안 중에 한 가지는,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우리나라가 과연 가입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자원의 빈약하여 상대적으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민감하고도 중요한 것이어서 외교적으로 정부가 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두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 정부는 고심 끝에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에는 최종적으로 가입을 공식선언했다. 사실 이 기구의 설립배경은 2013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를 순방하던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명목상으로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에 토대가 되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단순히 자금을 융통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속내의 의미를 살펴보면, 현재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등에 대항하기 위한 전초적기지로 활용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또한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이 기구의 출범을 계기로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며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중국이 자국의 통화수단이 되는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부상하려는 움직임으로 판단하고 있는듯하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로 심한 몸살을 앓아왔고, 심지어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속에서도 양적완화라는 이유를 들어 엄청난 양의 달러를 지속적으로 발행해왔다. 경제논리에 따르면 미국의 이와 같은 경제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축통화로써 국제금융거래의 기본적인 수단으로 작용되는 달러의 위상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달러가 기축통화로써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달러가 어떻게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언제 불어 닥치게 될지 모르는 세계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달러의 향방을 가늠해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금의 불안한 국제금융 위기의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 진원지로 미국을 꼽고 있다. 그는 미국이 결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로 허덕이며, 세계 최대의 적자를 안고 있으면서 채무국으로 전락함에 따라 국제금융위기상황에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이 더 많은 피해와 고통을 안고 있다는 것은 경제논리에 역행하는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역설이 유효했던 것은 미국이 정치, 군사, 경제력을 앞세워 달러가 기축통화로써의 지위를 얻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제도적으로 떠받치는 것은 금융세계화와 자본자유화를 근간으로 하는 IMF체제의 국제금융질서에 있음을 책의 내용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앞으로도 미국의 슈퍼달러 위력은 계속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먼저 장기적인 투자 가치와 안정을 추구하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달러화를 대신할 마땅한 실질적 대안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두 번째로는 유럽통합에 따른 유로존이 수 년 동안 경기부진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는데다가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미국 연준은 조만간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머지않아 미국 채권이 다시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고, 끝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의 국가들이 수출촉진을 위해 자국의 통화절상을 원치 않으려는 달러 매입정책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지금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금융 불안과 위기의 근원은 변동환율제와 자본시장을 개방을 근간으로 하는 금융세계화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을 제한하는 과거 브레튼 우즈 체제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 은행들이 각각의 은행권을 남발하게 되면 통화가치가 하락하게 되어 통화로써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는 관계로 남발의 우려가 없지만, 통화를 어느 특정한 은행기관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과다하게 발행될 수밖에 없다. 이점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기축통화의 시초가 되었던 18세기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간에 자국의 중앙은행에 독점권한을 주는 대신에 독립적인 위치에 두고 화폐발행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국제결제의 수단으로 주로 이용되는 기축통화 달러는 독점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과도한 발행을 통제할 수단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안정된 국제금융질서가 필요했던 시기에,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선진국들은 논의 끝에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 우즈 체제로의 합의를 이끌어 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새로운 국제금융개편을 마련했다. 이후 미국은 유럽의 경제부흥을 위한다는 이유로 달러의 유동성 확대를 꾀했으며, 1970년대에는 지속적인 경상수지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공급을 확대해왔다. 이러한 달러의 과다발행은 결국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가져왔고 국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당시 만약 달러를 대신할 여타의 기축통화가 존재했더라면 국제금융자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고, 지금의 통계수치가 보여주는 미국의 경제상황은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최근 중국을 필두로 기축통화의 다각화 논의로 불거지고 있는 국제금융 불안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동시에, 과다한 발행으로 문제점을 양산하면서도 여전히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달러의 역설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아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향후 달러의 자본흐름에 따른 국제금융에 관한 시각을 한층 넓히는 유용한 도움서로 여겨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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