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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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책을 보는 것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나름대로의 묘한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만화의 경우에는 흥미가 없어서 그런지 좀처럼 쉽게 눈길이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언젠가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타짜라는 만화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작품 속에 흥미롭게 전개되는 줄거리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폭 빠진 기억이 있다. 이후 만화 원작을 토대로 하여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기에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한데, 도박을 주된 소재로 하여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그리고 그 이면에 그려진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려냄으로써 비정하고 잔악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긴장감 있으면서도 이채롭게 담아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오래전 타짜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끼며 몰입했던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볼 정도로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을 만큼의 희열감을 맛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과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빠르게 진행되는 줄거리의 흐름 속에 인상 깊으면서도 마치 한편의 생동감 있고 드라마틱한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사실 이 소설과 관련하여 신인작가인데다가 작가의 작품을 접하지 않은 관계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게 하는 주목할 만한 작가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혹시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젊은 시절 건축 미장일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재미 삼아 푼돈내기를 즐기며 도박에 물들기 시작한 용팔은, 마침내 크게 한몫을 벌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그동안 어렵게 모아 놓은 돈을 가지고 불법 도박장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전문 도박꾼이었던 정연을 만나 순 식간에 자신의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형제 이상의 신뢰의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용팔은 정연에게 포커기술을 익히며 은밀하게 벌어지는 이곳저곳의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돈독한 생활을 이어간다. 이후 정연은 사랑했던 동거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도박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가게를 꾸리며 행복한 삶을 보내던 중에, 아내가 심장병을 앓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운영하던 가게마저 조류독감의 여파로 폐업을 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이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기 위해 사설도박장에 나섰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그의 아내 역시도 수술의 후유증으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용팔은 그의 아들 재휘를 자신의 친아들로 거두게 된다. 크게 모아놓은 돈이 없었던 용팔은 어떻게든 재휘를 건사하게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린 재휘를 데리고 도박장을 전전하다가, 우연하게 재휘에게서 천재도박사의 기질이 있음을 알기에 이른다. 한편 또 다른 인물 은영은 도박으로 집안은 풍비박산된 것으로도 모자라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의 보험금까지 도박으로 날렸으며 급기야는 도박 빚으로 인신매매의 형식으로 자신을 저당 잡히고 끝내 자살을 선택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다가, 뜻하지 않게 재휘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이 우연한 만남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예상치 못한 인생의 행로로 걷게 만드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이 소설은 개성 있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비정한 도박의 세계를 흥미로우면서도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펼쳐져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치밀한 구성이 연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가독성 있는 전개로 인해 누구나 책을 손에 잡게 되면 단숨에 읽게 되는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풍부하고 개연성 있는 서사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발단에서부터 결말까지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짧게 이어져 간다는 점과,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통상적인 줄거리를 선보이고 있어서 작품을 읽을 때는 모르지만 다 읽고 나면 그 여운이 금방 사라져버려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도박의 실상을 소재로 다루어 왔던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이전에 유사한 내용을 다룬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의외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것은, 작가 스스로가 독자들이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지를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그 점에 초점을 맞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도박이란 자신과 마주하는 상대를 이기면 그 사람의 돈을 모두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패하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하기에 긴장감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이처럼 도박의 속성으로 간주되는 긴장감을 이야기 전반에 줄곧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 주인공 남녀를 통해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사연을 결국 사랑으로 승화시켜가는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일부 독자들의 경우에는 이 작품을 두고 다른 시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견해에서 보면 그에 걸 맞는 대중적인 작품으로 생각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졌으면 싶고, 아울러 조만간 작가의 후속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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